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소셜스탠다드가 첫 선을 보인 공유주택 ‘통의동집’. (사진=김용관)
(CNB저널=안창현 기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주거 및 사무공간들도 새롭게 등장했다. 이제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쉐어하우스(share house)나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가 모두 그런 성격의 공간들이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통의동집’은 국내에서 쉐어하우스가 익숙하지 않았던 2012년 무렵 서울소셜스탠다드(Seoul Social Standard)가 첫 선을 보인 공유주택이다. 대학 시절 함께 건축을 공부했던 성나연, 김하나, 김민철 씨가 설립한 서울소셜스탠다드는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소셜벤처다.
통의동집은 이런 서울소셜스탠다드의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김민철 공동대표는 “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 집을 ‘쉐어’하는 형태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통의동집을 선보였을 당시엔 쉐어하우스가 그리 익숙한 주거 형태는 아니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김 대표는 “이제는 일부 업자들에 의해 쉐어하우스도 새로운 주거 형태라기보다 수익 모델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같은 말이긴 하지만 ‘쉐어하우스’보다 ‘공유주택’이란 단어를 쓰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통의동집에 이어 관악구 신림동에 새로운 공유주택 ‘소담소담’의 문을 연 서울소셜스탠다드를 만났다.
▲서울소셜스탠다드의 김민철 공동대표와 석준기 매니저. 석준기 씨는 리서치 작업과 함께 공유주택의 운영을 맡고 있다. (사진=안창현 기자)
함께 하면서 혼자 사는 ‘통의동집’
“빠르고 밀도 높은 성장의 역사를 가진 서울(Seoul)을 배경으로, 그 안의 사람과 시간, 공간이 만드는 사회적 관계(Social) 속에서, 우리가 지지할 수 있는 표준(Standard)은 무엇인지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단체.” 서울소셜스탠다드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이름이 길고 너무 딱딱한 느낌이라서, 간단히 ‘삼시옷(ㅅㅅㅅ)’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시옷은 차차 사업의 범위를 넓혀갈 생각이지만, 그간 청년 주거 문제에 주목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통의동집이나 소담소담 같은 삼시옷의 공유주택들도 청년 세대의 1인 가구 비중은 점차 높아가는데, 이들의 열악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고민한 결과다.
김 대표는 “건축을 전공해서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 다녔다. 그런데 정작 내가 짓는 집의 대부분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 또래의 주거 공간은 현실적으로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리 세대가 혼자 사는 경우에는 단칸방을 겨우 얻어 사는 것이 고작이다. 열악한 주거 환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은 건축을 짓는 일과 실제 현실의 괴리 때문에 조금씩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을 할 무렵, 김 대표는 대학 동창들인 성나연, 김하나 씨를 만나 “우리 세대의 문제를 스스로 조금씩 바꿔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소셜벤처의 형태로 삼시옷을 만든 것이다. 젊은 층의 1인 가구를 수용하기 위한 공유주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청년 주거 문제 다루는 소셜벤처
사실 기숙사나 고시원, 하숙 등의 형태로 그 동안 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집들은 있었다. 하지만 삼시옷은 이 집들이 일정 기간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외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집, 그래서 목적이 달성되면 원래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는 일시적인 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혼자 살아야 하는 젊은 층이 증가했다. 이들의 주택 환경에서 나타나는 높은 비용과 주거 경험의 질적 저하, 고독이나 불안과 같은 문제들이 중요해진 것이다. 삼시옷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실제로는 남인 사람들과 이루는 공동체와 이들의 집’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당시 국내에서는 낯설었지만 외국, 특히 일본에서는 널리 이용되고 있던 ‘쉐어하우스’를 도입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외국에서 널리 퍼졌다고 해도 국내 주거 문화에 적절할지는 조심스러웠다. 같은 집에 살면 치약 짜는 방향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다투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김 대표는 공유주택을 기획하면서 다양한 사례의 리서치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런 후 삼시옷은 공유주택 아이디어를 가지고 여러 단체에 제안서를 보냈고, 당시 대안적인 주거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면서 프로젝트가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삼시옷이 공유주택의 위치를 통의동으로 정한 이유는, ‘혼자이면서 함께 사는 가족 같은 공동체’가 통의동에 잘 어울리고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통의동집 주변은 한옥마을이다. (사진=서울소셜스탠다드)
통의동은 첨단을 달리는 도심의 편리함과 오래된 동네의 차분함이 교차하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역이다. 당시 창성동이나 효자동, 옥인동 등과 함께 서촌으로 불리며 이런 환경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터였다.
