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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극동 러시아] ‘동방을 정복’ 블라디보스토크에 몰려든 中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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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2.12 10:11:0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심야비행 → 블라디보스토크)

오사카보다 가까운 극동 러시아

새벽 1시에 인천공항을 이륙한다. 승객들은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이다. 환승 한 번이면 전 세계로 연결되는 인천공항은 변방인 극동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배와 같은 존재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서울에서 450마일, 720km, 이륙 후 한 시간 40분 걸리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중국이나 북한 국경과는 육로 5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항공기는 현지 시각 새벽 5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2012년 APEC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공항 시설을 크게 확충하고 새 터미널 건물도 지었지만 썰렁하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육로 9288km, 7개의 시간대를 건너야 하는 머나먼 변방이다. 

개척을 기다리는 광활한 대지

입국수속마저 금세 끝나 버리니 시내로 나가는 공항열차(Airport Express) 첫차까지는 거의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아침 8시, 시내행 공항열차가 출발한다. 시내는 공항에서 남쪽 50km 지점에 있다. 뽀얀 아침 안개가 깔린 연해주 대평원에 농가 주택이 점점이 박힌 풍경이 참으로 목가적이다. 아직도 무한히 개척해야 할 광활한 대지다. 열차는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Muravyov-Amursky) 반도 남쪽 끝에 자리 잡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내려간다.

러시아의 횡재

블라디보스토크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Primorsky Krai), 즉 연해주(沿海州)의 수도로서 러시아에서 가장 큰 태평양 항구 도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원래 중국, 만주, 또는 발해의 땅이었다. 1689년 러시아와 청나라가 맺은 네르친스크(Nerchinsk) 조약에도 이 지역은 엄연히 청나라의 영토로 명기돼 있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몰아닥친 서구 열강의 청나라 영토 침탈에 따라 맺어진 아이훈(Aigun) 조약(1858년) 및 북경조약(1869년)으로 청나라는 연해주와 사할린까지도 러시아에 내주고 만 것이다. 마침내 태평양의 부동항을 얻은 러시아는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중국인, 만주인들을 몰아내고 러시아인들을 이주시켰다.

▲샌프란시스코를 닮은 블라디보스토크 거리. 블라디보스토크는 서울에서 450마일, 720km, 이륙 후 1시간 40분 걸리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사진 = 김현주

▲흑룡강성 번호판을 단 버스들이 줄을 지어 중국인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중국과의 국경이 다섯 시간 거리에 불과하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사진 = 김현주

인종의 불연속선

바로 이런 역사적 조건 때문에 이 지역에는 이른바 ‘인종의 불연속선’이 존재한다. 황인종이 사는 땅 바로 건너에 유럽 백인들이 산다는 것이다. 원래 주인이었던 중국인들은 이제 이방인 방문자가 돼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제국주의 말기 급작스럽게 백인들이 이주해 하루아침에 인종 지도가 바뀐 곳이니 지금 보는 이 모습은 100년 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 역사를 입증하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방의 지배자?

블라디보스토크는 어떻게 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같고 또 어떻게 보면 터키 이스탄불(Istanbul) 같다. 도시의 동쪽 내해(內海)는 금각만(金角灣, Golden Horn Bay), 바깥 바다는 동(東)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는가 하면 흐루시초프(Krushchev)는 이 도시를 샌프란시스코에 빗대기도 했다. 러시아어로 ‘동방의 지배자’, 즉 vostok(동쪽)과 vladi(지배)의 합성어인 도시 이름이 의미하듯 러시아 극동 영토의 최고 요충으로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갖은 풍파를 겪었다.

역사의 사연 많은 도시

1860년대 러시아인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입해 중국인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을 겪었고, 1917~1922년 러시아 혁명 때는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미국, 캐나다, 체코 등이 출병했고 일본은 도시를 잠시 점령(시베리아 원정)하기까지 했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부터 1992년 소비에트 해체까지 블라디보스토크는 외국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군사안보 지역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동쪽 기점에 자리한 블라디보스토크 역. 사진 = 김현주

인구가 부족한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2014년 기준 6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지만 1989년 63만 명을 기록한 이후 인구가 늘지 않고 있다. 유럽 러시아 기준으로 보면 머나먼 변방인 데다가 수산업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고 물가까지 비싸기 때문이다. 흑룡강성과 길림성으로 맞닿아 있는 수천 킬로미터 중·러 국경 너머에는 1억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으니 인구 과소국가 러시아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억울하게 빼앗긴 영토에 대한 중국의 미련이 남아있는 한 중·러 국경은 언제나 아슬아슬해 보인다.

