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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 ‘마이크로시티랩’] "눈치챘나요?" 소리없이 스며든 다국적 예술가들의 서울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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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6호 김연수⁄ 2016.10.21 17:15:54

▲'마이크로시티랩'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는 인디아트홀 공의 '도시개입룸'. 작가들의 작업 진행상황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사진=홍철기)


최근 들어 건물 안에 갇힌 전시장을 벗어나거나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채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대개 일회성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이런 전시 형태는, 미술이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 분과라는 역할을 인식하며, 작가와 기획자가 연구자의 역할을 맡는 추세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런 기획 의도 아래 이뤄지는 '결과물이 아닌 걸 보여주는' 전시와 맞닥뜨릴 경우, 아름다운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당황할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책과 다른 방법으로 편집된 책을 읽는 것처럼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위와 생각에 집중해주는 유연성이 필요한 것 같다.

▲모토엘라스티코(MOTOElastico), 'Mototjari roof(모톳자리 지붕)', 이탈리아 건축가 모토엘라스티코의 ‘모톳자리’ 배포 프로젝트. 2016.


최소한으로 접근해 반영하는 작은 삶의 목소리

영등포구 양평동의 공장 건물을 개조한 ‘인디아트홀 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마이크로시티랩’은 랩(Lab, 연구실)이라는 제목 속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도시 전체를 연구실이자 대상으로써 탐색하고 연구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1개국 출신 17팀의 작가들(정이삭, 줄리앙 코와네, 움베르토 두크, 허태원, 공석민. 권용주, 이아람, 사소한 조정, 모토 엘라스티코, 피플즈 아키텍처 오피스, 아그네스카 포크리카, 젯사다 땅뜨라쿤웡, 언메이크 랩, 리슨투더시티, 빌리 도르너, 무스퀴퀴 취잉, 플로리안 골드만)은 서울을 비롯해 런던, 파리, 베이징, 타이베이, 헬싱키, 멕시코시티 등 세계 곳곳의 대도시를 기반으로 작업한다.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도시 서울에 모인 작가들은 서울부터 인천 송도까지 도시의 구석구석에 침투해 작업 활동을 진행한다. 미술,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SNS 등 다양한 매개로 진행되는 이번 도시 침투(개입)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이크로(micro), 즉 최소한의 단위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집 앞의 골목길과 재개발 지역, 대로변 등 잘 드러나지 않는 장소를 찾아들어가 신체, 텍스트, 소리, 냄새 등 최소한의 물성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지만,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 일반적인 풍경들이 풍자적으로 느껴진다거나, 작품 감상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했던 관객들의 작품으로의 개입이 더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 심소미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번 전시의 특성과 관련해 “예민한 예술가의 감각은 너무도 익숙해져 사소하게 느껴지는 삶의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며, “예술가들의 작고 사소해 보이는 개입 방법은 대도시와 예술이 지향해 왔던 '스펙터클‘한 시도와 결과의 대척점에서 시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이런 시도들은 사소한 공간이라는 물리적 장소뿐 아니라, 거대 자본으로부터 소외받는 영역이라는 의미, 그럼에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작은 삶들의 목소리”라고 밝혔다. 

▲중국 베이징의 건축가 '피플즈 아키텍처 오피스'의 건축 개입 프로젝트 '파이프 드림'.


피플즈 아키텍처 오피스: 파이프 드림

베이징에 있는 건축 사무소 피플즈 아키텍처 오피스는 전시 공간의 외벽을 뚫어 거대한 파이프를 설치했다. 양은 냄비를 제작하던 공장이었던 아트스페이스 공은 아직도 높은 원형 굴뚝이라는 예전 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물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뚫은 벽에서 쏟아져 나온 파이프의 역할은, 탁해진 내부 공기를 외부로 배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밖의 공기가 내부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식당 풍경인 삼겹살집의 배기관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업은, 예전 공장 건물과 자바라 파이프의 조형미가 어우러져 골목의 시선들을 사로잡는다. 전시 오프닝 날에는 실제 파이프 밑에서 삼겹살을 구워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는데, 전시장 밖에서 삼겹살 잔치가 벌어지고 오히려 전시 공간에는 연기가 가득 찼지만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기획자는 전했다.

