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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남미] 브라질 속의 일본,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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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8.29 09:53:56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6일차 (리우 → 상파울루)

마라카낭 축구경기장

오늘은 상파울루로 돌아가는 날이다. 버스 출발시각인 오후 1시 45분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어제 남겨둔 몇 곳을 아침에 들른다. 호텔 조식 후 시네란디아 메트로역에서 마라카낭(Maracanan) 축구 경기장으로 향한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알려진 마라카낭 구장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을 위해 건설했고 한때 20만 명까지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20만 홈 관중 앞에서 우루과이에 패배했다.

브라질 인종

브라질은 백인 55%, 메스티조 혹은 물라토(혼혈 흑인) 38%, 흑인 6%, 동양인 및 기타 1%로 구성됐다. 그러니까 브라질 흑인들은 대부분 혼혈이라고 보면 된다. 아프리카 흑인 중에서도 체격이 좋은 앙골라나 모잠비크 출신을 조상으로 뒀거나 포르투갈 백인들과 피가 많이 섞여서 훤칠하고 멋진 사람들이 많다. 

중부 혹은 서부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 많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펠레,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브라질 축구 영웅들의 모습을 그려 보라. 백인들은 이베리아 반도 출신들이 많으므로 전형적인 남유럽 얼굴이 많지만 중북부 유럽 출신 조상을 둔 백인들도 적지 않다. 

마라카낭에서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시네란디아 역을 나오면 펼쳐지는 플로리아나(Floriana) 광장에는 여기가 과거 197년 동안 대국의 수도였음을 말해 주는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광장을 둘러싸고 시청사(Camara Municipal), 바로크 양식의 시립극장(Teatro Municipal), 로마네스크 양식의 국립도서관(Biblioteca Nacional)이 우람하게 서 있다. 과거 식민 종주국 포르투갈보다 멋지고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건축물들이다.

폭죽놀이

어디선가 강한 폭발음이 두어 번 들리지만 시민들은 기척도 않는다. 누군가 장난으로 아주 강한 폭죽을 터뜨린 것이다. 연말연시 풍습인가 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휴가철의 금요일 오후인 만큼 터미널은 무척 붐빈다. 나도 거기 섞여 오후 1시 45분 상파울루행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나라에서 지구 정반대 쪽 머나먼 곳, 그러나 여기에도 멋진 사람들이 부지런히 살고 있음을 확인한 1박 2일 끝에 리우를 떠나는 마음에 조금은 감회가 일기 시작한다.

상파울루행 버스 여행은 참으로 안락했다. 중간 휴게소 출발 이후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상파울루 찌에쩨 버스터미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거대한 터미널이다. 메트로를 이용해 헤푸블리카(Republica) 광장으로 가 근처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밤늦은 시각 여행 일지를 정리하는 사이 바깥 거리에는 총소리에 가까운 폭죽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리우 시립극장. 브라질리아로 수도가 옮겨가기 전까지 리우는 197년 동안 브라질의 수도였다. 사진 = 김현주

상파울루 개관

삼파(Sampa)라고도 불리는 상파울루는 인구로 보면 멕시코시티와 도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이고 남반구에서 가장 큰 도시다. 1554년 정착이 시작됐고 1711년 시로 성립된 이후 인근 산토스(Santos)항을 통한 커피 수출로, 브라질 내륙 개발 전진기지로 발전을 거듭했다.

오랫동안 유럽에 의존하던 산업이 세계 대전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독자적인 산업생산 능력 또한 구축하게 된다. 상파울루는 백만장자 숫자가 인도 뭄바이(21명)와 함께 세계 6위를 기록할 정도다. GDP 규모로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고 2025년이면 도쿄, 뉴욕, LA, 런던, 시카고에 이어 6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의 나라 브라질

브라질은 이민의 나라다. 1888년 영국의 압력에 따른 노예 해방 이후(영국의 노예해방 종용 이면에는 인력을 줄이고 기계를 팔려는 의도가 있었다) 흑인 인구 증가를 염려한 행정 당국은 유럽 각 지역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였고 유럽 이민자들에게는 토지 공여 등 특전을 줬다. 그중에서도 포르투갈, 이태리, 독일계 이민이 주축을 이뤘고 시리아, 레바논의 기독교도들과 동아시아 지역 이민들도 한 몫을 했다.

연휴 휴관으로 방문을 하지는 못했지만 상파울루에는 이민박물관(Museu da Imigracao)이 있다. 같은 장소에 있는 이민자 기념관(Memorial do Imigrante) 또한 의미 있는 곳이다. 1887년 문을 연 이 기념관은 산토스항에 도착하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돌봐주는 이민자 호스텔 역할을 하면서 이민사회 형성에 기여했다. 1882년부터 1978년 사이에 60개국 250만 명의 이민자들이 여기를 거쳐 갔다고 한다.

