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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아르헨티나] ‘저렴한 백인’ 볼수있는 남반구 사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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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1.14 09:19:0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1일차 (산티아고 → 부에노스아이레스 경유 → 이구아수)

산티아고를 떠나며

마침내 칠레를 떠난다. 오늘 항공기 출발은 아침 7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새벽 비행기지만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공항버스가 아직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택시(1만 3000페소, 한화 2만 8000원)를 타고 공향으로 향한다. 금요일 밤 파티를 즐긴 젊은이들이 술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벽 시간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아쉬워 헤어지지 못한다. 감정 표현이 솔직한 사람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란 항공기는 정시보다 늦게 아침 7시 40분 이륙하더니 금세 안데스를 넘는다. 여러 번 들락거리며 정들었던 산티아고를 떠나려니 허전하다. 오래 살았던 도시를 떠나는 느낌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의 혼란

항공기는 두 시간 걸려 9시 30분 부에노스아이레스 에세이사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남미 공항이 대부분 그렇듯이 시설과 인력이 부족해 입국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페루, 칠레처럼 여기서도 한꺼번에 몰리는 승객을 감당하지 못한다. 보딩브리지가 부족해서 계류장에서 입국장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것은 기본이다. 공항 환전소에서도 비효율의 극치를 맛봤다. 아르헨티나는 백인 나라다. 어찌 보면 유색인종이 아주 많은 유럽보다 훨씬 더 희다. 그러나 에세이사 공항의 혼란을 어찌 하랴. 예쁜 백인 아가씨가 공항건물 바닥 청소를 하는 모습이 무척 낯설다.

▲폭포가는 길에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슬렁어슬렁 느리게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국인에겐 낯설다. 사진 = 김현주

남미를 여행하면서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 있는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언어도 같고 인종도 다인종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느 도시를 가도 중앙광장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도시의 높은 언덕에는 반드시 예수상 아니면 마리아상, 그런 것까지 같다. 다만 기후와 자연환경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백인이 많은 아르헨티나와 흑인이 많은 브라질 정도가 나머지 남미 국가들하고 좀 다르다고나 할까? 

▲이구아수 폭포를 멀리서 바라봤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사진 = 김현주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산티아고발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항공기가 국내선 공항이 아니라 국제선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국내선 공항까지는 각자 알아서 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국내선 공항은 국제선 공항에서 도심을 가로 질러 정반대쪽에 있다. 푸에르토 아구아수행 항공기가 국내선 공항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산티아고발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내선 공항 도착 항공편을 일부러 골라 예약했는데 비행기가 그냥 국제선 공항에 내려버린 것이다. 다행히 연결시간이 충분하다. 공항버스(편도 70페소, 한화 2만 3000원)를 이용해 국내선 공항으로 향한다. 

▲폭포 탐험선이 거센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다. 사진 = 김현주

버스가 공항을 벗어나자 넓고 잘 가꾸어진 공원이 연이어 나타난다. 한없이 넓은 7월 9일 대로(Avenida del 9 Julio), 잘 자란 가로수, 고색창연한 콜로니얼 건축물, 새롭게 올라가는 현대식 고층빌딩들…. 이것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대단한 도시다. 한때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온 이민자의 천국 아니었던가? 혼잡한 에세이사 공항에서 받았던 인상을 깨끗이 지워준다. 도시 이름처럼 하늘이 아주 맑다. 호르헤뉴베리(Jorge Newberry) 국내선 공항은 해변과 맞닿아 있다. 해변에는 시민들이 산책과 낚시, 일광욕을 즐긴다. 한없이 파란 하늘과 대서양의 검푸른 바닷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국의 대척점 라플라타강 하구

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북동 방향으로 난다. 발아래, 지리 시간에 들었던 라플라타강(Rio de la Plata) 하구가 대서양을 만나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이 정확하게 우리나라의 대척점이다. 아르헨티나의 평원은 끝이 없다. 하늘에서 봐도 수십 킬로미터 작은 언덕 하나 없는 평야가 펼쳐진다. 지구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 중 하나인 한국에서 온 여행자는 남위 34도, 기막힌 온대 기후에 펼쳐진 라플라타 대평원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곧 열대우림 한 가운데 이구아수 공항이 보인다. 멀리 폭포의 물보라도 보인다. 공항 도착 오후 5시 20분, 공항 터미널 앞에서 시내까지 버스로 이동한다(30페소, 한화 약 9000원). 푸에르토이구아수(Puerto Iguazu)는 전형적인 국경 관광도시라서 물가가 비싸다. 아주 훌륭한 호스텔에서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잔다. 문 바깥에는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이 극성을 부린다.

22일차 (이구아수 → 부에노스아이레스)

“My Poor Niagara”

폭포행 버스는 시내 터미널에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20분에 한 대 꼴로 자주 다닌다. 아침인데도 벌써 땀이 줄줄 흐른다. 30분 걸려 공원 매표소에 도착, 100페소(한화 약 3만 원) 입장료를 냈다.

