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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⑱ 성신대학원 류지오] 차가운 금속에 자연이 꿈틀댈 때

에디슨 축음기의 나팔로 비상하는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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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윤하나⁄ 2016.12.09 17:06:48

▲류지오, '비상하다'. 25 x 50 x 39cm, 스테인리스 스틸, 동. 2015. (사진 = 류지오 작가)


어릴 적 초등학교에선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시켰다. 그때는 잠자리며 개미, 집게벌레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지며 놀았다. 어른이 돼버린 요즘엔 곤충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그들을 통칭해 벌레라 부른 지 오래다. 심지어 간혹 보게 되는 벌레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작아서 하찮게, 때론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벌레. 하지만 그런 벌레에게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다는 작가가 있다유쾌한 재즈음악이 나올 것 같은 축음기 나팔 모양의 날개를 단 벌레들이 볼수록 귀엽다.

  

에디슨 축음기와 파브르 곤충기

그가 벌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 작가에게 물었다. 류지오는 2014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불현듯 시골로 내려가 비닐하우스를 빌려 살았다고 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상추나 토마토, 고추 등을 키워 먹으며 지분지족(知分知足: 본분을 알고 만족함)하고 작업 생각만 했다. “그 전까진 아름답지 않은 세상만 그렸는데, 어느 날 상추를 먹다가 벌레 먹은 부분을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주변 벌레들이 눈에 들어왔죠.” 그곳에서 1년을 꼬박 지내며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 등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작가는 벌레를 친구처럼 느꼈다.

 

▲류지오, '비상하다'. 23 x 45 x 36cm, 동. 2015. (사진 = 류지오 작가)

 

다들 징그럽고 무섭다고 피하는 벌레를 작업으로 옮긴 건 그때부터였다. 그의 모든 곤충 조각에는 축음기(확성기) 나팔이 보이는데, 이는 곤충이 보다 아름답게 표현되는 동시에 현실에서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다. 류지오는 작가노트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날개를 단 녀석들은 더 이상 벌레도, 애벌레도, 성충도, 곤충도 아니다. 자신의 세월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받아들여 성공을 이룬 비상한 녀석들이다.” 나팔 날개를 달고 비상할 수 있는 비상한 녀석들, 그것이 작가가 시골에서 자연인 생활을 통해 발견한 곤충의 모습이었다.

 

곤충에 대한 관심으로 류지오는 작년 한 해 동안 일련의 비상하다연작을 완성했다. 이 연작의 주인공은 사마귀,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잠자리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곤충들이다. 어딘가 낯익은 첫인상이 조각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들기보다 호기심을 먼저 발동시킨다. 점차 이 벌레의 이름을 떠올리는 상태가 되면 이내 벌레를 이루고 있는 재료에 시선이 간다. 책상 위에 올릴 만한 크기로 제작된 곤충 조각들은 주로 동과 스테인리스 스틸 등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류지오, '비상하다'. 17 x 31 x 21cm, 동. 2015. (사진 = 류지오 작가)

 

부드럽고 따뜻한 금속

작품에서 물성이 두드러진다고 이야기하자 작가는 대뜸 무식한 작업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접 몸으로 부딪혀 경험으로 나오는 작업, 그러니까 많은 생각과 경험이 묻어나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입체 작품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 요즘, 오히려 류지오는 고집스럽게 자기 손맛이 묻어난 조각을 만들겠다고 늘 다짐한다.

 

그가 금속에 재미를 둔 가장 큰 이유로 용접을 꼽았다. 서로 다른 면과 면이 만나 녹아내린 금속에 의해 하나로 결합되는 모습은 그에게 감동에 가깝다. 상처를 봉합한 듯 흔적처럼 남겨둔 용접선을 그는 일부러 남겨뒀다. “용접이 좋아 시작했는데, (이걸) 감출 이유를 모르겠어요.” 거칠고 차갑고 때론 날카롭기도 한 금속의 물성을 그의 작품에선 느끼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금속성이 덜한 동을 많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자연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류지오, '비상하다'. 49 x 63 x 95cm, 스테인리스 스틸, 동. 2015. (사진 = 류지오 작가)

 

그의 관심은 이내 더욱 넓은 범위의 자연으로 이어졌다. ‘비상하다연작을 마치고 그는 올해부터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자연으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는 나팔 날개가 달린 거대한 달팽이 조각상을 작업 중이다. 초반의 시골 생활을 들을 때 떠올린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계속해 연상되기에 농을 던졌다. “혹시 '자연인'이신가요?” 그러자 작가도 너스레를 떨며 당시엔 정말 자연인처럼 살았죠라고 답하곤 이내 진중하게 말을 더했다. “궁극적으로 제 작업의 목표는 곤충이나 자연이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 자체를 담는 거예요. 자연도 좋고, 동물도 좋고, 곤충도 좋아요. 다만 그 자연을 곁에 두고 바라본 당시의 제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가고 싶어요.”


▲류지오 작가. (사진=윤하나 기자)


[장욱희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조교수]

"열정으로 가득찬 류지오의 자화상인 듯"


곤충의 몸과 에디슨축음기의 확성기가 결합된 형태의 형상 작품이 있다류지오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아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들이 내는 소리에 오랜 시간 주목해 왔다. 평범한 일상 속 어느 순간, 미물로 치부되는 것들의 치열한 삶과 처연한 죽음 사이의 거대한 풍경을 발견하고 본인의 당찬 삶과 중첩시킨다. 이러한 심미적 경험을 곤충도 인간도 가지지 못한 육체적 능력을 가진 형상조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세월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받아들여 성공을 이룬 비상한 녀석들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뜨거운 철조 기법으로 완성된 이 독창적인 형상은 열정으로 가득 찬 류지오의 자화상처럼 보인다저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젊은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고자 한다.



▲류지오, '비상하다'. 29 x 38 x 21cm, 동. 2015. (사진 = 류지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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