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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행근 중국부자 칼럼] ‘일당 1천원 여공’ 저우췬페이, 최고 女갑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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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5호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2016.05.30 09:34:11

(CNB저널 =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아무런 희망이 없는 ‘흙수저’도 찬란한 ‘금수저’가 될 수 있을까? 힘들고 팍팍한 세상일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를 갈망한다. 중국에서 부모 유산 한 푼 없이 맨손으로 세계 여성 최초-최대 갑부가 된 인물이 있다. 란스커지(藍思科技:Lens Technology)의 저우췬페이 회장이다. 

저우췬페이(周群飛) 회장은 불과 수십 년 전만에도 시계 유리 공장에서 일당 1000원을 받던 여공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그녀의 자산 규모는 500억 위안(약 8조 9000억 원)에 이르렀다. 2015년 11월 중국의 기업 부자 연구소인 후룬(胡潤)연구원은 저우췬페이 회장에게 ‘중국 최고 여성 부호’와 ‘세계 자수성가형 여성 부호 1위’라는 영예를 주었다. 

저우췬페이 회장은 어떻게 중국 최고의 여성 갑부가 될 수 있었나? 그녀는 1970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샹f항(湘鄕) 후텐젼(壶天镇)이라는 가난한 농촌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60년대 폭약제조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중 손가락이 잘려나갔고 눈까지 실명했다. 어머니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막내딸이 5살 되던 해 자살했다. 

그의 부모가 저우췬페이 회장에게 남겨준 유산은 중학교 2학년 학력과 가난뿐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돼지와 오리를 길렀다. 하지만 15세란 어린 나이에 중학을 중퇴하면서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에 디자이너 꿈을 안고 광둥성(廣東省) 선전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선전으로 간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곳에 가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바람이었다. 

중학교 2년 학력이 전부인 시골 소녀가 

선전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1980년대 초 선전은 중국의 첫 개혁·개방 시범 지역이었다.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일자리가 많았다. 그녀가 난생처음 일한 곳은 시계 유리를 만드는 아오야(澳亞)광학 공장이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 또는 새벽 2시까지 꼬박 노동을 했다. 그녀의 직무는 출납장부에 영수증을 붙이고 숫자를 옮겨 적는 허드렛일이 전부였다. 일당은 하루 1달러(1150원)에 불과했다. 

▲후난성 류양 소재 란스커지 본사의 입구. 사진 = 위키미디어

저우췬페이는 일에 의미를 찾지 못했다. 청춘을 낭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3개월 만에 사직서를 냈다. 견습 여공이 사직서를 낸 것에 공장장은 감동받았다. 회사는 유리 인쇄 기술을 다루는 일을 맡기며 그녀를 붙잡았다. 이때부터 저우췬페이는 집념의 화신으로 변신했다. 오후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저녁에는 선전대 야간반에서 회계와 경영 등을 공부했다. 화물차 운전, 세관통관원 자격증도 차례로 취득해 나갔다. 

1990년 아오야광학은 공장 증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고품질의 제품 생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공장 증설은 중단되었다. 저우췬페이는 스스로 사장을 찾아가 제안을 했다. 새 공장을 맡겨준다면 성공해도 월급만 받고, 실패한다면 사장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장은 허락했고 마침내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스무 살 때였다. 이 때문에 중국 언론이 저우췬페이에 관한 보도를 할 때 항상 그의 이름 앞에 ‘알바 소녀’란 뜻의 ‘다궁메이(打工妹)’란 수식어를 붙인다. 

저우췬페이는 2003년 창업했다. 그가 창업한 동기는 간단하다. 엄청난 비난과 질책을 견디지 못해서다. 당시 야오야광학 사장은 홍콩에서 주문서만 받아 오고 공장 운영을 그녀에게 맡겼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장의 친척인 팀장과 팀원들이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자는 바람에 납기일을 지키기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고스란히 모든 책임과 화살은 그녀에게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1993년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퇴사 후 경쟁 업체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췬페이저우는 과감히 창업이란 모험을 걸었다. 창업 동지는 언니, 오빠, 형부 등 8명이었다. 창업 자금은 그동안 틈틈이 모아둔 약 1만 7000위안(약 300만 원)이었다. 운도 따랐다. 세계적 굴지의 휴대전화기 제작회사였던 모토롤라가 제안을 했다.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기 화면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다. 모토롤라는 플라스틱이 쉽게 긁히고 선명하지 못하다는 단점을 보완하려고 했다. 그 보완은 유리였다. 모토롤라 측은 저우췬페이에게 휴대전화기 유리를 제작할 수 있느냐를 타진했다. 

란스커지는 IT 유리액정 기업이다. 란스는 영어 렌즈(lens)를 중국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현재 애플과 삼성 등에 방호유리를 납품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2014년 영업이익은 145억 위안이고 순이익은 11억 7600위안이다. 그 중 9억 위안은 연구개발비다. 7개 공장 종업원 8만여 명 가운데 8000명이 연구개발직이다. 회사가 보유한 핵심 기술 특허만 200개가 넘는다. 

“청춘은 가장 든든한 자본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심”

중국 최고 여성 부호의 회장실은 어디에 있을까? 하늘을 찌를 듯 고층건물에 시야가 툭 터진 사무실이라 상상하면 틀렸다. 회장실은 공장 안에 있다. 심지어 본사 빌딩도 없다. 회사 본부 역시 생산 공장 안에 있다. 특이한 점은 회장 집무실 옆에 침실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 출장을 가지 않는 한 항상 그곳에서 잠자고 밥을 먹는다. 옷도 작업복을 즐겨 입는다. 공장을 순회하면서 직접 기계 작동에 문제는 없는지 조작해 본다. 문제가 발견되면 현장에서 지적한다. “왜 이 문제를 모르고 있었느냐?”고.

▲저우췬페이의 여공 시절 신분증.

그렇다고 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아파트는 공장 옆에 있다. 공장의 회장실 뒷문을 열면 저우 회장의 작은 아파트로 통한다. 항상 아파트에서 나와 사무실과 공장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는 직무에 관해 매우 엄격하다. 간부회의 때 간부들의 앉은 자세가 흐트러지면 “똑바로 앉으시오!”라고 지적한다. 작업복을 즐겨 입고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즐긴다. 언론플레이를 극도로 꺼리지만 직원들의 생일은 꼬박 챙겨준다. 엄격함과 섬세함 그리고 따스함이 그의 경영 노하우다.  

저우췬페이는 결혼을 세 번 했다. 처음에는 당시 아오야광학 사장인 양다청(楊達成)과 1994년 결혼했다. 양다청은 17세 연상이었으며 당시 이혼남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보언(伯恩)광학의 리진취안(李金泉) 사장과 재혼했다. 그리고 2008년 당시 란스커지에서 화물배송 기사로 일했던 두 살 연하인 정쥔룽(鄭俊龍)과 결혼했다. 

중국 청년 창업가들의 우상인 저우췬페이 회장은 자수성가형 갑부의 대표주자이다. 그녀의 성공담은 중국 노동자들의 꿈이다. 그렇다면 그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배움을 향한 끝없는 욕망’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청춘은 가장 든든한 자본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심이다.” 여공에서 출발해 중국 여성 최고 갑부에 오른 ‘핸드폰 유리 대왕’ 저우췬페이의 명언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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