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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발칸 반도] 동서 교차로에서 첫 걸음을 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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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4.18 09:48:39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모스크바 환승 →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도착)

더욱 가까워진 러시아

모스크바행 러시아 항공기로 인천공항을 떠난다. 여러 팀의 단체 승객과 엊그제 막 여름방학에 들어간 대학생들로 항공기는 만석이다. 요금이 저렴한 아에로플로트(Aeroflot) 러시아항공은 모스크바 환승이라는 성가심만 뺀다면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최상의 선택이다. 게다가 2014년 1월부터 한·러 비자면제 협정이 발효돼 러시아는 이제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됐으니, 항공기는 앞으로 더욱 붐빌 것이다. 항공기는 네 시간 만에 몽골·러시아 국경을 건너 바이칼호수 남단을 스치더니 다섯 시간을 더 날아 모스크바 셰르메티에보(Shermetyevo) 국제공항에 닿는다.

모스크바공항에서 네 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 환승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도착하니 현지 시각 밤 10시 30분이다. 공항터미널 바로 바깥에서 대기하는 A1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 기차역에 내려 예약해둔 호텔을 찾아간다. 비 오는 어두운 밤거리에 집시로 보이는 매춘녀의 유혹이 발칸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발칸의 복잡한 역사

한때 유고연방의 종주국이었던 세르비아는 이제 인구 710만 명, 남한보다 작은 면적의 소국으로 축소됐다. 발칸 반도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한 만큼 역사적으로 시련도 많이 겪었다. 2세기 로마제국 영토에 편입된 이후 395년에는 동서 로마제국의 분리로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영토로 있다가 16세기 중반에는 오토만 제국 편입, 1876년 오토만 제국에서 독립했다. 1914년에는 이웃 사라예보(Sarajevo)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페르디난트(Ferdinand)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으로 1차 대전에 휩쓸려 막대한 희생을 치른 끝에 승리해 1918년 1차 유고슬라비아연방을 이룩한다. 

▲레푸블릭 광장 전경. 기품 있는 멋진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이태리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진 = 김현주

원치 않던 전쟁에 두 번이나 휘말린 세르비아

2차 대전 때도 중립을 원했던 세르비아의 의지와 관계없이 1941년 나치 침공으로 다시 한 번 전란에 휩쓸린다. 특히 나치는 세르비아에서 유대인과 세르비아인을 학대해서 참극을 겪는다. 당시 나치 점령군 사령관 뵈메(Franz Böhme)는 “독일군 1명을 죽인 대가로 100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을 죽일 것”이라 호언하며 무자비한 통치를 감행했다.

그 결과, 15세기 이베리아반도 유대인 추방 이후 이곳에 정착해서 살던 유대인의 90%에 해당하는 1만 6000명이 학살당했고, 세르비아인도 32∼34만 명이 희생됐다. 2차 대전 말기 구소련 적군(Red Army)의 진입으로 해방된 세르비아는 종전 후 반나치 혁명가 티토(Josip Tito)를 앞세워 2차 유고슬라비아연방을 세웠다. 

▲코소보 전쟁(1999)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으로 부서진 다뉴브 강의 다리는 말끔히 복원됐다. 사진 = 김현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 유고연방

1989년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가 권좌에 오른 이후 유고 연방 여러 지역에서 발흥한 민족주의로 유고연방은 해체돼 슬로베니아(Slovenia), 크로아티아(Croatia),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BiH), 그리고 마케도니아(Macedonia)가 독립해서 떨어져나가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 남아 겨우 유고연방의 명맥을 유지했다.

유고연방 해체에 따라 발발한 내전은 독립을 원치 않았던 세르비아인이 많이 거주했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극렬했다. 세르비아는 전쟁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았으나 독립반대 세력들에게 병참과 병력,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고 1992년에는 UN의 제재를 받기에 이른다.

▲사바 강변 산책로를 걷다가 칼레메그단 공원을 마주했다. 작은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도 도시 전망이 완벽하게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외롭게 소국으로 홀로 남은 세르비아

1999년에는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코소보(Kosovo)의 독립운동으로 전쟁(코소보 전쟁)을 겪었고 2006년에는 몬테네그로가 독립함에 따라 유고연방은 완전히 해체됐다. 2008년에는 코소보마저 독립을 선언하며 떨어져 나가기에 이르렀으니(아직도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보다 복잡한 역사가 또 있으랴.

발칸은 과거로부터 동과 서의 교차로로서 종교와 역사가 복잡하게 얽힌 곳인 만큼 다양성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김새로도 잘 드러난다.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겨우 숙소를 찾아 들어가니 주인 할머니가 반긴다. 유고 내전으로 얻은 오명(汚名)과는 달리 친절하고 따뜻한 세르비아 사람들의 인간미를 맛보니 밤 깊은 시각, 낯선 도시에서 팽팽해졌던 긴장이 풀린다.