주로 건축가나 디자이너, 작가, 음악가 등 창작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서촌에서 생활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지역의 분위기와 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곳곳에 산재하는 작은 카페와 음식점, 서점과 갤러리는 이들이 자연스레 모이고 교류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장소가 됐다. 삼시옷은 서울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 감각, 혼자이면서도 함께 있는 듯한 느슨한 감각이 당시 통의동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공유주택을 실험하다
그렇게 통의동에 1호 공유주택을 선보였다. 새롭게 건물을 지었던 것은 아니고, 있던 건물을 공유주택의 성격에 맞춰 리모델링했다. 김 대표는 “통의동집 건물의 건축주는 4층에 산다. 삼시옷이 나머지 층을 ‘마스터 리스’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터 리스(master lease)는 장기적으로 건물을 통째로 빌린 후 이를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삼시옷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소셜벤처와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는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H-온드림’에서 펠로우로 선정돼 사업비 지원도 받았다.
통의동집은 경복궁 서쪽 자하문로의 한옥들이 둘러싼 조용한 골목길에 위치했다. 입주자들의 방이 있는 2층과 3층뿐만 아니라 1층과 지하 1층은 통의동집의 개성을 잘 드러낸다. 우선 1층은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골목과의 경계가 희미하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사무실이 뒤편으로 위치하고 나머지 공간을 입주민이 공동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통의동집 1층.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실과 입주민을 위한 열린 공간을 활용된다. (사진=서울소셜스탠다드)
▲지하 1층에는 널찍한 주방과 식탁, 의자 등이 놓인 식당 및 카페 공간이다. (사진=김용관)
지하 1층에는 널찍한 주방과 식탁, 의자 등이 놓여 있다. 함께 밥을 해먹거나 차를 마시고, 혼자서 작업을 하기에도 적합한 식당, 혹은 카페 같은 공간이다. 프라이팬과 냄비, 식기 등 함께 쓰는 공용기가 있는 반면, 컵이나 수저 같은 개인용품은 따로 보관할 있도록 수납장이 분리돼 있다.
김 대표는 공유주택에서 이런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해서 입주자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저마다 취향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배려해야 했다.
통의동집에는 2층에 4가구, 3층에는 3가구가 생활할 수 있다. 각 방에는 침대와 옷장, 책상이 방에 딱 맞게 들어섰다. 좁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수납공간을 늘리는 등 여기서도 입주자들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것이 필요했다.
삼시옷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집 공간을 배치하도록 신경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차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주민들의 관계에서 내적인 문제였다. 생활 습관이나 성향 차이에서 오는 갈등,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애매한 경계에 대한 혼란 등 갈등을 최소화하고 조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집에 살다보니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입주민 회의를 통해 조정해나갔다. 또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가족과 유사한 관계가 형성됐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자연스럽게 넓어졌던 것 같다”고 했다.
▲통의동집에서 입주민이 거주하는 방 모습. (사진=서울소셜스탠다드)
▲통의동집 식당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오픈 키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사진=서울소셜스탠다드)
통의동집에 처음 입주한 사람 중에는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나 학생, 작가들이 많긴 했지만, 건축이나 예술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직장인도 있었다. 그야말로 우연히 통의동집을 알게 됐고, 입주까지 하게 된 케이스다. “그분이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자신은 그야말로 집과 사무실만 반복해서 오가는 생활을 해왔는데, 통의동집에서 산 이후로 집과 사무실 중간 단계가 생겼다고 얘기하더라”며 김대표는 이런 점이 공유주택의 장점인 것 같다고 했다.
새롭게 문을 연 ‘소담소담’
삼시옷은 통의동집을 ‘혼자이면서 함께 사는’ 공간으로 생각했다.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보장받는 것 또한 중요했다. 마을 공동체란 표현에서 흔히 떠올리는 억지스런 결속과 부담감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고 판단했다.
여전히 공유주택이란 주거 형태는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이 있다. 임대료를 포함한 경제적인 부분부터 공용공간의 유지관리, 일상생활에서 입주자 상호간에 지켜야 할 약속들까지 서로 이해심과 배려를 가지고 조금씩 해결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유주택 생활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매일 일상의 나누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일본 등에서 공유주택 문화가 잘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숙제들에 나름대로 잘 대응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삼시옷은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공유주택의 운영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게스트하우스로 공간을 전환하는 것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았다. 공유주택의 공간 형태가 게스트하우스의 그것과 유사하다. 대신 경제적으론 게스트하우스가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최근 관악구 신림동에 새롭게 문을 연 ‘소담소담’. (사진=서울소셜스탠다드)
삼시옷은 게스트하우스로 업종을 바꾸는 대신, 최근 관악구 신림동에 ‘소담소담’이란 공유주택을 새롭게 열었다. 통의동집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했다면, 소담소담은 공유주택의 성격에 맞게 새롭게 건물을 지었다. “애초 삼시옷의 활동이 젊은 세대의 주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활동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김 대표는 다짐했다.
안창현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