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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동티모르] 다양성의 땅에서 가능성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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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4.14 09:01:21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7일차 (동티모르 딜리 → 발리 경유 → 싱가포르 환승 대기)

월요일 아침의 활기

Lago de Lecidere 해변 공원 가는 길에 사나나 구스마웅(Xanana Gusmão) 박물관 및 아트갤러리가 있다. 동티모르 독립 영웅이자 현 총리의 행적을 기념한 곳이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해변에 나가니 오늘은 바다가 아주 푸르고 멀리 동쪽 바닷가 언덕 예수상은 더 가까이 보인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호텔로 올 때는 10달러 줬으나 이제 조금은 이곳 사정을 알게 된 후라서 5달러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택시는 동티모르 대학 앞거리를 지난다. 월요일 아침 캠퍼스 거리가 활기차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불편하지만 거리에 활기가 넘쳐서 좋다. 오늘 월요일 아침 같은 에너지가 이 나라에 언제나 넘치기를 바란다.

딜리 국제공항

드디어 공항이다. 출국세 10달러를 내야 한다. 달러가 금쪽같이 귀한 나라 아닌가? 항공기 출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호주 다윈(Darwin)행 에어 노스(Air North) 항공기가 방금 떠났고, 내가 탈 메르파티(Merpati) 항공기가 오늘 예정돼 있다. 공항터미널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면 소재지 버스터미널 수준을 넘지 않는다. 비행기 뜨고 내리는 소리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간다. 언젠가 저 비행기를 타고 좁은 섬나라를 벗어나 넓은 세계에서 날개를 펼치는 꿈과 희망을 잊지 말기 바란다.

굿바이 티모르 레스테

인도네시아 발리행 항공기는 40분 늦게 만석으로 이륙한다. 발리까지 708마일, 비행시간 2시간 예상한다. 티모르 섬의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파른 산들이 북쪽 해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굴곡이 심한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언제 어디를 가도 넓디넓은 백사장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소유일 것 같다.

꿈같이 찾아왔고 바람같이 지나간 동티모르의 2박 3일을 돌아본다.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자연과 이 순진한 둥근 눈망울의 사람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티모르여, 어서 쑥쑥 자라나서 태평양, 아니 인도양의 기적을 일구어 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티모르는 생활환경은 어려울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 김현주

주목해야 할 나라 인도네시아

항공기는 수많은 크고 작은 섬과 플로레스(Flores)해 사이를 드나들며 소순다 열도(Lesser Sunda Islands)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난다. 고교 시절 지리 시간에 한번 쯤 이름을 듣고는 곧 잊어버렸을 그런 지명이다. 마침 바타비아(Batavia) 항공기 기내지는 플로레스 섬과 웨스트 티모르(West Timor) 등 소순다열도를 지구의 마지막 남은 원시 비경이라고 소개한다. 특이한 점은 이곳은 모두 기독교 지역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통치 시절 도서 지방에 기독교를 보급한 탓이다. 그렇게 보면 인도네시아는 어마어마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이슬람 국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섬(1만 8000여 개)을 가진 나라다.

인도네시아, 즉 ‘인도 사람들이 세운 섬나라’라는 뜻이다. 세 개의 표준시간대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인종과 언어, 종교가 섞인 나라다. 자카르타나 발리, 혹은 조금 더 잘 안다면 수라바야쯤으로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이 먼 남쪽 저렇게 많은 섬들이 있는 곳까지 모두 영토로 가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나라다. 

▲동티모르는 어디를 가도 자연 풍경이 가득했다. 사진 = 김현주

항공기만 환승하고 떠나는 발리

항공기가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접근한다. 유명한 계단식 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발리에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항공기 환승만 하고 황급하게 떠나야 하는 각박한 일정이 얄궂다.

사실 발리는 4년 전 인도네시아 일주 여행길에 들렀던 터라서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준다. 이제는 싱가포르행 에어 아시아(Air Asia) 환승 시간이 넉넉히 남는다. 세계 여느 공항과는 달리 여기는 환승 승객도 입국과 출국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 그에 따라 입국세 25달러와 출국세 11달러가 발생한다(지금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공항과 발리공항은 입국세가 폐지됐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동티모르 딜리에서 겨우 인도네시아 변방까지 왔을 뿐인데 문명 세계의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동티모르의 2박 3일이 컸나 보다.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니 밀린 이메일과 문자가 연달아 들어온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기에 충분하다. 아직 한국까지 머나먼 길이지만 느낌은 집에 다 온 것 같다.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 환한 미소가 동티모르에서의 추억을 더욱 감명 깊게 만들었다. 사진 = 김현주

세계 최고 싱가포르 창이 공항

발리를 떠난 에어 아시아 항공기는 북서쪽으로 싱가포르를 향해 난다. 한국은 북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11번째 타는 항공 이동 구간이다. 머나먼 남쪽 태평양과 오세아니아를 돌고 돌아 집으로 가는 항공기에 앉아 있는 감회가 특별하다. 발리 출발 2시간 30분, 싱가포르 시내의 불빛이 보인다. 올 때마다 더 화려해지는 것 같다.