이구아수 폭포는 폭 4.5km, 평균 낙차 80m,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 국가의 경계에 있는 세계 제1의 폭포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엘레노어 여사가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마이 푸어 나이아가라(My poor Niagara)’라고 했을 정도로 나아아가라 폭포보다 높고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보다 넓은 이구아수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악마의 숨통’이라는 이름은 참 잘 지은 것 같다. 저 아래 심연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풍경을 한참 동안 무아지경으로 바라봤다. 사진 = 김현주

브라질 이구아수 vs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이구아수폭포(Cataratas del Iguazu) 국립공원은 다행히 그늘이 많고 화장실이 곳곳에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방문객이 많다. 전 세계 각국 모든 인종이 다 모인 것 같다. 이구아수는 브라질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어서 브라질을 통해서 방문하기도 한다.

다만 브라질은 폭포의 원경이나 전체적인 조망에 좋다면 아르헨티나 쪽은 폭포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구아수는 또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외 관광지 아닌가? 그만큼 세계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이지만 워낙 남반구 내륙 깊숙한 곳에 있어서 방문이 쉽지 않다.

▲이구아수 폭포공원 내 미니열차. 사람들의 신난 표정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악마의 숨통

공원 입구에서 미니열차를 타고 악마의 숨통(Devil’s Throat, Garganta del Diablo)으로 향한다. 열차에서 내려 철제다리를 약 20~30분 걸어간다. 건너편 산마르틴 섬을 사이에 두고 폭포에서 떨어진 물살이 거세게 흐른다. 물살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윽고 앞쪽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악마의 숨통에 다다른 것이다.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 저 아래 심연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한참을 무아지경에 빠져 머물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롭다 못해서 느리다. 그들이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걷는 좁은 철제 보행교를 지나오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번 여행길 초반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만났던 대학 친구가 브라질에서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현지인들이 느려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인 기준으로 하면 이곳 사람들의 여유(?)는 견딜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의 조급함이 결국 신속성과 효율성으로 이어져 놀라운 성취를 해내고 있으니 이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 것이다. 

이구아수를 섭렵하다

상부 산책로를 걸어 아담과 이브 폭포를 거의 만질 수 있는 위치까지 갔다. 크고 작은 수십, 수백 개(이구아수에는 모두 275개의 폭포가 있다)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나이아가라가 불쌍하다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부인 엘레노어 여사의 말이 맞다. 저 아래 계곡에는 폭포 탐험선이 강력한 모터의 힘으로 거친 물살을 헤치고 폭포 바로 아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의 탐험선 ‘메이드 오브 더 미스트(Maid of the Mist)’는 차라리 연락선 수준이다. 멀리 번지 점프장과 산마르틴 섬 백사장도 보인다.

이번에는 하부 산책로(Lower Trail)를 따라 끝까지 가본다. 물보라가 더위를 식혀준다. 아까 봤던 폭포들을 이번에는 올려다보는 느낌이 색다르다. 세계 최고 최대 이구아수 폭포는 어느 높이, 어느 각도, 어느 원근에서 봐도 멋진 그림이다. 조물주만이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폭포를 옆에서 보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느라 섭씨 33도에 높은 습도까지 겹쳐 무더웠던 하루가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리킨다. 도시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날 채비를 한다.

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피자 세 조각으로 가벼운 식사를 한다. 식당 앞거리에 볼리비아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아이 하나를 업고 또 하나는 데리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구걸에 가까운 행상을 한다. 이곳에서도 가난한 나라 사람들(볼리비아, 파라과이)은 이렇게 남의 나라 도시로 나와서 구걸을 하거나 막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나라 안의 격차만큼 나라 간의 격차도 이렇게 심각하다. 

▲이구아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새로운 여행의 길이 또 시작이다. 사진 = 김현주

18시간 버스에서 맛보는 기내식 아닌 ‘버스食’

버스는 저녁 7시 15분 이구아수 터미널을 벗어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1200km 거리, 비행기로 2시간, 버스로 18시간 걸린다. 운전기사 2명 이외에 남자 승무원이 따로 있다. 제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승무원은 미남 백인청년이다. 장동건이 보면 “형님” 해야 할 얼굴이다. 우등형 2-1열 좌석 배치 버스는 540페소(한화 약 15만 원), 항공기 요금의 거의 2/3 수준으로 결코 싸지 않지만 당일 호텔비 아끼는 것과 육로 여행의 낭만을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이다.

땅거미가 깔리는 길을 버스는 남쪽으로 재촉하며 엘도라도(El Dorado),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에스페란사(Esperanza) 같은 멋진 이름을 지닌 시골마을에 들러 승객을 더 태운다. 밤 깊은 시골 버스터미널은 이별의 포옹으로 가득하다. 엄마를 어디론가 떠나보내는 두 소년은 버스가 속도를 올릴 때까지 버스를 쫓아오며 계속 손을 흔들어댄다.

나중에 내 뒷자리에 탄 여인은 무슨 사연인지 버스가 떠난 후 누군가와 통화하며 계속 울먹인다. 옛날 우리나라 시골버스 정거장 바로 그 풍경이다. 밤 10시 반, 전혀 예상 밖에 버스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케이터링 트럭이 어디에선가 방금 날아온 것이다. 제대로 된 따뜻한 음식에 음료수와 미니와인 한 병까지 서비스한다. 버스 요금이 그냥 비싼 것은 아니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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