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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일상사물이 소재] 현대미술에선 왜 작은 물건이 주인공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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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5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10.17 10:47:4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장르의 해체를 이야기했던 이전의 칼럼에서, 매우 일상적이고 소소한 사물들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이는 미술가, 사라 제(Sarah Sze)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녀는 바로 버려진다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빈 박스, 깡통, 그릇, 비닐 같은 일상의 물건들로 섬세하고 구조적인 설치를 만들어낸다. 그 글을 읽고 사라 제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는 지인은 ‘역시 요즘 미술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예술이라면 남다르고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여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양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라 제의 작품에 사용된 물건들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성냥과 면봉 같은 재료들은 작가에게 유의미한 것이기에 선택되었다. 동일한 물건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다는 상대성을 생각해보자고도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그 작고 약해 보이는 물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은 공간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매우 체계적이고 건축적인 구조물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다면 특별한 재료는 무엇인가?’ ‘미술은 반드시 특별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일상의 물건을 특별하게 만들기

미술에서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의 물건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자전거의 안장과 운전대로 만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황소 머리(Tête de taureau)’(1942) 등이 대표적이다. 피카소에서 시작된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오늘날의 미술가들이 일상의 물건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되었다. 실제 오브제를 들고 온 것은 아니지만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예술과 일상,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량생산품을 소재로 삼았고,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는 일상의 사물을 확대시키거나 부드러운 재료로 만들어 낯설게 제시했다. 짐 다인(Jim Dine) 역시 일상의 물건을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미술가이다. 다인은 잠옷, 가운, 신발, 각종 공구처럼 자신을 반영하는 ‘특별한 일상의’ 물건들을 통해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보여준다. 

▲유나얼, ‘Hamartia’, Digital Collage, 2015, 사진제공 = 유나얼 작가

사소하고 평범한 물건들의 세심한 사용이 미술의 익숙한 풍경이 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우리의 삶이 거대한 하나의 담론이나 형이상학적 논리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고 인식하면서, 그 다음부터 일상적이고 평범한 다양성에 주목하게 됐다. 또한 삶과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예술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미술의 목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 제기는 자기완결성을 추구하거나 순수한 형식 실험만을 강조한 추상미술을 벗어나게 했다. 모든 작품 안에는 설령 추상 미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삶에 기인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긴다. 모든 작품은 그것이 제작된 특정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예술에서 일상성은 시공간적 환경 모두이며 작품은 그것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존 듀이(John Dewey)의 설명처럼 예술은 일상적인 삶의 일부이다. 이러한 연유로 미술의 재료도 점차 바뀌게 되었다. 그 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일상이 중요해진 만큼 미술가와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는 삶에 근거한 재료들이 중요해졌다. 

쉽게 발견되고 만질 수 있는 평범한 사물들처럼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나만의 매우 소중한 물건을 한 두 개씩 갖고 있다. 그 물건들 중에는 낡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음에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라고 하여 다른 이에게도 소중한 것도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모든 물건의 가치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즉 어떠한 사물의 가치를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에겐 소중한 것들과의 이별식을 치르듯

구본창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비누, 시계, 낡은 철모, 편지와 같은 소소한 물건들, 백자와 곱돌처럼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낡고 오래된 물건들에 관심과 애착을 갖는다. 미미해 보였던 오브제들은 작가에 의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거듭나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담아낸다. 유나얼 역시 기억을 담아내기 위해 물건들을 간직한다. 다른 이에게는 평범한 물건이지만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는 오브제들을 무심한 척하는 세심함 속에 조합하여 설치물을 만든다. 낡은 LP레코드판의 커버, 종이 상자, 천 조각이나 종이테이프, 메모지들로 콜라주(collage)하고, 그것을 확대하여 프린트하기도 한다. 하루하루의 삶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담기고, 일상은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아 또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낸다. 

▲박현욱, ‘시간기록-61301’, 한지에 수묵, 다른 크기의 그림 7장을 겹쳐 배접, 130 x 193.9cm, 2014. 사진제공 = 박현욱 작가

한편 박현욱은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물건들을 그리고, 촬영하고, 있는 그대로 설치한다. 물건과 함께 했던 시간이 묵사(默寫: 반복된 관찰과 체험을 통해 대상의 내외적 성격을 충분히 파악한 후 기억에 의거하여 작업하는 것)를 위한 시간이었던 것인 양 작가는 거침없이 붓을 놀린다. 언젠가 작가와 이별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전시하는 행위는 소중한 물건과의 이별을 위한 하나의 의식과 같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초상을 남기는 것이다. 익명성을 띤, 무인칭과도 같았던 물건들은 이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되풀이해서 살아가는 일상은 진부하며 사소한 것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일상은 결코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미묘한 변화들이 가득하다. 너무 친근하여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는 일상 속의 모든 사물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는다. 그것들은 작가 자신을 반영하고 그의 삶을 보여주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을 담아내는 상징이 된다. 그리고 그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물 앞에서 우리는 특별한 시간을 발견하고 경험한다. 삶 속의 예술과 예술 속의 삶, 모두 가능해진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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