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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 국제갤러리 ‘유명한 무명(wellknown unknown)'전] 유명과 무명의 갈림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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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1호 윤하나⁄ 2016.07.13 13:45:47

▲베리띵즈의 설치작품. (사진 = 국제갤러리)


너도 나도 유명해지길 원하는 요즘, 사라진 무명의 가치를 되새기는 전시가 열렸다. 앤디 워홀이 한 말이라고 잘못 알려진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줄 것이다”라는 이 문장은 특히 예술 계통에서 유명해지면 무얼 해도 용인되고, 모든걸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유명이 팝아트에서 중요한 가치였다면, 과연 현대미술에서 유명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까? 유명은 선택일까 아니면 필수일까?

 

▲김영나, 'SET v.2: Cover, p. 12, p. 9, p. 46, p. 44'. 가변 크기, 벽 위에 페인팅. 2016. (사진 = 국제갤러리)

 

유명 쫓는 무명보다 다름으로 구분되는 유명


대형 작가들의 전시를 주로 해오던 국제갤러리는, 최근 초빙 큐레이터의 기획전을 통해  발전가능성이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왔다. 2013년에 열린 기울어진 각운들전에 이어 올해 유명한 무명전도 바로 이 기획의 일환이다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김영나, 김희천, 남화연, 베리띵즈, 오민, 이윤이, EH 7 참여했다. 각자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학도, 음악가 등의 다양한 배경을 갖고 미술계에 발을디딘 작가들이다.

 

그런데 이 작가들을 엮은 전시 제목이 유명한 무명이라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참여 작가들은 최근 몇 년간 활발하게 전시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미술계에선 꽤나 유명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남화연, 'The Botany of Desire'. 비디오, 8분 23초. 2015. (사진 = 국제갤러리)

먼저 이 전시가 제시하는 유·무명의 의미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첫째는 미술계에서 유명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과연 대중에게도 유명한지를 묻는다. 일반 관객과 현대미술 사이의 거리감을 볼 때 미술계의 유명 작가는 일반대중 앞에서 다시금 무명이 되기 쉽다.

 

또 다른 의미는 미술계 내에서 규정짓는 유명의 잣대다. 국공립 또는 대형 사립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함을 판단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유명함은 꼭 기관의 힘을 빌려야만 얻을 수 있는가 등 유명의 현재적 기준도 묻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무명작가들이 공유하는 불안과 맞닿아 있다. 유명해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 거란 일종의 강박이자 현실이 이 고민을 더욱 부추긴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교수는 국제갤러리는 유명한 작가들의 전시를 해왔는데,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를 기획하며 유명과 무명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이 전시는 젊은 작가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질주하듯 유명만 쫓아야 하는 상황에서 무명의 가치를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시 제목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의 내용은 유명한 무명이란 전시 제목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다만 이 제목은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섭외해 전시를 구성하면서, 무명작가들이 유명을 쫓을 수밖에 없는 작태에 던지는 김 교수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섭외된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성으로 이들이 저마다 현재와 다른 배경에서 출발했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다.

  

▲베리띵즈, 'VERYKIPEDIA: VERY NEW NATURE'. 가변 크기, 다중 매체. 2016. (사진 = 국제갤러리)

각자 다른 배경에서 미술을 영유하는 작가들

크리에이터 그룹 베리띵즈는 어반네이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브랜드 마케팅과 실내 디자인 등 기업과의 협업에도 활발한 이들은 이번 전시에, 도시에서 소비하는 자연의 이미지에 대한 아카이빙 프로젝트 베리키피디아(VERYKIPEDIA)’를 선보인다


2013년부터 시작된 베리키피디아는 도시자연에 관한 전문적인 정보부터 기술, 라이프스타일, 패션, 리빙, 디자인 등을 모은 일종의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상품가치가 없는 다양한 모양의 호박들을 전시한 박과 채소’, 식물들을 위한 환자 차트를 묶은 식물 병원’, 성기를 연상시키는 식물들의 사진을 모은 ‘노티 플란츠(naughty plants)' 등의 오브제를 함께 설치했다.

 

김영나 그래픽 디자이너는 2015년 뉴욕의 개인전 제목과 동일한 도록 ‘SET'를 전시계획서로 활용했다. 2006년부터의 작품이 담긴 도록 속 이미지를 선택적으로 발췌해 전시 공간에 월 페인팅(wall painting)했다. ’SET' 연작은 그래픽 디자인의 조형요소들을 순수미술의 형식으로 전환하면서,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하며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건축사진가 EH(김경태)는 모텔의 선을 장식하는 조명들을 촬영했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외곽선만을 포착한 그의 사진들은 스크린 안에 존재하는 3D 구조물을 연상시킨다.

 

디자인과 음악을 배경에 둔 작가 오민은 절제된 이미지와 소리를 통해 통제를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열망을 표현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에 관해 음악을 조형언어로 해석해내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단순 반복되는 행위가 마치 종교처럼 하나의 의식이 되는 작품들('Daughter''Banana')도 전시한다. 영상을 통해 경험하는 이미지와 소리의 기묘한 마찰이 흥미롭다.

 

▲오민, 'ABA Video Score'. 싱글 채널 HD(1080p) 비디오, 스테레오 오디오, 2분 35초. (사진 = 국제갤러리)

 

문학을 전공했던 이윤이 작가는 목재 건반악기 하모니움(풍금)을 우연히 선물 받으면서부터 악기와 함께 했던 전시 여정을 영상으로 풀었다. 이번 전시에서 악기는 전시장에 자리한 가벽을 뚫고 설치된 상태로, 관객들이 직접 연주도 할 수 있다. 미국의 슬랩스틱 코미디언이자 감독인 버스터 키튼의 썰렁한 무표정을 가면으로 쓴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도 함께 전시됐다.