하역 차례를 기다리며 항만에서 대기 중인 대형 선박들이 수백 척은 되는 것 같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면서 이들 지역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싱가포르도 나날이 각광받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은 지역의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따라 항공기 정비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떠맡았다. 싱가포르 공항을 벌써 여러 번 이용했지만 거대한 공항 터미널 전체에 카펫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이제는 세계의 중심 중 하나가 돼버린 싱가포르에는 오늘도 풍요가 넘친다.

중국 상하이행 동방항공 출발까지 네 시간 남았다. 중국 단체 관광객 한 무리가 지나간다. 행색과 소란함으로 중국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넘치는 달러로 중국인의 해외여행이 갈수록 증가하니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들을 피할 수 없다. 넓은 휴게 공간과 대기실, 무료 인터넷까지 싱가포르 창이 공항의 빼어난 시설 덕분에 시간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18일차 (싱가포르 → 상해 경유 → 서울 도착)

13번째 항공 구간

0시 55분, 상하이행 중국동방항공 여객기는 창이 공항을 정시 이륙한다. 내가 선호하는 뒤쪽 좌석은 이번에도 옆자리가 비어서 상하이까지 5시간 야간 비행의 피로감을 덜어 준다. 상하이 푸동공항에서 환승해 오전 9시 5분 인천행 동방항공기에 오른다. 이제 1시간 30분이면 한국 땅이다.

항공기 탑승 13회, 이번 여행의 총 비행거리는 1만 7379마일(2만 8000km), 지구를 2/3 바퀴 돈 거리다. 내가 지나온 남반구 태평양에 점점이 박힌 수많은 섬들이 아른거린다.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섬들 중 몇 개를 그저 지나왔을 뿐이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중요한 부분은 채워졌다.

▲길거리를 걷다가 마주한 동티모르 담벼락의 벽화. 사진 = 김현주

다양성의 땅 오세아니아

빙하기에 존재했을 육로를 따라 어디선가 왔을 누군가가 그 많은 섬들에 첫 발을 디뎠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다로 갇혀 고립됐지만 수천, 수만 년 해류를 따라, 바람을 따라 그들은 왕래하고 교류해 왔다. 항해술과 모험심이 남다른 서구인이 훗날 들어왔고 중국인, 말레이인도 함께 들어와 내가 지난 몇 주간 목격한 다양성을 만들었다. 교통과 통신, 글로벌 지구 경제로 통합된 지금 이 지역에는 그 옛날의 몇 천, 몇 만 배 규모의 교류가 일어난다. 책에서 배웠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한 다양성의 땅이다.

▲이번 오세아니아 대륙 여행 시 첫 방문지였던 피지에서 만난 청년. 손가락 세 개를 편 독특한 인사법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 김현주

대륙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항공기는 금세 제주도 상공을 지나더니 한반도를 종단해 북행한다. 1월 중순의 눈 덮인 산과 들이 펼쳐진다. 대륙의 동쪽 끝이 동토로 잠들어 있다. 각박한 땅이다. 남쪽 나라들을 돌다가 돌아오니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삼면으로 바다를 끼고 있지만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덕을 누리지 못한 혹독한 대륙성 기후의 땅이다. 사는 것이 분주하고 경쟁이 참혹한 땅이지만 그러한 조건이 한국인에게는 오히려 도전 정신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언제 한 번 이 땅이 역사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는가? 언제나 변방에서 대륙의 눈치를 보며 지냈던 백성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티모르 공항 풍경. 이곳에서부터 동티모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사진 = 김현주

자부심 넘치는 사람들의 땅에 돌아오다

오랜만에 만나는 내 땅이 오늘따라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척박한 땅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운이 움트는 것이 신기하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 치열하고 강건하게 질긴 생명을 엮어온 자부심 넘치는 사람들의 땅이다. 북한에서도 한국인은 프라우드(proud)하다는 동티모르에서 만난 유니세프 직원의 말에 공감한다.

드디어 인천공항이다. 19일 만에 돌아온 나의 소중한 삶의 터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발견으로 충만하고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세상은 참 넓고 인간은 참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뇌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앉으니 긴 여행 뒤의 피곤함과 한국에 도착한 포근함에 저절로 잠이 든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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