평소 팔짱을 끼거나, 무표정한 관객으로 앉아있던 중년층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오빠 부대’ 떼창을 선보였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 현장이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PMC프러덕션의 대표 창작 뮤지컬이다. 1990년 만화책으로 출간되고, 같은 해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된 배금택의 인기 만화 ‘영심이’를 원작으로 한다. 서른다섯 살이 된 영심이가 ‘젊음의 행진’ 콘서트를 준비하던 중, 학창시절 친구 왕경태를 만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공연의 기본 콘셉트는 1980~90년대 인기 쇼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80~90년대 히트곡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펌프, 콜라텍, 마이마이 카세트, 장학퀴즈, 공중전화기 등 90년대 감성을 듬뿍 담은 추억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진다.
최근 ‘응답하라 1988’이 옛 복고 감성을 자극하며 인기다. ‘젊음의 행진’도 그런 맥락에서 특히 40~50대 중년층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단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를 중심으로 이뤄져서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부담이 없다. 그리고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을 함께 떠올리며, 그 시절에 대한 감상과 추억에 젖어 현실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공연을 관람한 한 40대 관객은 “내가 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느꼈던 첫사랑의 설렘이라던가 순수했던 마음이 생각나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또 익숙한 노래가 계속 흘러나와 공연을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년층 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도 어필하는 점이 있다. 지난해 말 ‘무한도전’의 기획 특집 ‘토토가’의 인기에서도 증명됐듯, 현 세대에겐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문화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세월을 뛰어넘어 중년층과 젊은 세대 모두에게 통하는 노래는 함께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 대표적으로 아직도 응원가로 많이 쓰이는 신해철의 ‘그대에게’ 등이 등장한다.
2007년 초연돼 어언 10년 가까이 공연을 끌어왔기에 식상해질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공연의 강점인 음악으로 정면돌파한 점도 눈길을 끈다. 기존 80년대 음악들 중 10여 곡을 90년대 중후반 대표 히트곡으로 교체했다. 올해 공연엔 지난 시즌에선 들을 수 없었던 ‘난 괜찮아’(진주), ‘말해줘’(지누션), ‘영원한 사랑’(핑클), ‘금지된 사랑’(김경호) 등 새 노래들이 등장해 익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꿰찼다. 노래가 중심인 쥬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상 이야기 연결이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는데, 오랜 세월 쌓인 내공으로 흐름도 지난 시즌보다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이 노래의 매력을 배가시켜 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주인공 영심이 역을 개그우먼 출신 신보라, 떠오르는 신예 정가희가 맡았고, 영심이를 짝사랑하는 왕경태 역을 베테랑 배우 조형균, 울랄라세션의 박광선이 맡았다.
신보라와 박광선은 뮤지컬 첫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역할에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다. 신보라는 그간 음반을 발표하고, 개그 프로그램에서 닦아온 노래,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는 “연기 자체는 개그 무대나 뮤지컬 무대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긴 호흡을 끌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가창력으로는 이미 유명한 박광선도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채우며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조형균이 밝혔듯 안경만 쓰면 마치 왕경태를 보는 듯한 캐릭터 소화력도 한 몫 한다. 같은 역의 조형균 또한 베테랑 뮤지컬 배우로서 팀의 중심을 잡고, 발랄한 매력의 정가희는 통통 튀는 모습의 영심이를 보여준다. 박진영의 ‘허니’ 춤을 출 땐 제대로 춤바람이 난 듯한 흥겨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묵직한 메시지와 진중한 이야기는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옛 추억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공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2016년 1월 1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