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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 근엄 사대부 대신 경쾌 스타 그려도 동양화 전통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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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9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11.14 09:19:14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장르의 해체와 혼종, 미술과 대중문화의 만남, 물질적 결과물로서의 작품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 등, 그 동안 칼럼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을 보면 요즘 미술이 전통적인 미술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의 사이사이 꾸준히 밝혔듯이 새로운 미술의 경향이 나타났다고 하여 이전의 미술이 무의미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하여 하나의 장르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며, 예술이 일상의 삶과 긴밀한 관계맺음을 하게 되었다고 하여 예술만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미와 추의 이분법적 가치와 위계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금기시되거나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주제와 소재, 매체가 등장했다고 하여 보편적인 미를 탐구하는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미술은 모든 다름을 포용한다. 무엇보다 예술 -미술- 은 보편성만을 따를 수 없으며, 하나의 동일한 원리로 이해될 수도 없다. 

-고전적인 미술을 아끼지 않는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이번 칼럼에서는 전통 미술의 형식과 주제를 계승하면서도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미술가들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도 현재와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히 그들의 작품에서 오늘날 미술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말 많은 미술가들의 작업들이 포함되겠지만 오늘은 특히 많은 사람들이 예스럽다고 느끼는 대표적 장르인 채색화에 주목해보겠다.

핸드폰-슈퍼맨을 민화 형식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전통 동양화는 표현 방법에 따라 수묵화와 채색화로 나뉜다. 그 중 채색화는 아교포수(阿膠泡水: 발색, 발수성, 보존성 등을 위해 아교와 명반 등을 섞은 용액을 바탕재에 칠하는 것)한 종이나 비단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완성하는데, 전통 회화에서는 초상화, 기록화, 불화, 민화 등에 사용되던 기법이다. 대부분의 채색화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국가의 인정을 받았던 전문 화원들의 영역이었기에 탁월한 완성도와 세련된 기교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화원부터 떠돌이 화가에 이르는 다양한 화가들이 그렸던 민화의 경우 자유분방하고 재기발랄한 표현들이 시선을 끈다. 이런 이유로 민화는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손동현 개인전 ‘Pine Tree’(2014년) 전시 모습. 도판 제공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Space WILLING N DEALING)

대표적 예로 곽수연은 책과 문방사우(文房四友), 각종 귀한 물건들을 그렸던 민화인 책거리 그림(冊架圖)에 개를 등장시켜 개인주의적이며 물질만능주의적인 현대인의 삶을 풍자한다. 이는 과거 ‘까치와 호랑이’ 그림이 전해주던 해학성을 떠오르게 한다. 서희화는 민화가 평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었다는 데에 착안하여 현대인을 대표하는 평범한 사물 중 하나인 플라스틱 폐자재, 핸드폰 케이스 같은 일상용품들을 이용하여 민화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두 작가 모두 불행을 막고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그림이자 일상을 꾸며주는 역할까지 했던 민화의 고유성을 잇는 동시에 현재의 삶을 보여준다.

수백년 뒤에야 비로소 그려진 조선 왕비의 초상 

전통 채색화의 현대적 모색이라는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는 손동현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채색화로 그려내어 대중문화와 대중스타가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된 주인공이었던 임금과 사대부들 못지않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오늘날의 세상을 담아낸다. 또한 손동현의 문자도(文字圖)에는 수복을 기원하거나 윤리적 덕목을 상징하는 글자가 적히는 대신 스타벅스(Starbucks), 아디다스(Adidas), 말보로(Marlboro) 같은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자리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차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들은 글로벌리즘과 자본주의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자 문화의 혼종을 보여준다. 동시에 대중문화와 미술,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같은 이분법적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한 번 기억을 되살려보자. 이러한 모습들은 여태까지 칼럼에서 ‘요즘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았던 것들이다. 최근 들어 손동현은 소나무, 동양화의 육법(六法)을 의인화시킨 작업들을 선보였다. 소나무는 전통 동양화에서 군주의 위엄, 문인의 절개를 상징하는 동시에 벽사와 수복의 의미를 모두 갖는다. 육법은 동양화 제작과 감상의 기본이 되는 법칙이다. 전통이 현대식으로 완벽히 재탄생된 것이다. 

▲이도경, ‘신덕고황후 진영(神德高皇后 眞影)’. 160x130cm, 견본중채(絹本重彩), 2015. 도판 제공 = 이도경 작가

한편 전통 초상화를 그리는 방식인 배채법(背彩法)을 고수하는 이도경은 왕비의 초상을 그린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에서부터 공신과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이 활발했다. 이는 개국 초부터 공신들에 대한 배려로 초상화를 하사하는 전통이 세워진 데다가 유교적 세계관에 근거해 조상, 집안의 어른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도경은 그 많은 조선 시대의 초상화들 중 여성들의 초상화가 거의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왕비의 초상을 그리게 되었다. 가장 신분이 높았던 여성인 왕비조차 초상화가 그려졌다는 기록만 있을 뿐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유교의 영향으로 조선 시대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초상화를 남길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 또한 남성인 화원들에게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 것도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이에 작가는 각종 자료들을 통해 왕비의 역사와 인생을 알아가며 얼굴을 완성하고 그 시대에 맞는 의복과 장신구를 고증해나가면서 지워진 한국 여성의 삶을 되살린다. 전통 동양화에는 잘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의 일상을 주제로 삼는 신선미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개미 요정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첨가하여 동화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한복을 입은 단아한 여인들과 함께 놓이는 –핸드폰 같은- 현대적 소품들은 전통과 현대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유도한다. 이들의 작업은 모두 그 동안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주변부의 삶을 주인공으로 되살려 낸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이다. 

이처럼 채색화라는 한 영역만 살짝 살펴보아도 얼마나 다양한 시도와 모색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혹자는 요즘 미술가들이 우리 고유의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걱정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미술가들이 한국의 고유성, 전통 미술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와 어우러지게 보여줄 것인가 심사숙고 하고 있다. 오늘날의 미술은 다양성 그 자체이다. 명확한 정답이나 흐름이 없기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자 더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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