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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칠레] “옛 영광 아릿아릿” 부산 영도 닮은 발파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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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9.06 14:25:04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9일차 (상파울루 → 산티아고 → 발파라이소)

한국 기업끼리 경합하는 브라질 시장

상파울루에 머문 3박 4일 동안 계속 비가 오더니 기온이 뚝 떨어져 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공기가 차다. 헤푸블리카 광장에서 공항버스로 40분 걸려 과룰류스 국제공항에 닿았다. 연휴가 끝난 월요일 아침 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 인파로 붐빈다. 카페테리아에서 피자 한 조각과 커피를 시켜 먹으니 가지고 있던 브라질 화폐가 동전 한 닢까지 모두 처리된다.

공항 전광판은 무조건 LG 아니면 삼성이다. 브라질 시장에서는 원래 LG가 선두였으나 삼성의 맹추격으로 모바일 분야는 역전됐다고 한다. LG 입장에서는 속상할 일이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브라질 시장을 놓고 한국 기업이 1, 2위를 다투는 모습이 기분 좋은 일이다.

안데스 준봉을 만나다

상파울루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는 항공기로 3시간 45분이 걸린다. 정시 이륙한 항공기는 남서 방향으로 진행해 아르헨티나 대평원과 코르도바, 멘도자 같은 도시 위를 날더니 만년설로 덮인 해발 6000~7000미터의 안데스 준봉들을 만난다. 말로만 듣던 안데스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니 가슴이 설렌다. 곧 산티아고 베니테즈 국제공항이다. 칠레는 남위 18도부터 59도까지, 남북으로 4270km로서 남미 대륙 태평양 해안의 2/3를 갖고 있지만 동서로는 평균 180km에 불과하다.

LAN 항공기는 칠레 시각 낮 12시 30분에 도착했다. 메스티소 66%, 백인 29%라는 인종 구성 비율을 반영하듯 칠레에 도착하니 인종 구성이 바뀌어 있다. 마침 북미 지역에서 들어온 국제선 항공기 도착과 겹치는 바람에 입국 심사대 줄이 매우 길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기막히게 아름다운 날씨가 펼쳐진다. 원래는 오늘 산티아고 시내 투어를 하려고 했으나 칠레의 모든 박물관이 월요일 휴관이라서 박물관을 하나도 관람할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일정을 바꿔서 발파라이소(Valparaiso)에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콘셉시온 언덕에서 항구를 내려다봤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또 다르게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안데스의 준봉들. 칠레 산티아고 도착 30분 전 풍경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칠레 개관

칠레는 스페인에서 파견한 발디비아(Valdivia) 장군이 1541년 산티아고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면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1818년 독립선언 이후 19세기말에는 아타카마 사막 초석 산지의 소유를 둘러싼 분쟁에서 페루와 볼리비아를 물리치고 번영의 초석을 다졌다. 1970년에는 아옌데(Savador Allende)가 민주선거로 당선돼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했으나 1973년 피노체트(Pinochet)의 군사 쿠데타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인구는 1660만 명, 1인당 소득은 9837 달러이고 국토 면적은 남한의 7배에 달한다.

발파라이소 가는 길

공항버스를 타고 인근 파하리토스(Pajaritos) 메트로 역에 내려 발파라이스(Valparaiso)행 버스에 오른다. 산티아고에서 발포(Valpo, 발파라이소의 약칭)까지는 120km, 버스는 높고 낮은 해안 산맥을 가로 지른다. 산티아고 부근의 메마른 대지는 태평양에 접근하면서 비옥한 평야로 바뀌고 그 사이로 농장 혹은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칠레의 중부 해안 평야는 좁지만 비옥한 땅이다. 16세기 중반 스페인 정복자 발디비아가 만난을 겪으면서 이 땅을 차지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닮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의 여름 날씨는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칠레산 와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란 포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하는 순간이다.

태평양의 보석 발파라이소

오후 3시 30분 드디어 태평양, 그리고 발파라이소다. 발파라이소는 1840년대 칠레산 밀 수출 증가와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매우 번성했다. 미국대륙 횡단철도와 파나마 운하가 없던 시절, 미국 동부 혹은 유럽에서 캘리포니아로 가기 위해서는 남미 대륙 남쪽 끝 마젤란 해협을 돌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수 기착지이자 보급기지였던 것이다. ‘작은 샌프란시스코’ 혹은 ‘태평양의 보석’이라고 불렸던 발파라이소는 그러나 1914년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시내에는 잘나갔던 시절을 말해 주듯 한때 화려했을 건축물들이 많다.

발파라이소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밤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어젯밤까지 이어진 신년 축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산티아고행 버스표가 매진이다. 잠시 고민한 끝에 산티아고에 예약해 둔 호텔을 취소하고 오늘 밤 이 도시에 머물기로 했다. 먼저 버스터미널 옆 괜찮은 게스트하우스에 빈방이 있음을 확인하고 내일 새벽 버스표를 어렵사리 구한다.

