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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호주] 미국풍 시드니 vs 유럽풍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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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3.03 08:57:46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1일차 (호주 시드니)

오늘 최고 기온 섭씨 43도

무척 고단했던 어제 하루를 긴 잠으로 회복했다. 새벽 비행기, 두 시간 늦어진 시차, 따가운 햇볕 아래 도시 탐방 등 피곤했을 이유는 많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방송에서 시드니 최고 기온이 43도까지 올라간다고 쉬지 않고 경고를 내보낸다. 시드니 기상 관측상 세 번째 더위라고 한다. 여름철 시드니에는 40도 넘는 날이 여러 날 계속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대개 뜨거운 열풍을 동반한다고 한다.

어제 방문하지 않고 남겨둔 시내 명소가 몇 군데 있어서 도시 탐방은 나가겠지만 무리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다행히 날은 아직 견딜 만하다. 일단 센트럴역으로 나가 555번 시내순환버스에 오른다. 시내 중심가 주요 지역을 순환하는 555번 버스는 무료인지라 승객들이 많다. 공공 물가가 비싼 호주에서 시민이든 관광객이든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시드니 박물관

일단 버스가 마지막으로 닿은 서큘러 키(Circular Quay)까지 간다. 어제처럼 사람들이 많지만 날씨 때문인지 흥겨움은 덜하다. 오늘도 애버리진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공연하고 있다. 전통 문화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 좋으련만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이니 애처롭다. 옛 총독관저(Government House)에 세운 시드니 박물관은 시드니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1788년 유럽인들이 발을 디디며 영국의 식민지를 선언한 날부터 시작된 시드니의 영욕을 보여준다.

▲시드니 서큘러 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애버리진의 공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시드니와 멜버른

이미 1920년대에 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고 1932년 하버 브리지(Harbor Bridge) 개통으로 시드니는 절정을 맞이한 듯하다.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동반 성장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주장이다. 멜버른이 유럽풍이라면 시드니는 미국풍이라고 박물관 자료도 인정한다. 미국과 영국이 7:3으로 섞인 것 같던 시드니의 첫 인상이 맞았다. 하버 브리지 개통으로 시드니가 앞서자 멜버른은 1956년 올림픽 개최로 역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1973년 오페라 하우스 개장으로 시드니가 앞선 반면 멜버른은 1996년 올림픽 유치에 실패했고, 그 사이 시드니는 2000년 올림픽 유치까지 성사시키며 여태껏 왔다.

애버리진과 백인 이주자들의 갈등도 소개돼 있다. 자신들끼리도 언어 소통이 안 되는 원주민들은 백인의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백인의 원주민 지도자 납치, 원주민의 복수, 화해, 그리고 저항으로 이어진 시드니 원주민 얘기가 소개됐다. 그러나 결국 애버리진의 땅은 백인들이 조금씩 차지해 들어간다. 애버리진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백인들 행동의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알리려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어서 얄밉다.

▲시드니 도심 풍경. 날씨는 덥지만 찬란한 햇살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 김현주

시드니의 상징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하우스 또한 시드니 박물관의 주요 주제다. 호주인의 감각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는데 오페라 하우스 건립 과정을 통해 조금은 확인할 수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설계자 요른 웃손은 무명이고 경험도 부족했으나 그를 발탁한 안목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오페라 하우스는 설계자가 중간에 사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완공하지만 인류 건축사에 빛나는 시드니의 상징이 됐다. 시드니 인구의 1/3이 외국 출생이라는 통계도 의미 있고 시드니 인구 중 50만 명이 아시아 지역 출생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시드니 박물관은 이외에도 자동차, 주택, 건축물, 공연, 대중문화, 스포츠 등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우아하고 세련된 박물관이다.

