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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전시] "알아서 잘 쉬세요"라는 비밀의 화원

서울미술관, 동화 모티브로 하반기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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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7호 김금영 기자⁄ 2016.10.26 13:57:31

▲'비밀의 화원' 전시장 입구. 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전시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좀 쉬엄쉬엄 해.” 힐링이 필요한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경쟁에 고달픈 현대인에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 가당키나 하던가? 노력도 모자라 노오오오오력을 해도 부족한 시대에 산더미 같은 일을 안겨주고 웃으면서 “쉬엄쉬엄 해” 말을 하는 상대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며 되돌려 준 뒤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가운데 서울미술관이 하반기 기획전으로 ‘비밀의 화원’전을 내놓았다. “대놓고 쉬세요”가 아니라 “알아서 잘 쉬세요”라며 비밀스런 공간을 마련해 놨다. 눈치 안 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반가운 자리다.


남들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서울미술관은 동화에 접근했다. 그것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화 ‘비밀의 화원’을 끌어 왔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힘든 세상이다. 현대인은 지쳐 있고 혐오 범죄도 많아 세상이 흉흉하다. 이럴 때야말로 미술관이 문화 예술로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순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시 기획 초반에는 ‘인생 처방’전 등 힐링을 주제로 한 전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힐링이 주요 트렌드가 된 시대이다 보니 자칫하면 휴식조차 ‘이렇게 쉬세요’라며 강요하는 스타일로 흐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힐링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러다가 이야기가 자연이 주는 치료로 흘렀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비밀의 화원’에 닿았다”고 말했다.


▲화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전시장이 꾸며졌다. 작품들이 전시된 가운데 창문도 함께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어렸을 때 누구나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힘든 현실을 잊고, 주변 시선 의식하지 않으며 마음껏 뛰놀았던 그때 그 시절의 동심을 끌어오기 위해 전시는 동화를 택했다. 다만 국내 유명 동화가 아닌, 해외 동화를 끌어왔다. 이미 기승전결이 잘 알려진 동화의 경우 애초부터 ‘전시도 이렇게 꾸려지겠지’ 식으로 예측 가능한데, 그러면 흥미 요소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 다만 너무 생소한 동화는 아니고 ‘소공녀’ 저자로 국내에 잘 알려진 영국의 유명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작품을 모티브로 잡았다.


전시명인 ‘비밀의 화원’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녔다. 정말 말 그대로 정원(garden), 즉 관람객들이 팍팍한 도심을 벗어나 아이처럼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의 의미가 있고, 화원(畵員), 즉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안 큐레이터는 “조선시대에 그림을 관장했던 관청 도화서(圖畵署)의 잡직이었던 화원(畵員)에서 뜻을 차용했다. 관람객들은 평화로운 정원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동시에, 이 공간에서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마치 비밀과도 같이 숨겨진 유망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화 ‘비밀의 화원’은 고집스럽고 폐쇄적인 성격의 주인공인 메리가 부모의 죽음 이후, 고모부 댁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마음을 닫았던 메리는 어느 날 버려진 화원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들어섰던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 메리는 화원을 가꾸기 시작하고, 점차 생동감 넘치는 화원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마음을 연 메리의 주변 사람들 또한 함께 행복해진다.


동화 전체 흐름 따라 모인 작품들
상처→호기심→치유→행복까지


▲'비밀의 화원'을 콘셉트로 꾸려진 파트2 전시장. 전시장 내에 향기도 가득하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동화의 흐름에 따라 크게 네 가지 파트, 그리고 스페셜 게스트 존으로 구성됐다. 먼저 본격 전시가 시작되기 전 동화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삽화와 짤막한 글이 입구 쪽에 전시된다. 이윽고 시작되는 파트1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마음을 닫은 메리의 모습을 담은 부분이다. 여기엔 윤병운, 김유정, 염지희, 반주영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눈발에 가려진 창밖의 이미지로 아련한 정감을 자아낸 윤병운의 작품은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메리의 암울한 마음을 반영한 듯하다. 김유정은 캔버스에 도포한 석회를 긁어내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메리의 상처,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상처까지 드러낸다. 염지희는 이 상처 받은 현대인이 어떻게 혼란을 겪고 있는지 생과 사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다.


