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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가상공간으로 죽음체험하고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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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6호 윤하나 기자⁄ 2016.01.18 14:24:44

▲작가 김정욱의 작품. 사진 = 갤러리 스케이프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지겹다. 사무실 모니터를 응시하는 텅 빈 눈과 주말 아침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아 TV 리모컨을 더듬는 무료한 손. 출퇴근길 번잡함에 무심히 밟히는 발처럼 매일 지속되는 현실은 마비처럼 다가오고 우리는 여기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한다. 그 세계는 현실만큼 비정하거나 현실보다 화려하거나 혹은 매우 정신적인 세계일지도 모른다. 현실이 아닌 어딘가를 창조하고 자신의 아바타를 보내 자신의 세계관을 대신 경험하게 하는 일은, (창조주가 아니라면) 창작자만이 갖는 특권이다.  

현실과 다른 세계를 상상하거나,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최근 어느 때보다 한창이다. 2차원 위의 3차원 입체 영상, 체험용 3차원 홀로그램, 4차원 정신세계의 확산(비사회적 엉뚱함) 혹은 우주탐사, ‘덧차원’의 실마리 등 우리 시대는 시각적, 개념적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차원을 넘나드는 경험이 가능해졌다. 사실 이런 식으로 차원을 나눠 규정하는 것도 아직 현대 과학 체계 안에서는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당장 우리가 사는 세계가 몇 차원으로 이뤄졌는지를 한마디로 말할 수조차 없다. 단순한 3차원 공간부터 시간의 개념을 더한 4차원 시공간, 덧차원이 겹쳐진 10차원 개념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과학자가 아닌 이상 개념적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차원 간의 이동이나 시간 여행, 이질적 세계에 대한 동경 및 구체화 등 미지의 것에 대한 흥미와 기대가 우리가 가진 무지의 양만큼 존재한다. 창작자의 특권은 여기서 발휘된다. 

가상공간(VR, Virtual Reality)을 기술적 매체로 적극 활용하는 창작가가 늘어나는 한편,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한 자신만의 가상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들도 많다. 이들이 만든 가상세계는 그들이 현실세계에서 집중한 어떤 경향을 토대로 구성된다. 최근 두 곳의 전시에서 이런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각자의 가상 세계 안에 자신이 창조한 무표정한 얼굴의, 인간과 닮은 존재를 등장시킨다. 그림 속 존재의 눈에 이목이 집중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는 그 눈을 벗어나면 이내 작가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가 창조한 존재는 마찬가지로 작가의 세계를 살아가며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 그 세계를 투영해 자신의 눈을 통해 관람자를 그곳으로 초대한다. 


0과 1의 디지털처럼 삶·죽음 오간다?
갤러리 도스 - 오세미 개인전 ‘그리고 모든 것이 죽을 때’전

작가 오세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경험한 후, 죽음을 못 피하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가 창조한 디지털 이미지 속 풍경은 무채색으로, 생기 없이 황량하다. 염세적인 가상의 형상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살풍경한 세계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불안감으로 인해 곧 작품을 바라보는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작가는 삶과 죽음이 경계되는 지점에 작품이 위치하길 원한다고 했다. 

▲오세미, ‘희생물을 위한 기도, 기도를 위한 희생물’.디지털 프린트, 125 x 125cm, 2014. 사진 = 갤러리도스

작가가 창조한 가상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은, 0과 1로 구분되는 디지털 데이터처럼 경계를 무한히 넘나들며 반복될 뿐이다. 생성과 사멸이 반복되고 그것이 거울을 통해 복제된 허상으로 또 한 번 반복되는 등, 반복을 통해 우울과 비극을 넘어 극적인 희망을 보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가 활용하는 가상공간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 숨쉬는 현실의 반대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극적으로 반복시켜 극복을 돕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오세미 개인전 ‘그리고 모든 것이 죽을 때’ 전경. 사진 = 갤러리도스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을 닮은 개체들은 작가가 행하는 죽음의 변주에 동참한다. 무색무취의 마네킹 같은 이들은 인간의 대리인처럼 사멸 과정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작가는 “상상의 힘은 정체불명의 것들에 대해 더욱 큰 공포와 불안감, 그리고 묘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작가가 만든 가상공간은 현실에 대한 공포가 포화한 세계이고, 백색의 인간은 공포를 이겨내는 존재이다. 작가는 자신이 상상한 가상공간을 통해 스스로의 공포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는 1월 19일까지.


이상한 공간, 미지의 아이
갤러리 스케이프 - 김정욱 개인전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전

김정욱은 텅 빈 동공과 새하얀 피부의 기묘한 소녀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3년만의 개인전 제목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는 그의 작가노트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잘 알 수 있는 만큼 잘 알 수 없음이 공존하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헤아려보고 그 경이로움”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표현한 말이다. 

▲김정욱, 2015. Korean ink and gold dust on Korean paper, 24.3 x 33.5cm.

빛나는 것과 태초의 순간을 탐구하는 김정욱은 각종 종교, 신화, 민담 등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닮은 가상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 가상세계는 시·공간이 합쳐진 듯한 우주적 풍경과 헤아릴 수 없는 태초의 풍경이 기묘하게 만났다. 그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간상과 캐릭터가 복합적으로 등장하는 김정욱의 작품은, ‘하이쿠’ 시가 17자에 우주를 담는 것처럼 그가 바라보는 우주를 작은 캔버스에 담아낸다. 이 세계 속에서 생성된 어떤 영롱한 존재들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무중력의 무한한 공간을 배경삼아 그 세계 밖의 우리를 응시한다. 김정욱의 작품에서 존재들의 눈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정욱, 2015. Korean ink on Korean paper, 39.5 x 39.5cm. 사진 = 갤러리 스케이프

김정욱은 특유의 한국화 수묵 기법으로 정체를 규정지을 수 없는 유아적 형태의 얼굴들을 그렸다. 이들은 마치 살면서 우연히 조우하는 ‘빛나는 것’들의 존재처럼 한없이 신비롭고 경이롭다. 작가는 이 가상세계의 드넓은 공간에서 어떤 존재를 발견하더라도 결국 위안을 받을 것이라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처음 선보이는 도예 조형 작품 10여 점도 함께 환다. 전시는 1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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