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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외양보다 속사람에 주목하는 세계 건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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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8호 안창현 기자⁄ 2016.02.04 08:54:31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2014년 설계한 칠레 가톨릭대학교 산호아킨 캠퍼스의 안젤리니 센터. 사진 = 니나 비딕 ©ELEM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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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소외 계층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 노력했으며, 에너지 소비를 감소하고, 공공을 위한 공간을 창출했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천으로 인간의 삶을 증진시켰다.” 

2016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를 발표하며 심사위원단이 밝힌 선정 이유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의 올해 수상자는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 48)였다. 그는 모국인 칠레를 중심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건축 설계에서 뛰어난 혁신과 철학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난 2010년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은 칠레 도시의 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아라베나의 가장 대표적 작업으로 꼽히는 ‘엘리멘탈(Elemental)’ 역시 빈민을 위한 공공주택 프로젝트이다. 엘리멘탈 프로젝트는 올해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세계 건축계는 건축과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올해 아라베나를 비롯해 최근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의 면면을 살펴도 그렇다. 독일의 생태 건축가로 알려진 프라이 오토가 작년 수상자였고, 지난 2014년에는 쓰나미 난민을 위한 종이 건축을 만든 일본의 반 시게루가 수상했다. 세계 건축가들의 시선이 건물의 외형을 넘어 그 안의 사람과 공동체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다.

▲2016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사진 = 크리스토발 팔마 ©ELEMENTAL

세계적인 호텔 체인 하얏트 재단(Hyatt Foundation)이 후원하는 프리츠커 상은 매년 인류와 환경에 가장 크게 공헌한 건축가에게 수여되는 건축상으로 유명하다. 41번째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칠레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는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 브라질의 오스카 니메이어(Oscar Niemeyer)와 파울루 멘데스 다 로샤(Paulo Mendes da Rocha)에 이어 네 번째 영예다.

아라베나는 1994년 활동을 시작한 이래,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앞세운 건축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도시와 주택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장기간 노력했다. 사회적이고 정책적인 요구에 부응하면서 건축의 역할을 확장했다.

올해 프리츠커 심사위원들은 아라베나가 ‘좋은 주택의 절반(half of a good house)’이라고 말한, 저렴한 주택을 위한 새롭고 혁신적인 접근법을 극찬했다. 빈민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고안한 아라베나의 엘리멘탈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절반만 지은 집, 종이로 만든 피난처
“공동체 위한 건축이 뜬다”

엘리멘탈 프로젝트는 2004년 칠레 도심을 30년간 불법 점거한 빈민들을 위해 고안해낸 공공주택 설계다. 아라베나는 도심지의 비싼 땅값과 제한된 공적 자금을 고려해 ‘전체 집의 절반만 완성한’ 집을 공급했다.

▲안젤리니 센터의 내부. 아라베나는 내부에 빈 공간을 설치해 채광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 = 제임스 플로리오 ©ELEMENTAL

그는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 주택을 지으면서 거주자들이 추후 손쉽게 증축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독특한 설계를 고안했다. 절반만 지었기 때문에 당연히 건축 비용은 절감됐다. 나머지 절반을 증축이 가능한 빈 공간으로 남겨뒀다. 주민들은 값싼 집에 계속 살면서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됐고, 여건이 나아지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빈 공간을 증축할 수 있었다. 이런 건축 설계를 통해 공동체가 그대로 유지됐다.

아라베나는 건축 설계나 도시 계획 등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지진 해일의 피해를 본 칠레 남부 콘스티투시온 재건 때에도 그랬다.