동화 속 혼자가 돼버린 주인공 메리의 마음을 느낌과 동시에 외롭고 쓸쓸한 우리 현대인의 모습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주영은 상처를 딛고 전시 파트2로 관람객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파트1 공간은 적막한 가운데 커다란 창문, 그리고 문이 설치돼 있는데 이 창문과 문 안에 언뜻 푸른빛이 보인다. 동화 속 메리는 도중에 붉은 울새를 만나 따라가다가 푸른빛 가득한 비밀의 화원에 가게 된다. 관람객은 반주영의 붉은 빛 묘한 화면에 이끌려 파트2 앞에 도달한다.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운데 전시장 내에는 라운지가 마련됐다. 꽃들을 보다가 쉴 수 있는 정원처럼.(사진=김금영 기자)

파트2는 ‘문은 천천히 열렸다. 천천히’다. 우울했던 메리가 낡은 열쇠를 발견하고 화원에 들어서는 부분이다. 이 전시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반전된다. 천장에 화원에 들어온 것 같이 나무 넝쿨이 달렸고, 바닥에는 인조 잔디가 깔렸다. 여기엔 박종필, 마크 퀸, 정원, 이명호, 이슬기 작가의 작품이 기다린다. 전체적으로 화원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박종필, 마크 퀸의 화면엔 싱그러운 꽃이 가득하다. 이들의 화면은 화려하게 알록달록한 가운데 이명호와 이슬기의 화면엔 나무와 브로콜리로 이뤄진 가상의 숲 등 초록빛 생명의 빛이 완연하다. 전시장 파트마다 다른 향이 나도록 구성됐는데, 이곳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정말 화면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여기에 회전목마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정원의 화면은 삭막했던 마음에 다시금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파트2에서 마음이 들떴다면 파트3는 놀이 한마당이다. ‘비밀스런 연극놀이’를 주제로 혼자였던 메리가 점차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을 다룬다. 아름다운 정원을 발견한 것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과 협력을 통해 변하는 메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한다. 작품들 또한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안준의 작품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첫걸음을 떼는 메리의 마음을 보여준다. 고층에서 찍은 사진으로,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내딛기 직전의 떨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정원처럼 만들어진 공간에 쉼터도 마련
전시장 파트마다 다른 자연의 향기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이재형 작가의 작품.(사진=김금영 기자)

무나씨는 검은색을 모든 것을 포용하는 색이라고 해석하며 이 검은색을 사용해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태동은 스스로가 작업을 할 때 관계를 맺는 방식을 취해 눈길을 끈다. 새벽길 처음 만난 사람들을 모델로 섭외해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전현선은 수많은 이미지가 중첩되고 모여 하나의 그림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그레이스 은아킴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지하철에 분홍 봉투를 쓰고 들어갔을 때 포착한 사람들의 반응을 재미있는 결과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파트4는 ‘환상의 뜰’로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다. 비밀의 화원에 생기가 돌고, 메리 또한 행복을 찾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의 공간으로, 작품들에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진현미는 입체적으로 재조합된 묘한 산수화 풍경을 재현하고, 신소영과 최수정은 현실에서 벗어나 위로와 편안함을 주는 상상의 공간을 보여준다. 전희경은 붓질 속, 그리고 원성원은 자연과 대비되는 인공적인 풍경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정은 ‘아포리아’ 연작을 통해 검은 들판에 강렬한 텍스트를 배치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과 같은 공간을 만든다. 이재형의 공간도 눈길을 끈다. 어두운 공간에 LED가 설치된 말 조형이 밝게 빛난다. 꼭 신화 속 유니콘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다. 파트4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승구는 빛이 가득한 꽃으로 채운 환상의 뜰을 보여준다.


국내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파트4에 이어 앤 미첼, 히로시 센주 등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마련한 스페셜 게스트 존이 마지막으로 기다린다. 파트2에 소개된 마크 퀸의 작업과 더불어 또 다른 시선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그려낸 해외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 마음을 정화시킨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진작가 앤 미첼은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을 포착해 재창조한다. 일본 작가 히로시 센주는 ‘폭포’ 작업을 통해 자연의 역동적인 힘을 보여준다.


▲한승구, '스킨 오브 스킨 - 다이아(Skin of Skin - Dia) 2'. 혼합 매체, 가변설치, 2016.(사진=서울미술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운데 전시장 내에는 라운지가 마련됐다. 숲속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구성이 눈길을 끄는데, 이곳에서는 비정기적으로 강의, 공연, 큐레이터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안 큐레이터는 “상반기에 선보인 ‘연애의 온도’전이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 있다. 학교에서 수업, 숙제 차원으로 학생들이 방문할 때가 많다. 어느 날도 교복 입은 학생들이 전시장에 왔기에 ‘무슨 숙제로 왔냐’고 하니 ‘숙제 아닌데요? 그냥 놀러왔는데요?’고 하더라”며 “늘 미술관이 관람객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그런데 학생들의 모습에 감명 받았고, 가능성도 느꼈다. 미술관의 교육적인 측면도 강조되지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미술관을 편하게 느낄 전시 또한 필요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이번엔 사람들이 알아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콘셉트의 전시를 마련했다. 이런 시도가 쌓이다보면 미술관과 대중 사이의 소통이 앞으로는 보다 원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미술관 제1, 2 전시실에서 2017년 3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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