▲세 광장에 있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의 고딕 첨탑. 콜로니얼 시대 건축물들이 현대식 쇼핑가 사이에 숨듯이 모습을 내민다. 사진 = 김현주

▲화강암 깔린 좁은 골목길들을 번갈아 지나 세 광장에 다다랐다. 사진 = 김현주

북부는 흑인, 남부는 백인

출신지역별 브라질 인종 분포와 관련해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이민자들은 떠나온 북반구 고향과 비슷한 위도에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기후와 식생이 고향과 비슷한 곳에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적도 가까운 브라질 북동부 열대, 아열대 지역은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남회귀선이 지나는 상파울루와 리우 남쪽 지역에는 흑인들이 거의 없다.

브라질 북동부 흑인 지역은 사탕수수 농업이 쇠퇴한 이후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다 보니 브라질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브라질 정부는 낙후 지역 개발을 위해 아마존 중류 마나우스(Manaus) 같은 곳을 국제자유무역 지대로 선정하고 산업유치에 힘쓰고 있다. 아시아에서 파나마 운하 건너 카리브해 지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의 접근이 쉽고 북미와 유럽도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을 적극 살린 경우에 해당한다.

7일차 (상파울루)

상파울루 도심 풍경

호텔을 나와 헤푸블리카 광장(Praca de Republica)을 지나 안항가바우(Anhangabau) 메트로역 근처에 가니 르네상스 양식의 시립극장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내친 김에 넓은 광장과 화강암 깔린 좁은 골목길들을 번갈아 지나며 세 광장(Praca de Se)까지 걷는다. 콜로니얼 시대 건축물들이 현대식 쇼핑가 사이에 숨듯이 모습을 내민다. 

메트로 동서선과 남북선이 만나는 세 광장에는 네오고딕 양식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 있다. 브라질 종교 역사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가 의미를 더하는 성당 내부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도 성당에 앉아 감사와 희원의 기도를 올린다. 지구 반대쪽 가족을 생각하니 살짝 목이 멘다.

친절한 브라질 사람들

브라질 사람들은 친절하다. 전형적인 하이 컨택트(high contact), 즉 고접촉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간단한 지도 한 장에 불충분한 표지판과 씨름하며 감각만으로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만큼 가다가 수없이 길을 묻고 또 묻는다. 이곳 사람들은 좋은 일, 고마운 일 등 수많은 상황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제스처를 빈번히 사용한다. 나도 길 알려준 데 대한 고마움, 그리고 잘 알았다는 뜻을 담아 엄지손가락을 자주 올리게 된다.

▲시립시장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삶의 활력을 뿜어낸다. 시장에는 어류, 육류, 열대 과일, 잡화 등 없는 게 없다. 사진 = 김현주

▲독립광장. 포르투갈 황태자 돈 페드로 1세가 말 위에서 칼을 빼들고 독립선언을 한 그 자리에 1922년 기념상이 세워졌다. 사진 = 김현주

상파울루의 일본계 커뮤니티

조금 더 걸어 시립시장(Mercador Municipal)까지 간다. 낯선 도시 탐방시 방문 1순위는 재래시장이다. 그 나라 모든 인종들이 모여 삶의 활력을 뿜어내는 분위기는 언제나 좋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보기에 열중이다. 멋진 돔을 얹은 건축물 실내에 있는 시장에는 어류, 육류, 열대 과일, 잡화 등 없는 게 없다. 특히 육류는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특상등품이다.

시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나를 보고 한 상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포즈를 취해 준다. 시장 바로 길 건너편, 킨조 야마토(Kinzo Yamato) 시장은 채소청과물 시장이다. 일본계 상점 주인들이 많이 보인다. 100년 이민 역사에 70만 명을 육박하는 상파울루 일본 커뮤니티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멀지 않은 리베르따지(Liberdade) 지역은 일본인 지역으로서 일본 이민박물관(Museu de Japones Imigrantes)이 있을 정도다.

대국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독립공원

상파울루 메트로는 매우 쾌적하다. 전차가 자주 다니고 치안도 좋아 지하철 승차 시간만큼은 마음이 아주 편하다. 시립시장을 벗어나 상 벤투(Sao Bento) 메트로역에서 독립공원(Parque da Independencia)이라고도 불리는 이피랑가 공원(Parque da Ipiranga)으로 향한다. 1822년 세워진 공원이다. 

포르투갈 황태자 돈 페드로 1세가 말 위에서 칼을 빼들고 독립선언을 한 그 자리에 1922년 기념상이 세워졌고 그 앞에는 영원한 횃불이 타고 있다. 정원이 아주 잘 가꿔진 공원 높은 곳에는 파울리스타 박물관(Museu Paulista)이 있으나 휴관이라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독립공원의 규모와 정원, 파울리스타 박물관까지 합해지니 대국의 스케일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피랑가 공원은 1822년 세워졌다. 정원이 아주 잘 가꿔진 공원 높은 곳에는 파울리스타 박물관이 있다. 사진 = 김현주

▲상파울루 최대 번화가 파울리스타 거리를 찾았다. 브라질 축구가 그냥 세계 1위가 된 게 아니다. 사진 = 김현주

파울리스타 거리

여기서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길이 난감하다. 도시 외곽이라서 메트로역이 멀어서 막막한데 마침 젊은 부부가 자신들도 메트로역 앞을 지나간다고 차에 태워 준다. 휴일 오후 한적한 메트로 내에는 휴일을 맞아 나들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상파울루 최대 번화가 파울리스타 거리(Avenida Paulista)다. 