▲줄리앙 코와네, '모자이크 프로젝트'. 공간에 스티커 설치. 2016.


줄리앙 코와네: 모자이크 프로젝트

현재 서울에 머물며 작업하는 프랑스 작가 줄리앙 코와네는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담고 있는 것들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진행한 작업은 철거 예정인 가정집 등에서 발견한 타일 등이다. 6, 70년대 건축에 유행했던 화려한 무늬들의 타일들은 한 시대를 대표하던 삶과 문화의 흔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생산되지도 않고, 아무도 지키려고도 않는다.

코와네는 발견한 타일의 패턴들로 스티커를 만들었고, 인디스페이스 공 근처의 1층 건물 가게 자리를 빌려 스티커 타일들로 벽을 채웠다. 동네 주민들이 정말 타일 가게인 줄 알고 들어오곤 한단다. 지킬 수 있는 가치에 대해 고려할 시간 없이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하는 그의 타일 스티커는, 전시 기간 동안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다.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패턴들이다.

▲난지한강공원에서 인공의 별을 하늘에 쏘아 올리는 폴란드 작가 아그네스카 포크리카의 작업 '유성의 밤'


아그네스카 포크리카: 유성의 밤

폴란드 출신의 아그네스카 포크리카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업하는 작가이자 과학자다. 첨단 미디어의 오픈 소스들을 활용하고, 예술가의 최신 방식을 통해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할지를 연구한다.

그가 이번에 서울에서 선보이는 프로젝트는 마그네틱을 이용한 인공별을 제작해 사람들과 함께 쏘아 올리는 작업이다.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에 착안한 이 작업은 자연현상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프로젝트는 23일(일) 오후 7시 난지한강공원에서 펼쳐진다.

움베르토 두코: 백화점 음악

멕시코 작가 움베르코 두코는 현대 도시의 공공장소에 숨어있는 상업적 전략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주제로 작업한다. 두코가 발견한 일본과 한국만의 특이점은, 백화점 폐점 시간이 다가오면 고객들이 매장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음악을 틀어준다는 것이다. 조용한 음악임에도 아무런 저항 없이 홀린 듯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남미 사람인 그에게 매우 색다르게 느껴졌단다.

두코는 이 폐점 음악을 백화점 밖 공간에서 연주할 계획이다. 다른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폐점 알림 음악은, 공공장소와 상업 장소의 느낌 차이에서 비롯되는, 소비적인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24~26일 중 오후 8시 백화점 폐점 시간에 맞춰 영등포 타임스퀘어서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폐점 음악을 듣고 상가에서 나온 사람들은 밖에서도 공공장소에서 울리는 폐점 음악을 듣고는 어디로 나갈까?

이 밖에도 골목길에 버려진 가구들을 다시 손질해 놓는 권용주, 거리를 돌아다니며 맡은 냄새를 텍스트로 기록하며 냄새 지도를 만드는 이아람, 정말 우리에게 ‘스마트’한 쓰레기통이 필요한지를 기술지향 도시인 송도로 피크닉 가며 비평적으로 탐색하는 언메이크 랩, 근린공원 등지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에어로빅을 진행하는 사소한 조정, 한국만의 독특한 공간점유 방식인 돗자리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내 SNS로 공간점유 사진을 공유하는 모토 엘라스티코의 작업 등 한 달의 전시 기간 동안 지속적이고 관객참여적인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10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작가들의 도시 침투 상황은 ‘인디아트홀 공’에 세워진 작가들 각각의 나무 패널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내가 사는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가 어디서 진행되는지를 알고 싶다거나, 참여하고 싶다면 ‘마이크로시티랩’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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