▲아라베나의 대표적인 엘리멘탈 프로젝트. 거주민 스스로 차후에 집을 증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진 = 크리스토발 팔마 ©ELEMENTAL

이 지역 재건 프로젝트에서, 반복될 수 있는 지진 해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처음에는 물가를 공터로 남기고, 주변에 커다란 방벽을 설치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방벽은 이미 비슷한 시도가 일본에서 실패한 적이 있었고, 공터 계획은 이미 공터에 살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여기서 아라베나를 비롯해 프로젝트 참여 건축가들은 지역 주민의 의견을 더 많이 듣기로 결정했다. 대다수 주민들은 물가를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신 주민들이 함께 할 공공장소는 부적하다고 지적했다. 아라베나는 주민들의 이런 의견을 수렴해 강가에 숲과 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을 실행했다.

▲(위) 콘스티투시온은 2010년 지진 해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아래) 아라베나는 주민들과 함께 이 지역을 공공장소로 이용할 숲을 조성하기로 계획했다. ©ELEMENTAL

그는 이외에도 칠레 산티아고에 있는 자신의 모교 폰티피카 가톨릭대학교 신축 건물들을 세웠고,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상하이 사무소와 텍사스 주 오스틴의 세인트에드워즈대학 기숙사 등을 설계했다.

8명의 건축 전문가로 구성된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아라베나는 현재 사회 참여적인 건축 운동을 대표한다. 특히 그는 대도시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위한 도시 환경을 건설하는 일에 오랜 시간 노력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도시 빈민 위한 공공 프로젝트

이렇게 공공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건축가는 아라베라만이 아니다. 근래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건축가들을 살펴봐도 이런 흐름은 뚜렷하다.

▲2010년 멕시코 몬테레이에 건설된 엘리멘탈 프로젝트의 한 주거지. 노란색 부분이 증축된 부분이다. 사진 = 라미로 라미레스 ©ELEMENTAL

지난 2014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는 종이 건축가로 불린다. 재난과 폭력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을 위해 ‘종이 튜브’ 등으로 임시 건물을 만들어줬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반 시게루는 재난 현장에서 구하기 쉽고 해체와 조립, 이동이 편한 재생 가능 종이 튜브를 기둥과 벽 등의 자재로 사용해 임시 건물을 지었다. 대나무와 종이 섬유, 플라스틱 합성물 등 전통적으로 건축 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것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2005년 칠레 가톨릭대학교 산호아킨 캠퍼스의 쌍둥이 타워. 사진 = 크리스토발 팔마 ©ELEMENTAL

하얏트 재단은 반 시게루에 대해 “20년간 전 세계의 자연 재해 및 인재 현장을 돌며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저비용의 피난처와 공공건물을 지어 피해자들을 도왔다”고 소개하며 “재해 구호 작업에서 건축가로서 그가 보인 인도주의적인 태도는 모두에게 모범이 된다”고 평가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건축을 통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는 찬사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르완다 내전 때 유엔난민기구와 협력해 종이를 사용한 피난민 시설을 만들면서부터다. 자연 재해나 전쟁이 일어나면 대량의 난민이 발생한다. 현장에서 이들을 수용할 다수의 난민 시설을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히 건설해야 하는데, 그는 종이 튜브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반 시게루는 1995년부터 자신이 직접 관련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을 돌며 종이로 난민 시설을 지었다. 그는 1999년 터키, 2001년 인도, 2004년 스리랑카, 2008년 중국 등 전 세계를 다녔다.

▲2012년 산티아고에 설계된 어린이 공원. 사진 = 크리스토발 팔마 ©ELEMENTAL

2011년 동일본 지진 때는 임시 거처의 설계가 조금 더 정교해졌다. 같은 해 뉴질랜드 캔터베리 지진 때는 인근에 무너진 대성당을 대신할 종이 성당을 건축했는데, 미관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축 통해 사람들의 삶을 개선

공교롭게도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지난해 7월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총감독으로 선정됐다.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세계 건축계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건축 올림픽으로 불린다. 그는 올해 있을 비엔날레의 주제로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를 택했다.

“삶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직면해 해결해야 할 다양한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 주변 환경을 더 낫게 만들고, 이로써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라베나는 이를 통해 건축이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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