▲발파라이소 언덕 계단길. 아무 길을 올라도 멋질 정도로 재미있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사진 = 김현주

▲이 골목 저 골목을 탐방하다 콘셉시온 언덕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아베니다 아르헨티나(Avenida Argentina) 거리를 걸어 바론 항구로 갔다. 많은 시민들이 시원한 태평양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 중이다. 항구에 산더미로 쌓인 컨테이너들이 태평양의 보석이라고 불렸던 도시가 태평양 시대를 맞아 다시 옛 기운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멀리 인접 도시 비냐르델마르(Vinar del Mar)의 고운 해안선과 그 위 언덕을 가득 메운 집들이 보인다. 버스를 타고 시내 중앙부두로 이동한다. 칠레 해군 휘장 현판으로 장식한 건물을 지나 항구에 접근하니 항구가 옛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듯 크고 작은 선박들이 항구를 메우고 있다. 조금 먼 바다에는 두 척의 대형 해군 함정도 정박 중이다.

발파라이소의 독특한 교통수단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지정된 발파라이소의 옛 거리는 쇠락했지만 여행자에게는 정겹기 짝이 없다. 쇠락한 항구 도시가 가지는 서글픔 같은 것이 여기에도 배어 있다.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았던 아주 오래된 트롤리버스가 멀쩡히 시내를 오간다. 산티아고에서 쓰던 것을 물려받은 둥근 모양의 트롤리버스는 1952년 제작한 버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칠레 정부는 발파라이소 트롤리를 국가 역사 유적(National Historic Monument)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해안 저지대와 언덕 주택가를 연결하는 승강기(Ascensores) 또한 발파라이소의 독특한 교통수단이다. 한때는 28개 노선이 있었으나 이제 11개 정도 남아서 운행 중이라고 한다. 시내 주요 지점과 언덕길을 오가는 콜렉티보(collectivo, 합승 택시)가 발달해 푸니쿨라 승강기를 대체하고 있다니 혹시 다음 번 여기 다시 오게 되면 그때는 푸니쿨라 승강기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여행자는 아쉽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발파라이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지정된 것이다.

▲부산 영도를 닮은 발파라이소 전경. 사진 = 김현주

콘셉시온 언덕에서 푸른 태평양을 보다

항구 지역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도시의 언덕길 중 가장 예쁜 언덕을 하나 골라 오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계단이 만만치 않지만 한 계단 옮길 때마다 뒤돌아보면 펼쳐지는 항구와 도시, 그리고 태평양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 아름다워 계속 오른다.

오르내리는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듯 여러 색깔로 칠한 집과 그라피티가 더해지니 자꾸만 더 오르고 싶은 욕심을 자극한다. 높이 오를수록 돌아 내려오는 길에 더 오래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탐방하다 보니 콘셉시온 언덕(Cerro Concepcion)이 나타난다. 호스텔과 식당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서 많은 방문자들이 하염없이 푸르디푸른 태평양을 내려다본다.

부산 영도 닮은 발파라이소

발파라이소는 부산, 그리고 특히 영도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언덕 비탈에 펼쳐진 소박한 집들, 대문을 열고 밖을 배꼼 내다보는 노인, 시끌벅적한 항구 주변, 산언덕을 종횡으로 연결해 주는 산복도로, 그리고 야릇한 갯냄새…. 이런 것들이 닮았다. 평지가 좁아 언덕을 향해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지형적 특성까지 꼭 닮았다.

번잡한 도시 복판에서 저녁을 먹고 콜렉티보 택시를 타고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an) 언덕을 오른다. 이 도시는 검은색에 노란 띠를 두른 소형 택시들이 노선버스처럼 고유번호를 갖고 버스가 오를 수 없는 높디높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저렴한 요금으로 시민들을 데려다 준다. 승객 4인이 차야 출발하기 때문에 요금 부담이 적은 합승 택시인 것이다. 버스 정류장과 비탈진 주택가 구간만을 왕복 운행하는 택시들이 부산 영도 산복도로 주변에도 있다는 것을 들었던 터라 바로 그런 것까지도 두 도시가 닮았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된다. 

발파라이소의 거리 이름에는 세계 각국 이름이 다 등장한다. 스페인 명칭은 물론이고 독일식, 영국식, 이태리식 이름도 많다. 도시의 전성기(1848~1914) 때 수많은 유럽인이 각 지역에서 이민 왔다는 증거다. 도시의 건축물이나 교회가 제각기 다른 형식으로 지어져 다양성을 느끼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 역사 유적으로 지정된 발파라이소 트롤리버스. 발파라이소의 독특한 교통수단으로,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풍경이다. 사진 = 김현주

발파라이소 저녁 풍경

언덕에 올라 해진 후 도시가 불을 밝힌 모습을 보고 싶어서 기다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기나긴 여름 저녁 해가 좀처럼 기울 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언덕길을 걸어 내려와 도심으로 향한다. 멋진 풍경을 마주보며 내려오는 계단길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곧 끝나 버린다.

시내 공원과 광장마다 상쾌한 여름 저녁을 즐기는 남녀노소 시민들로 붐빈다. 옷차림은 소박하다 못해서 남루하고 그들이 사는 집은 초라하지만 왠지 내 눈에는 그들이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칠레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한국인보다 훨씬 높다고 하니 누구의 행복의 기준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 멋진 도시를 더 느끼기 위해서 공원에 한참 앉아 있다가 호텔로 돌아온다. 드디어 언덕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태평양 시대가 훨훨 타올라 이 도시에 사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더 큰 풍요가 돌아가기를 바라며 아쉬운 발길을 접는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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