2일차 (베오그라드 → 야간버스 → 사라예보,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하얀 도시

베오그라드 탐방에 나선다. 하얀 도시라는 뜻에 걸맞게 베오그라드의 아침은 깔끔하다. 역사는 수없이 소용돌이쳤지만 언제나 발칸의 중심이었던 만큼 베오그라드는 오늘날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인구 117만 명의 도시다. 불과 17년 전인 1999년에 일어난 코소보전쟁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까지 겪었으나 그런 흔적은 이제 말끔히 아물었다. 당시 NATO 공습으로 중국 대사관도 피해를 입었는데 오폭(誤爆)이냐, 의도적 폭격이냐를 놓고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바 강과 다뉴브 강의 합류 지점을 멀리서 바라봤다. 그림 같은 풍경이 절로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칼레메그단 공원

일단 버스 터미널로 가서 오늘밤 사라예보행 버스표를 구입한 후, 사바(Sava) 강변의 산책로를 걷다가 칼레메그단(Kalemegdan)을 향해 언덕을 오른다. 칼레메그단은 공원과 요새, 성채가 어우러진 곳이다. 언덕이 별로 없는 이 도시에서는 이 작은 언덕만 올라가도 도시 전망이 완벽하다. 가는 길에 베오그라드 성당이 먼저 나타난다. 의자 없이 서서 예배를 드리는 전형적인 정교회 교당으로서 외부와 내부가 모두 치장 하나 없이 소박하다. 성당을 나와 칼레메그단으로 들어선다.

다뉴브를 만나다

멀리 사바 강이 다뉴브 강에 합류하는 모습이 보인다. 도나우(독일, 오스트리아), 두나(헝가리), 두나브(세르비아), 두나레(루마니아) 등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양한 다뉴브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적시고 여기까지 1500km 넘게 흘러왔다. 이제 강은 남동쪽으로 흘러 루마니아를 적신 후 흑해 품에 안긴다. 

▲칼레메그단 공원의 모습. 공원과 요새, 성채가 어우러진 곳이다. 공원 가는 길엔 베오그라드 성당도 자리한다. 사진 = 김현주

티토에 대한 엇갈린 평가

공원 안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새가 조성돼 있으니, 한때 여기에 거대한 성곽 도시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요새 안에 있는 군사 박물관에 들른다. 기원전부터 최근까지 세르비아의 굴곡진 역사를 함께한 무기와 군장비들이 전시됐다. 세르비아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나치 침공에 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이 눈길을 끌고, 티토에 대해서도 많은 공간을 할애했다. 나치에 저항했던 혁명가 출신인 티토를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독재자로 상반되게 기술해 놓았다.

박물관 마지막 전시실은 1999년 코소보 전쟁에 따른 NATO 연합군의 세르비아 공습 때 미 공군 F-16 전투기가 격추된 사실을 다뤘다. 또한 나토 공습 때 하늘 길을 열어 줬거나, 공항 시설을 제공한 나라와 그렇지 않았던 나라를 마치 피아(彼我) 구분하듯 색깔로 구분해 전시한 부분이 야릇하게 다가온다.  

박물관을 나오기 직전, 중년의 여직원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세르비아인으로 사는 것이 힘들다며 낯선 이방인에게 푸념한다. 세르비아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1991년에 해체돼 사라진 유고연방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후 발칸 여행 중 지나는 곳마다 티토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바 강 너머로 베오그라드 시내가 보인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즐거워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칼레메그단 공원 정문은 미하일로바(Mihajilova) 보행자 거리로 곧장 이어진다. 찬란하게 아름다운 날씨에 주말을 맞아 베오그라드 시민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 듯 거리는 붐빈다. 기품 있는 멋진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이태리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보행자거리가 끝나는 곳은 레푸블릭(Republic) 광장(Trg. Republike)이다. 국립박물관에 들른 후 그곳에서 멀지 않은 스튜던트(Student) 광장(Trg. Studentski)에 있는 민속박물관(Etnography Museu)에서 시내 투어를 마쳤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떴는데 오늘 밤 10시 30분 사라예보로 이동하는 일정을 남기고 있다. 기나긴 여름 해를 보낼 방법이 마땅치 않고, 게다가 아직 시차도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서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호텔로 돌아와 숙박료를 조금 더 지불하고 늦은 밤 버스 출발 시각까지 몇 시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짧고 깊은 잠을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개운하다. 밤늦은 시각 사라예보행 버스에 오른다. 좁은 버스에 앉아 7시간 넘게 걸리는 밤길을 가려니 부담스럽다. 어둠에 잠들어가는 도시를 떠난다. 사바강변 가장 좋은 위치에 걸린 삼성 전광판이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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