▲시드니의 상징인 오페라 하우스는 요른 웃손이 설계했다.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완공된 이곳은 인류 건축사에 빛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 김현주

시드니 도심 풍경

시드니 박물관을 나와 호텔까지 무작정 걷기로 하다. 도심 높은 빌딩 사이로 뻗은 인도는 볕이 들지 않아서 시원하다. 도심의 유명한 거리들을 종횡무진 걷는다.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를 연주하는 거리 악사들은 서울 지하철역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은 바로 그 페루 사람들이다. 마침 큰 슈퍼마켓을 만나서 먹을 것을 샀다. 어제 세븐일레븐 가격의 절반쯤 되는 것 같다. 

슈퍼마켓은 퇴근길에 장보러 들른 시민들로 무척 붐빈다. 계속 걸으니 타운 홀(Town Hall)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건물이다. 다시 조지 스트리트(George Street)를 만나 계속 걸으니 차이나 타운(China Town)이다. 거리에는 아시아 얼굴이 절반은 되니 홍콩 어디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시아인 증가에 위협을 느끼는 극소수 백인들이 인종혐오 범죄로 좌절감을 발산하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뉴욕도, 런던도, LA도, 홍콩도 아닌

두 시간쯤 걸었을 것이다. 화려한 호텔과 쇼핑센터가 즐비한 도시의 겉살과 이민자, 방랑자가 넘쳐나는 도시의 속살까지 두루 살핀 두 시간이다. 어제도 같은 지역을 이동했으나 지하철로 이동한 터라 볼 수 없었던 시드니의 거리 풍경을 두 눈에 흠뻑 적셨다. 마침 퇴근시간이라서 붐비는 차량과 인파 또한 시드니의 다양한 모습이다.

뉴욕이나 런던 같기도 하고, LA나 홍콩 같기도 하지만 감히 세계 어느 다른 도시와도 견줄 수 없는 색채가 분명 여기에 있다. 시드니의 거리 구석구석에는 아시아, 태평양의 색채와 소리가 아주 강렬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호텔이 보인다. 더웠던 여름날 저녁을 공원에서 즐기려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나와 있고 남학생들은 오늘도 농구 게임에 열중이다. 시드니 시민들의 삶은 이렇게 펼쳐진다.


12일차 (호주 시드니 → 멜버른)

산불 비상

어제 43도까지 올라갔던 시드니 날씨가 오늘은 25도에 머문다는 예보다. 날씨가 하루 만에 바뀌는 이 조화 또한 태평양 기후의 특징인가? 제트 스타(Jet Star), 타이거(Tiger), 버진(Virgin) 등이 이용하는 시드니 국제공항 저가항공 터미널은 붐빈다. 지난 한 주일 이상 40도 가까운 열기가 덮고 있는 호주 동남부 지역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주, 빅토리아(Victoria), 태즈메이니아(Tasmania) 주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산불(bush fire)이 연일 톱뉴스다. 북쪽 건조 지역에서 불어오는 열풍에 보태어 당분간 비가 올 기미가 안 보여 호주 사상 최악의 산불이라고 걱정이 크다.

가까운 아시아, 먼 유럽

멜버른행 타이거 항공기는 만원이다. 정시에 이륙한 항공기는 호주의 척박한 평원을 건너 1시간 40분 비행한 끝에 남서쪽 439마일(700km) 지점 멜버른에 도착한다. 멜버른은 오늘 최고 20도로 서늘하다. 멜버른 국제공항에 마침 도착해 있는 국제선은 타이항공, 캐세이퍼시픽 항공, 싱가포르 항공 등 아시아 지역 항공기들이 대부분이다.

항공기의 항속 거리로 보나 승객들이 견딜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나 호주에서 유럽으로 갈 때는 반드시 아시아 지역 어디선가에서 환승해야만 한다. 그만큼 호주는 아시아와 지리적, 심리적, 문화적으로 가깝다. 가깝다고 해도 홍콩 4591마일, 방콕 4547마일, 그나마 덜 먼 싱가포르가 3744마일이다. 그런 나라가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백호주의를 고집하고 있었으니 심각한 시대착오였다. 

