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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코타키나발루] 멋진 경치와 잔혹한 日 침략흔적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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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7.11 09:20:5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코타키나발루) 

도시와 인근 섬 사이 제셀톤 포인트

도시 탐방에 나선다. 평소 동남아 웬만한 지역에서는 스쿠터를 대여해서 근거리 교통수단을 대신했듯이 여기서도 스쿠터가 안성맞춤으로 보이지만 아뿔싸! 면허증을 여행 짐에서 빠뜨렸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여권과 운전면허증 정도는 사진으로 찍어서 휴대폰에 넣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도보와 버스로 도시를 탐방해야 한다.

시내가 끝나는 지점쯤에 위치한 제셀톤 포인트(Jesselton Point)로 걸어간다. 이 도시와 인근 섬들을 연결하는 여객선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제셀톤은 영국 보호령 시절 코타키나발루의 옛 이름으로서 당시 북보르네오 특허회사 부사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석호 위 아름다운 시티 모스크

제셀톤 포인트에서 시티 모스크(City Mosque)까지는 4km. 용기를 내서 걷다보니 얼마 후 버스가 와준다. 낡은 버스지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시티 모스크는 우리나라 강릉 경포호나 속초 청초호, 영랑호처럼 해안에 생긴 석호(潟湖, lagoon) 위에 세워진 수상 모스크다. 파란 돔과 주변 울창한 열대우림, 그리고 호수가 조화를 이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 이번에는 사바 주 모스크(Sabah State Mosque)를 향해 걷는다. 진짜 금을 넣은 황금 돔과 높이 솟은 단일 미나렛으로 유명한 도심 모스크에는 금요일 오후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한다.

▲제셀톤 포인트는 도시와 인근 섬들을 연결하는 여객선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사진 = 김현주

▲코타키나발루의 아름다운 거리. 형형색색의 그림이 그려진 건물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북보르네오의 역사-자연-민속 담은 사바 박물관

사바 주 모스크에서 박물관 단지(Museum Complex)는 가깝다. 사바(Sabah) 박물관은 브루나이 술탄, 영국, 일본, 그리고 말레이시아로 통치자가 바뀐 북보르네오의 역사와 자연, 민속을 담은 볼거리 많은 박물관이다.

박물관 역사 섹션에는 일본의 통치(1942~1945) 시절에 관한 기록이 유독 많다. “처음에는 동남아에 들어와 있는 유럽인을 캠프로 보내며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기치 아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등 환영을 받는 듯 했으나 곧 마수를 드러내고 말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극악무도한 ‘산다칸 죽음의 행진’

일본 점령군의 극악무도한 통치는 ‘산다칸 죽음의 행진(death march)’으로 절정을 이뤘다. 일본군은 1942~1943년 싱가포르 전투에서 붙잡은 영국호주연합군 전쟁포로(POW) 2750명을 보르네오섬 동북부 산다칸(Sandakan)으로 데리고 와 비행장 건설에 투입했다.

전쟁 말기인 1945년 전황이 일본군에 불리해지면서 세 차례에 걸쳐 포로들을 260km 떨어진 라나우(Ranau)로 정글을 뚫고 도보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질병과 사고, 기아, 총살 등으로 2345명, 즉 포로 대부분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필리핀 바탄(Bataan) 죽음의 행진과 함께 2차 대전 중 일어난 가장 잔혹한 전쟁범죄로 기록됐다. 물론 전쟁이 끝난 뒤 일본군 전범 6명이 산다칸 학살과 관련된 혐의로 처형됐다.

▲사바 박물관은 일본 점령군의 극악무도한 통치 ‘산다칸 죽음의 행진’에 대해서도 다룬다. 1945년 질병과 사고, 기사, 총살 등으로 포로 대부분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사진 = 김현주

▲사바 박물관 내 마련된 민속촌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바 지역의 전통가옥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 = 김현주

사바 지역의 전통가옥 재현해 놓은 민속촌

박물관 단지 안에 꾸며놓은 민속촌(Heritage Village)을 이어서 찾는다. 울창한 밀림 속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사바 지역의 전통가옥들이 재현돼 있는데 그중에는 화교들의 밀림 속 농가주택이 눈길을 끈다. 주로 중국 광동성과 복건성에서 노동자로 이민 온 초기 화교들이 낯선 열대 풍토와 기후에서 흘린 땀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다.

시내 빠당메르데카(Padang Merdeka, 독립광장)로 나와 시청을 지나 가야 스트리트(Gaya Street)를 찾는다. 차이나타운이라지만 음식점과 설을 맞아 달아놓은 연등 말고는 특이할 것이 없다. 중국계가 절반인 이곳에서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이 왠지 생뚱맞다.

▲코타키나발루 시티 모스크는 석호 위에 세워졌다. 파란 돔과 주변 울창한 열대우림까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사진 = 김현주

▲진짜 금을 넣은 황금 돔이 돋보이는 사바 주 모스크에는 금요일 오후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한다. 사진 = 김현주

코타키나발루를 떠나며

오던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시계탑(clock tower)이 나온다. 이 도시의 으뜸 랜드마크로, 원래 등대 역할을 담당했다. 2차 대전 말기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건축물이다. 이 도시에 맺혀 있는 역사의 사연들을 웅변하는 듯 시그널 힐(Signal Hill) 작은 언덕 위에 의연히 서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오스트레일리아 플레이스(Australia Place)도 지척에 있다. 2차 대전 끝 무렵 일본군으로부터 코타키나발루(당시 이름 제셀톤)를 탈환하기 위해 진입한 호주군이 야영했던 곳이다. 기념 동판 하나 만이 남아 그날을 일러준다. 이렇듯 호주는 말레이시아, 아니 동남아시아 곳곳과 오랜 인연이 닿는다. 오늘날 호주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2차 대전에 흘린 피와 땀의 보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시 탐방을 마치고 늦은 밤 공항으로 향한다. 심야의 코타키나발루 공항은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밤에도 4~5편의 항공기들이 한국에서 들어오고 떠난다. 매일 수백, 수천여 명씩 쏟아져오는 한국인은 이 도시 입장에서는 대박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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