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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커버작가 공모 ③ 이찬주] 동일노동에 전시장에선 예술, 공사장에선 "못배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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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9호 김연수⁄ 2016.09.01 13:56:32

▲이찬주, '옥탑 500에 30'. 시멘트, 혼합재료. 41 x 37 x 69cm. 2013.


어떤 작가들의 작품 중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어떤 은유도 사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표현방법이 서툴게 보일 때가 있는 한편, 어떤 경우에는 응고된 감정이 축적된 외마디 외침처럼 그대로 가슴 깊이 들어올 수도 있다.


내 집 없이 남의 집을 짓다


작가 이찬주는 공사 현장에서의 경험이 기반이 된 작업을 한다.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는 스스로 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와 공사 현장을 전전했다. 이 일은 어쩌면 굉장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비교만 없다면.


한국은 여전히 육체노동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다. 그리고 이론적 지식만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근본부터 잘못된 의식은, 모든 손기술이 필요한 생산 활동마저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찬주는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먹선을 튀기거나, 시멘트를 개는 방법을 건설 현장에서 배운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주제가 일상으로 스며든 지 오래고, 더불어 주로 쓰는 재료마저 일상의 것들로 변모했는데, 학교에서는 돌, 흙, 나무 등의 전통재료를 다루는 것에 그친다. 학교가 현대미술이 가야 할 길을 정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모순이기는 하다.


한편, 이찬주는 현재 일정하게 머무는 집이 없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잠을 청하고, 생계를 위한 일터에서는 타인이 머물 공간을 짓는다. 작가의 작품엔 그가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며 사회로부터 느낀 허망함이 반영된 듯하다.


▲이찬주, '빌딩 1000에 100'. 시멘트, 혼합재료, 90 x 44 x 67cm. 2013.


“내 작업을 위한 노동은 공사장의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공사 현장에서 접한 재료와 그곳에서 익숙해진 방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건축 기법 그대로 각목을 켜서 거푸집을 만들고 시멘트를 깔고 철근을 심어 만든 빌딩이나 집 형태의 조형물과 집, 다리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공사를 위한 비계(발판) 구조물이나 건축물을 둘러싼 펜스가 남아있는 미완의 상태다. 조밀하게 짜인 구조로 끊어질 리 없어 보이는 다리는 토막나 방향을 달리한 채 어긋나 있다. 그가 창조한 세계는 시멘트와 건설 현장에서 쓰고 남은 폐목재의 색만큼이나 어두워 보인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보니 점점 학업에서 멀어지기에, 시간과 보수가 그나마 나은 일용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는 일하는 도중 “못 배웠으니 이런 일을 하지”라는 핀잔을 몇 차례나 들었단다. 작가는 “같은 재료와 같은 기법을 사용한 결과물이 갤러리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의 태도가 진지해진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찬주, '2013 다리'. 각목, 노끈, 가변설치. 2013.


질투가 아닌 희망


그런 결과물들을 지켜보며 문득 반복되는 육체적 노동을 작업에서도 반복해서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힘든 노동 끝에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건축물을 지을 때나, 작업을 할 때나 완성돼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분명 존재한다”고 답한다.


이찬주를 작업은, ‘N포 세대’, ‘흙수저’로 대변되는 현재 젊은 세대들을 만들어 낸 사회구조 및 같은 방법으로 생산된 결과물이 전시장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드러나는 인식의 이중성 등을 비판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바벨탑을 쌓았던 인류의 본성처럼 철근과 시멘트 등 강인한 재료의 질감과 함께 혈기 왕성한 젊은이의 숨기지 못한 희망도 드러난다.


▲이찬주, '엘리베이터'. 시멘트, 혼합재료, 31 x 25 x 89cm. 2013.


절박한 감정으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은 대게 무겁거나 어둡기 마련이다. 해소의 과정을 거치듯 작가는 몇 년간 무거운 철근, 시멘트와 함께 침잠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작업은 모습이 많이 바뀔 듯하다. 그가 보여 준 드로잉은 집을 안에 품고 커다란 빨간 풍선과 함께 공중을 떠다니는 배의 형상이다.


이찬주의 작업은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중 꽤 많은 구절을 연상시킨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그는 어쩌면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정상적인 청춘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시인이 그랬듯 이찬주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희망의 내용이 질투뿐’인 것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


▲계획 중인 작업의 아이디어 스케치.(사진=이찬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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