▲멜버른은 조형 도시, 창의 도시, 디자인 혁신 도시로 꼽힌다. 도시 속 건물, 조형물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인종 전시장 멜버른

멜버른 공항에서 시내까지 스카이 버스(Sky Bus) 왕복표를 28달러에 구입한다. 버스는 시내 살짝 변두리의 서던 크로스 역(Southern Cross Station)에 도착하더니 시내 호텔까지 나머지 구간을 셔틀버스로 데려다준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저가 호텔은 공용 욕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깨끗하고 조용해 나무랄 데가 없다. 

여장을 풀고 곧장 도시 탐방에 나선다. 멜버른 시내에는 시드니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2차 대전 후 그리스와 이태리 이민자들이 많이 유입된 멜버른은 앵글로-켈트족 위주의 순혈 백인이 주축인 시드니와는 다르고, 1970년대 이후에는 베트남, 캄보디아인이 많이 들어와 인종의 다양성을 더했다. 참고로, 멜버른은 그리스 본국 이외에 그리스인이 가장 많이 사는(80만 명) 지역이다.

▲멜버른 도심 풍경. 320만 명이 사는 대도시지만 어디를 가도 쉴 곳을 넉넉히 만들어 놓아 ‘정원의 도시’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사진 = 김현주

골드러시로 성장한 멜버른

빅토리아 주의 수도인 멜버른은 1835년부터 이주가 시작됐다. 1851년에는 빅토리아 식민주가 뉴사우스웨일스에서 분리 독립하고 금이 발견돼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겪는다. 골드러시 시절에 건축된 화려한 건물들이 잘 보존돼 오늘날 멜버른의 도시 풍경을 멋지게 만들어줬다. 1901년에는 호주가 독립 연방으로 영국 식민지를 벗어나면서 멜버른은 1927년까지 짧게나마 호주의 수도 역할도 했다.

정원의 도시

하루에 4계절을 겪는다는 말처럼 한낮이 되니 태양이 제법 강해진다. 320만 명이 사는 대도시지만 널찍한 공원과 인도가 쾌적하게 지켜주는 거리는 걷기 쾌적하다. 어디를 가도 보행자를 위한 쉴 곳을 넉넉히 만들어 놓은 멜버른은 ‘정원의 도시’라고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도시 탐험의 시작은 호텔에서 매우 가까운 의사당 건물이다. 호주 연방 첫 의회가 열렸던 곳이다. 웅장함이 압도하는 의사당은 런던 의사당 건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라고 한다.

동서로 뻗은 중심가로 중 하나인 콜린스 스트리트(Collins Street)를 따라 서쪽으로 걷는다. 수시로 나타나는 화려한 쇼핑몰은 명품점으로 채워져 있고 스완스톤(Swanston) 거리와 리틀보크(Little Bourke) 거리가 만나는 곳에는 차이나 타운을 상징하는 패루가 서 있다. 중국 상점들 사이로 간혹 대장금, 고기 같은 이름을 내건 한국 음식점들도 섞여 있다. 스완스톤 거리에 타운 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도시 중심쯤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컨퍼런스, 파티, 전시, 만찬, 결혼식 등 각종 민간행사에도 타운 홀을 대여해 준다.

▲멜버른의 차이나 타운. 중국 상점들 사이로 간혹 ‘대장금’ 등 한국 음식점도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조형 도시, 창의 도시 멜버른

도시에 펼쳐진 건물, 교회, 성당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현대식 건물도 저마다 나름대로의 테마를 가진 듯 건축물의 다양성이 문화, 인종의 다양성에 버금간다. 미국 도시를 많이 닮은 시드니에 비해 멜버른은 유럽식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조형의 도시, 창의 도시, 디자인 혁신 도시가 바로 여기 아닌가? 나라 전체 인구가 2300만 명밖에 안 되지만 와보니 호주는 무형의 국력을 많이 가진 나라임을 깨닫게 된다. 각진 회색 도시 서울은 여기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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