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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미디어 아트 ②] 인터넷으로 만나는 ‘넷’아트까지 확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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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3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10.04 09:22:35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미디어 아트(media art)에서 가장 익숙한 장르는 바로 비디오 아트(video art)일 것이다.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이다. 백남준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1963)이 비디오 아트의 시작이었다. 백남준은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새로운 매체로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선택했는데 이것은 보수적인 고급예술에 반기를 들고 기존의 엄숙한 미술을 전복시키는 실험적인 행위를 보여주었던 플럭서스(Fluxus), 텔레비전이 가진 일방적인 송신방법, 상업화, 권력화에 저항하는 반 TV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이후 백남준은 적극적으로 관람객이 참여하는 ‘참여 TV’라 불리는 인터랙티브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텔레비전 모니터와 일상의 사물을 결합하기도 했다. 또한 비디오 영상을 자유롭게 변형,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그의 상징과도 같은 역동적인 영상 작품을 만들어냈다. 백남준은 특히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인간화된 기술, 자연과 공존하는 기술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TV 부처’(1974)에서는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성찰을 통해 과학 기술 시대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인공위성 프로젝트 3부작은 예술과 문화, 스포츠를 통한 동서양의 만남과 소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그가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 남긴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음악처럼 시작과 끝 있는 비디오 아트

비디오 아트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내러티브(narrative)의 전달력이 탁월하다. 미술가가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영화와 같은 작품을 보여주는 경우에는 이러한 성격이 더 강해진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 작가들에게 영상은 무엇보다 조형적 실험을 위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비디오 아트는 최첨단의 과학 기술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더욱 다양한 미적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 컴퓨터 기술은 비디오 아트를 포함한 미디어 아트의 미적 실험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다. 오늘날에는 컴퓨터 기술 -디지털 매체- 만으로 예술이 완성되는 컴퓨터 아트(computer art, digital art)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디오 아트가 가진, 이전의 전통적인 미술과 가장 대비되는 또 하나의 차이는 흘러가는 시간에 기반한다는 사실이다. 비디오 아트가 아닌 미술 작품들은 명확한 시작과 끝이 없다.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며 오랜 시간을 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또한 일반적인 기록 영상이나 영화와 달리 비디오 아트는 미술가가 원하는 대로 편집, 재생하여 시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교차시키고 길게 늘어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비디오 아티스트로 빌 비올라(Bill Viola)를 들 수 있다. 저속촬영기법을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사용하는 비올라는 물리적 시간 개념을 자유롭게 하고 사물과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한편 이이남은 과거의 명화를 차용, 재해석하여 현재의 시간에 살아 숨 쉬게 한다. 평면이었던 회화에 상상력을 덧입혀 입체적인 공간을 표현하고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밤과 낮, 4계절의 모습을 담아내는 ‘신-인왕제색도’(2009)나 과거의 풍경에 현대의 고층 건물과 케이블카가 결합되는 ‘신-단발령망금강’(2009), 정선(鄭敾)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만나 위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겸제 정선 고흐를 만나다’(2011)는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다슬, ‘호.오.이’, 싱글 채널 비디오, 9분 49초, 2016, 사진제공 = 아라리오뮤지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웹(world wide web)상의 예술 행위들을 보여주는 넷 아트(net art)도 최첨단의 미디어 아트이다. 넷 아트는 미디어 아트가 가진 근본적인 지향점인 상호작용과 소통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넷 아트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미술 작품의 이미지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넷 아트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인터넷의 특징인 상호연계성을 바탕에 두고 처음부터 인터넷을 겨냥한 창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제작된 작품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보는 것은 인터넷을 하나의 확장된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미디어아트 나왔다고 “전통미술 고리타분”은 아냐

미디어 아트는 분명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술이 지나치게 과학 기술에만 집중하여 예술인지, 과학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동시대의 철학이나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담아내거나 개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맞게 작품의 규모는 커지지만 그러한 스펙터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성찰과 사색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일례로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구속의 드로잉(Drawing Restraint), 크리매스터 사이클(Cremaster Cycle) 시리즈는 블록버스터 영화와도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로 인간의 육체성과 정신, 서구의 역사와 철학, 시간관 등을 아우르는 이야기의 범위와 깊이가 남달라 여러 번 곱씹어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제주도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현재 제주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을 전시하는 아라리오 뮤지엄의 <제주 정글>전에 출품된 이다슬의 ‘호.오.이’ 프로젝트(2016)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호.오.이’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온 뒤 수면에서 내쉬는 깊은 휘파람 소리이자 해녀를 포함한 인간, 그리고 존재 모두의 생존을 위한 한숨 소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변하고 훼손된 자연의 모습에 자연이 스스로 다시 자라나는 상상의 풍경을 더해 비현실적인 정글을 창조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세부 장르를 구별해가면서 글을 썼지만 미디어 아트가 융복합의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장르인 만큼 우리가 전시장에서 만나는 많은 미디어 아트들은 다양한 장르와 형식, 매체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실제로 작품을 감상할 때 굳이 하나의 장르에 끼워 맞춰서 이해하기보다는 작품 자체를 즐기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미디어 아트가 오늘날 미술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술의 근본이 바뀌었거나 이전의 전통적 미술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미술의 영역에 변화와 확장을 가져왔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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