콘솔라상(Consolacao) 메트로역에 내려 파울리스타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오늘 자선 마라톤 대회와 축제로 차량이 통제돼 걷기에 그만이다. 언론사, 방송국, 은행 등이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편도 3~4차선 대로를 따라 길게 뻗어 있다. 그 사이에 고급식당과 부티크, 영화관, 카페 등이 점점이 박혀 있는 거리는 싱가포르 오차드(Orchard) 거리를 많이 닮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다. 간혹 짓궂은 사람들이 초강력 폭죽을 터뜨려 깜짝 놀라게 하지만 나도 그 무리에 섞여 분위기에 젖는다.

8일차 (상파울루)

상파울루 한국 할머니들

오늘은 하루 종일 여유로운 날이다. 아침에 한가로이 호텔을 나와 헤푸블리카 광장에서 메트로를 타고 멀지 않은 찌라덴찌스(Tiradentes)역으로 향한다. 역을 빠져 나오자 영락없는 한국 얼굴의 노신사가 인사를 건넨다. 평안도 출신이고 서울 중구 남창동에 살다가 이민 온 지 40년 됐단다. 저쪽에는 곱게 차려입은 한국 할머니들이 교회버스를 기다리다 나를 보고 반가워한다.

지금은 서울 거리에서 들을 수 없는 1960년대 억양이 담긴 서울 말씨가 귀에 꽂힌다. 오래된 흑백 한국 영화를 보면 들을 수 있는 바로 그 말씨이다. 반가운 마음 한켠에는 40년 전 청년, 중년 시절에 고국을 떠나 이곳에서 겪었을 너무나도 머나먼 고국에 대한 향수를 생각하니 오히려 가슴이 찡하다.

한국인 패션거리 본헤찌로

한국인들의 브라질 이민은 1960년대에 시작했고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내가 찾은 이 지역은 본헤찌로(Bom Retiro), 한국인 패션거리다. 연휴라서 상가는 완전히 철시했지만 죠세 빠울리누(Jose Paulino) 거리를 따라 거대한 패션타운이 형성돼 있다. 지금은 유럽이나 뉴욕, 한국을 왕래하면서 최신 패션을 따라가고 있지만 이민 초기 한국인들은 순전히 독자적인 감각으로 한국판 브라질 패션산업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국이 너무 멀어 왕래와 정보 교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어 박물관

근처에는 건설한 지 100년 넘은 루스(Luz) 기차역이 있다. 아직도 통근열차 출발역으로 이용 중이고 그 모퉁이에는 포르투갈어 박물관(Museu du Lingua Portuguesa)이 있다. 물론 아쉽게도 오늘 휴관이지만 브라질 1억 9000만 명을 비롯해 세계 23개국에서 사용하는 포르투갈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포르투갈은 쇠퇴해 유럽 변방의 낙오자로 전락했지만 해양 대제국의 영광은 여기 이렇게 그들의 언어를 통해서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린 본헤찌로 지역. 한국인 패션거리이기도 한 이곳엔 거대한 패션타운이 형성돼 있다. 사진 = 김현주

▲일본인 거리인 리베르따지는 일본식당은 물론이고 거리의 가로등까지 온통 일본풍이다. 사진 = 김현주

리베르따지 일본 거리

루스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이동했다. 일본 지역을 보기 위해서다. 신사(神寺), 일본식당은 물론이고 거리의 가로등까지 온통 일본풍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일본 얼굴들이다. 일본 이민자 박물관을 지나 리베르따지(Liberdade) 메트로까지 일본 거리를 걷는다. 교토 어디쯤 와 있는 기분이다. 

70만 명으로 추산되는 브라질 내 일본 커뮤니티는 브라질 사회 각계에 폭넓게 진출해 기반을 굳혔다. 초기 커피농장 경영을 위해 이민 온 이후 브라질에는 없는 각종 특용 작물을 재배, 생산해 큰 호응을 얻었고, 무엇보다도 성실하고 정직한 이미지 덕분에 브라질 사회에서 평판이 아주 좋아 한국인들도 덩달아 덕을 본다고 한다. 리베르따지 메트로역 앞에 닿으니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가 모두 들린다. 동양 식료품점 또한 곳곳에 있다. 중국 이민은 늦었지만 최근 들어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비오는 거리를 걸어 세 광장, 헤푸블리카 광장까지 왔다. 휴일이라 통행자가 적은 시내 중심가는 온통 노숙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마침 문을 연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호텔방에 돌아와 여유로운 오후를 즐긴다. 남미의 대국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이제 이 도시를 길을 잃지 않고 다닐 만큼 익숙해졌지만 그 즈음이면 도시를 떠나야 하는 나의 바쁜 여정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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