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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면 세계 뮤지엄 - 오사카역사박물관] “도래인, 한반도에서만 오지 않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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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7호 이상면(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2016.01.28 08:56:46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상면(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의 대도시 오사카(大阪)는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사업이나 직장 업무로 인해 혹은 인근 지역(교토, 나라 등)의 관광 목적으로 많이 간다. 그래서 오사카 시를 돌아다니면 가끔씩 한국어가 들리고, 또 한국어 메뉴를 갖춘 식당들도 볼 수 있다. 아마도 일본에서 우리에게 가장 낯설지 않은 도시가 오사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사카는 아주 옛날부터 한국과 관련이 있었다. 오사카 역사박물관에 가면 그런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이후 한-일 관계는 역사 기록과 자료가 부족해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상당수의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의문은 언제-왜-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갔을까 하는 것이다. 오사카 역사박물관은 이런 의문의 실타래를 약간이나마 풀어준다. 

박물관의 위치는 시내 중심지이고 찾기 쉽다. 전철로 중앙선과 다니마치(谷町)선으로 갈 수 있다. 다니마치욘쵸메(谷町四丁目)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거의 다 오면 높은 NHK방송회관이 먼저 눈에 띠는데, 박물관은 바로 옆 건물이다. 

백제·신라인의 도래 역사 보여주는 곳 

박물관은 총 10층으로, 맨위층으로 올라간 뒤 밑으로 내려오면서 관람하도록 돼 있다. 전체 구성을 보면 10층 고대사에서 시작해, 9층에 근대 에도시대(1603~1867년)의 오사카 모습이 펼쳐진다. 8층 고고학 연구소를 지나 7층에 가면 20세기 초반 개화기 모습이 보이고 전시는 여기까지다. 그 아래 6층은 특별전시실, 5~3층은 사무실로 사용된다. 2층은 학습정보실로 고대 오사카궁에 관한 연구 자료와 연구 방법 등을 보여주고, 1층은 매표소와 기념품점•음식점 등이 있다. 

▲시내 중심지에 자리잡은 오사카 역사박물관의 독특한 외모. 사진 = 이상면

필자는 이런 순서대로 보기 위해 승강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갔다. 처음 시작되는 고대사 부분에는 석기시대의 유물들인 토기 등부터 전시되어 있다. 필자의 시선이 꽂힌 것은, 고대에 배를 타고 오사카 난바(難波, 난파)에 도착했다는 도래인들의 정착에 관한 부분이었다. 난바(難波)는 남부 오사카의 큰 전철역 이름이기도 하다. 바다가 가까운 이 지역에 도래인들이 도착해 정착하면서 형성된 지역(마을)의 이름이다. 그 때문에 이 단어 難波는 배가 풍랑을 만나 부서지는 것을 뜻하는 ‘난파’(難破)와는 ‘파’ 자가 다르지만, 다르게 생각되지 않는다. 

▲오사카 난바(難波)에 온 도래인들의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 위 사진은 오른쪽이 신라 경주, 가운데는 발해의 상경(上京). 사진 = 이상면

이 난바 지역에는 고대에, 특히 우리의 삼국시대에 해당되는 5~8세기에 외지 도래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대형 지도 도판이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데, 도래인들은 멀리 이스라엘과 중동, 인도-동남아-남중국에서도 왔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한반도에서 왔다. 지도에서 한반도를 자세히 보면, “663年 白江口 戰鬪(백강구 전투)”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건 무엇인가? 이건 ‘백촌강(白村江)의 전투’(‘일본서기’에 나오는 내용)라고도 하며, 백제 땅의 백강(혹은 백마강, 오늘날 금강)의 일본식 표기이다. 백제가 660년 신라에 패망한 직후, 663년 백제 잔존 세력과 일본에서 온 원정군 약 4만 명이 힘을 합쳐 ‘백제 부흥군’이란 이름으로 백강 하류에서 나당 연합군과 싸웠지만 패전했고, 그 후 백제인들이 배를 타고 오사카(당시 난바 지역)로 왔다는 것이다. 도판 지도 위의 사진에는 신라 경주과 발해의 수도 상경(上京)도 표시돼 있으니, 여기서부터도 유민들이 도래했음을 뜻한다. 

▲도래인들이 타고 난바로 왔다는 목선의 모형. 사진 = 이상면

▲도래인들이 토착인들과 함께 지었다는 나니와궁의 유적이 박물관 바로 건너편에서 발견돼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 = 이상면

고대부터 근세 전까지 일본의 중심은 교토(京都)와 오사카였다. 따라서 도래인들은 일본 중심지에 도착해 정착한 것이었다. 당시 난바에 정착한 도래인들과 토착민들이 지었던 궁전이 나니와미야(難波宮, 난바와 같은 한자를 쓰지만 일본어 발음은 달라진다)다. 이 궁전은 아주 오래 전에 소멸됐지만, 궁터의 흔적이 1960년대에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 위치는 이 역사박물관 바로 건너편이고, 넓게 울타리를 쳐 놓고 있다. 박물관 2층 학습정보센터에서 이곳과 연관된 ‘나니와 역사’와, 발굴-탐사 과정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시원한 크기로 만들어진 17~19세기 모형들

백제와 고대 일본에 대한 생각을 그만 접고, 아래 9층으로 내려가면, 그 다음 시대 일본과 오사카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여기부터의 전시는 당시 시대상과 문화를 추적하여 만들어 놓은 실내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근대 에도시대(17~19세기)의 오사카 모습은 연극영화의 무대장치처럼 재구성해 놓았다. 거리와 시장 모습, 가정집의 거실 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소형 디오라마 형태가 아니라, 제법 크게 만들어져 보기 시원하다. 

▲17~18세기 오사카 마을과 거리의 모습을 꽤 큰 크기로 재현해 놓았다. 사진 = 이상면

7층의 근현대 전시 공간에서는 서양 문물의 유입과 생활 문화의 변화가 보여진다. 당시에는 의식주 등의 많은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소위 ‘양풍’ 문화가 확산되었다. 전기와 전차가 들어오며 교통수단이 혁신됐고, 서양식 근대 건축이 지어졌으며, 복장과 음식, 주거 공간 등 생활과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말~20세기 초반 일어났던 변화이므로, 보고 이해하기 쉽다. 일본에서는 이런 변화들이 우리보다 30~40년 먼저 일어났다. 

이렇게 오사카역사 박물관은 도시의 발생부터 성장하고 확장되는 모습을 고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둘러볼 수 있게 해준다. 전체 관람에 2~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전시물 설명문에는 한국어도 있어 관람에 지장이 없다. 1층 기념품점에는 한국어 안내책자도 있다. 관람에 지친 필자는 기념품점에서 한국어 안내책자를 산 다음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싸지 않고 깔끔하게 나와 박물관을 나올 때에는 원기를 회복한 듯 했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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