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아트인-김용익] 40년 화업 대표작을 관에 짜넣은 까닭은?

미술-정치 사이의 끝없는 자기반성 ‘가까이… 더 가까이…’전

  •  

cnbnews 제504호 윤하나⁄ 2016.10.07 15:43:09

▲‘윤리, 반성, 미술’ 주제의 3전시실. (사진 = 일민미술관)

비판적 모더니스트 김용익의 40년 화업을 돌아보는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지난 830일부터 열렸다. 단색화를 시작으로 민중미술, 대안공간 운동과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의 당대 미술을 모두 거쳐 온 그의 독특한 작업 여정을 통해 작가가 고민한 미술에 귀기울여보자.

 

김용익, 왜 미술을 하는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죠?”

서울대 농대에 진학한 김용익은 입학한 지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느닷없이 미술을 시작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미술을 결심한 그는 그대로 홍익대 미대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입학 한 달 만에 미술에 대한 환상이 박살난 그는 미술은 괴로움이었다"고 회상한다. 로망이었던 미술이, 현실에 발 디딘 치열한 논리의 현장임을 알게 된 탓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에 걸친 작업 여정을 관통하는 질문 (김용익)는 왜 미술을 하는가?’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용익, '평면 오브제'. 천에 에어브러쉬, 약 200 x 370cm. 1977. (사진 = 일민미술관)

 

1전시실 - 미적 형식과 사회적 실천 사이에서

70년대 중반 홍익대 재학 시절 스승인 박서보 작가의 도발로 시작된 작업 평면 오브제를 통해 이른 나이에 화단에 입성했다. 천의 주름에 스프레이를 뿌려 만든 주름 그림과 실제 주름 사이의 착시를 활용한 평면 오브제를 통해 학부 졸업도 채 마치기 전에 197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당시 단색화가 주를 이루던 모더니즘 계열의 막내이자 총아로 편입됐다.

 

하지만 1981년 돌연 자신의 대표작을 종이 박스에 봉인하며 당대 모더니즘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한다미술과 삶 사이의 괴리를 탈피하고자 시도한 첫 번째 변화였다. 그는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엄혹한 정치 상황에 항거한 동년배 미술가들의 민중미술 진영에 합류한다. 그 후 모더니즘의 순수한 미술 형식 실험과 현실에 저항하는 실천으로서의 미술 사이의 고뇌를 판지와 MDF를 이용한 작업으로 풀어냈다. 당시 홍익대와 서울대가 각각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계열로 나뉘어 활동한 배경에서 모더니스트인 그가 민중미술 대열에 합류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용익은 이에 대해 모더니즘 정신에서 벗어나려 한 게 아니라 모더니즘이란 브랜드에서 벗어나려 했다며 모더니즘은 타파의 대상이 아님을 설명했다.

 

▲김용익, '무제'. 캔버스에 혼합재료, 181.5 x 227cm. 1991. (사진 = 일민미술관)

 

2전시실 - ‘더 가까이다가가면 보이는 것

이후 90년대는 땡땡이 작업이란 대표작으로 설명되는 김용익의 전성기다. 이 시기 작업부터 그가 실험해온 비판적 모더니즘적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모더니즘적인 관점의 폐쇄적이고 멸균적인 작품 세계관을 깨버리고 완결태가 아닌 가능태로서의 작업을 위한 실험이다.

 

2전시실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오래 방치된 듯 보이는 오염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작업실 칸막이로 사용해 생긴 얼룩이나, 야외 보관으로 생긴 물 자국, 전시 중인 작품에 관람하러 온 아이가 펜으로 한 낙서 등을 통해 드디어 작품이 완성됐다고 기뻐한 그였다. 몇몇 작품에서는 균열처럼 보이는 얇은 선들을 가까이 보면 그가 연필로 작게 써내려간 문장임을 발견할 수도 있다. 캔버스 위의 추상표현을 가리기 위해 동일한 크기의 규칙적인 땡땡이를 그려 넣거나(땡땡이 작업), 예전 작품을 검은색과 금색 물감으로 덮어버리는 (‘절망의 완수’) 등 부정의 제스처도 모더니즘적 물질성을 거부하는 그의 시도로 읽을 수 있다.

 

▲김용익, '삼면화'. 캔버스에 아크릴, 캔버스에 유채, 천, 솜, 나무, 종이에 잉크드로잉, 동전, 향, 향로, 아스테이지 위에 유성잉크, 157 x 226 x 16cm. 2015. (사진 = 일민미술관)


3전시실 - 새 미술 향한 반성적 점검, 신작 시리즈

신작 시리즈는 그의 이전 작업들을 관 형태의 나무 상자에 입관시킨, 다소 충격적인 작업이다. 봉인된 작품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도상과 글이 더해져 제의적 행위에 힘을 더한다. 그중 삼면화는 이 과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대학시절 그린 자화상과 70년대 후반의 평면 오브제의 천 작업, ‘땡땡이 작업등을 수집해 종교적 삼면화(Triptych)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다. 창작이 불가능한, 편집만이 가능한 현 시대를 반영했다. 왼쪽 면부터 각각 타락, 죽음, 고통이란 키워드가 담겼는데, 이는 정역이란 철학서에서 발견한 혼란과 수축의 시대가 지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오늘날 시대상의 반영인 동시에 많은 전환을 거쳐 온 자신의 작업 여정을 반성하고 정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을,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듯 ’ 시리즈는 절망과 패배의 죽음이 아니라 도래할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듯 하다.

 

가까이더 가까이전은 그가 추구하는 모더니즘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고 가까이가 닿게 하려는 노력의 여정이 드러난다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 함영준은 “이번 김용익 개인전은 한 미술가의 작품 세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미술가를 드러내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미술의 흐름에 가까이 다가가보는 전시”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정치는 미술 행위가 반드시 풀어내야만 하는 숙제로 여기며, ‘왜 미술을 하는가?’란 질문을 반복하며 반성과 실천을 지속하는 작가 김용익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3전시실의 ‘윤리, 반성, 미술’ 전시. (사진 = 일민미술관)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