 

이밖에 조각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처음으로 조각에 도전한 남화연 작가도 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영상 작품 욕망의 식물학'(196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을 바탕으로 한 영상)으로 참여한 그는 조각보다 영상매체에 인연이 깊었다. 이번 전시에는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기형 식물부터 시작해 식물이 자연적으로 기형화되는 현상(대화현상)에 대해 질문한다. 이상한 꽃들이 만개한 자신만의 이상한 정원을 만들었다.

 

전시에 참여한 마지막 작가 김희천은 건축을 전공했고 사진 작업을 해왔다. 최근 1년간의 두 전시(일민미술관의 뉴스킨과 커먼센터의 랠리’)를 통해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에는 과거 뉴스킨 전에 선보였던 ‘Soulseek/Pegging/Air-twerking' 영상을 바탕으로 신작 ’Savior'를 선보인다. 지난 두 번의 전시와 이번 신작에 관해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희천, 'Savior'. 스크린세이버, 4시간 5분 52초. 2016. (사진 = 국제갤러리)

 

[인터뷰] 전시 참여 작가 김희천

 

- 아직 김희천 작가의 작업을 보지 못한 독자에게 작업을 소개한다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비디오 작업하는 작가다. 서울의 현재를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가상의 세계로 들여다본다.”

 

- 건축 전공으로 이전에 사진 작업을 했다. 김 작가의 영상 작업에는 사진을 모델링해 얻은 3D 파일이 재료가 되는데, 사진이 건축화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같은 것을 여러 각도로 찍은) 사진 여러 장을 넣으면 입체로 구현해주는 플러그인을 사용한다. 내 나이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난 mp3로 음악을 듣고 유튜브를 통해 해외 밴드의 공연을 봤다. 멀리 있는 것을 가깝게 향유하지만 사실 실제를 경험한 것들이 아니다. 사진들을 통해 얻은 입체는 생각보다 그럴싸한 느낌을 준다. 이 그럴싸함은 현실과 비슷하게 구현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류투성이에 너덜너덜한 표면만 남은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서울의 풍경처럼 보였다."

     

- 3차원으로 구현된 이미지들은 형태만 남은 껍데기처럼 텅 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표피만 남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한국은 표피만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김희천, ‘Soulseek/Pegging/Air-twerking'의 스틸 이미지. (사진 = 김희천 작가)

 

- 3D 모델링 영상에서 들려오는 사적인 내용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몇몇 영상에서는 주관적인 이야기의 객관화를 위해 스페인어를 사용했다고도 알고 있다. 가상공간 속에서 말을 거는 자아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까?

 

내레이션은 일부러 염두에 둔 장치가 아니었다. 여러 대안 중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던 방식이다. 다만 온라인-오프라인의 관계는 점점 변하면서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 거리가 가장 가까운 나라가 아닐까? 'Soulseek'의 여성 캐릭터는 가상의 캐릭터다. 가상의 이미지를 모아 만들었는데, 영상에서는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성관계도 갖는다. 그 캐릭터는 나일수도 있고 내가 아닐 수도 있다.

 

- ‘랠리는 가상현실에 둘러싸인 인간에 관해 작업했다고 알고 있다.

 

랠리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고민한 내용이다. 내가 무얼 보고 어디에 서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담았다. 핸드폰의 온라인 SNS가 가상이고, 일반적인 현실이 현실이라면 나는 그냥 그 둘을 오가는 존재로서의 액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유리파사드(전면 유리 건축양식 투명해보이지만 빛을 반사하는 벽)가 나왔다."

 

- 사진의 모음, 인스타그램 비디오 모음, 웹 라이브러리, 거대 mp3 파일 컬렉션 등 작품 전체에서 엄청난 양의 축적이 눈에 띈다. 작가에게 아카이브 혹은 무언가의 모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나는 실물을 모아본 경험이 별로 없다. 모은다는 개념보다 지우지 않는다는 게 더 적절하다. mp3 파일은 모은다기보다 지울 필요가 없던 것처럼 수집의 개념이 아니다. 규칙은 있었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이렇게 모으는 것의 장점은 혼자 꾸준히 무언가를 했다는 거다. 무언가를 꾸준히 모아놓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바라보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번 'Savior'에 사용된 1600여 개의 인스타그램 비디오는 그동안 작업하지 않는 순간에도 작업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꾸준히 찍은 영상들이다. 그런데 1년 후 영상들을 돌아봤는데 모은 영상들 자체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런데도 영상을 모으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일하는 상황에서 작업하는 자아가 찌그러지지 않게 하는 노력으로 영상을 찍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다. 영상들 각각이 다 훌륭하진 않았지만 그 행위가 중요했다.

 

- 'Savior' 작품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이전 작업 ‘Soulseek/Pegging/Air-twerking'이 실행되는 일정 시간 동안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으면 스크린세이버(화면보호기)가 작동한다이 스크린세이버가 이번에 선보인 신작 'Savior'다.  


’Savior‘가 로딩 되는 과정은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출근길 같은 거다. 직장에 가면서 여러 생각을 한다. 작업도 하고 싶고 집에도 가고 싶다. 작가로서의 생각을 눌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Savior'는 내가 일할 때의 모습과도 같다. 일하는 자아는 미세한 마우스 조작 한 번으로도 쉽게 무너져 작업과 일의 경계가 흐트러진다.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로 데뷔한 지 이제 1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직장을 다녔던 내가 작업을 위한 자아를 놓지 않기 위해 인스타그램 영상을 찍었고 그게 스크린세이버가 됐다.

 

▲김희천, '바벨'의 스틸 이미지. (사진 = 김희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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