예약해 놓은 호텔을 찾아 들어가니 아침 10시 조금 지난 시각인데 다행히 방을 내 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밤새 항공 이동과 공항 대기에 지친 몸을 달래고는 곧 시내 탐방길에 나선다. 태평양을 옆에 끼고 오르내리는 소담한 길을 걷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주고 아무르스키(Amursky)만의 탁 트인 모습이 가슴을 열어준다. 족히 100년은 넘었을 클래식 건축물들과 현대식 건축물들이 섞인 거리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남북으로 뻗은 알류츠카야(Aleutskaya)와 동서로 뻗은 스베트란스카야(Svetlanskaya), 두 중심 거리를 따라 도시의 명소가 몰려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관광 1번지로 꼽히는 혁명 광장. 광장 부근에는 큰 행정 관청 빌딩과, 혁명 기념 조형물 몇 점이 설치됐다. 사진 = 김현주

넘쳐나는 중국인 관광객

자매도시 광장에는 부산을 비롯한 세계 각국 자매도시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아치가 서 있고 그 아래로 아담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계속 걸어 혁명 광장(Ploschad Revolutsy)에 닿는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장악하면서 온전히 혁명을 완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조형물들이 눈길을 끈다.

가는 곳마다 중국인이 넘쳐난다. 흑룡강성 번호판을 단 버스들이 줄을 지어 중국인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중국과 국경이 다섯 시간에 불과하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나날이 높아지는 중국의 위세 앞에서 변방에 위치한 러시아 국경 도시는 왠지 초라해 보인다. 

금각만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해군 군함들의 위용이 눈에 들어온다. 역과 닿아 있는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는 마침 한국 강원도 동해시를 떠나온 페리 여객선이 하역 작업을 마치고 있다. 배에서 막 내려진 크고 작은 한국제 포클레인 수십 대가 항구에 도열해 있다. 열차에 실려 러시아 각지로 팔려 나갈 장비들이다. 

걷기 편한 도시

알류츠카야 거리를 걸어 북쪽으로 향하니 곧 아르세니예프(Arsenyev) 박물관이 우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 하얼빈(Harbin)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중국 하얼빈에 이주해 가서 살았던 러시아인들의 애환을 소개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출신 세계적 명사인 미국 할리우드 배우 율 브린너(Yul Brynner)의 가족도 혁명을 피해 하얼빈으로 이주했다.

가파르지 않아서 걷기 편한 도시를 오르락내리락 탐방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러시아의 태평양 연안 항구 도시가 사랑스럽다. 유럽 러시아에서 극동 러시아까지 편지가 오는 데만도 보통 3~4개월 걸렸던 시절에 머나먼 이곳에 자긍심 넘치는 도시를 건설한 초기 도시 개척자들의 인내심과 열정이 느껴진다.


2일차 (블라디보스토크 → 야간열차 → 하바로프스크)

율 브린너 생가

어제 남겨둔 시내 명소 탐방에 나선다. 시내 중심 프리모르스키(Primorsky) 미술관 건너편에는 할리우드 배우 율 브린너(Yul Brynner)의 생가가 있고 그 앞 작은 마당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왕과 나’에서 봤던 날카로운 눈매가 태평양을 응시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중국 하얼빈과 북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파리에서 활동한 그의 다문화 경험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빛을 발했다. 

▲자매도시 광장을 찾았다. 세계 각국 자매도시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아치 속 부산 아치도 발견했다. 사진 = 김현주

관광 1번지 혁명 광장

어제에 이어 다시 시내 중심 혁명 광장(Ploschad Revolutsy)으로 갔다. 광장 부근에는 흉할 정도로 개념 없이 크기만 한 행정 관청 빌딩이 있고 혁명 기념 조형물 몇 점을 제외하고는 삭막해 보이는 광장이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자에게는 푸근한 휴식을 제공하는 도심 속 고마운 휴식 공간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훨씬 더 많다. 이쯤 되면 이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도시 수입에 무시 못 할 보탬이 될 것 같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안개가 덜해 금각만 다리가 잘 보인다. 날씨가 무척 덥지만 바닷가로 가면 바람이 잘 불어줘서 상쾌하다.

태평양의 전략 요충

코라벨나야(Korabelnaya) 해변 제방(embankment)에는 온갖 볼거리가 모여 있다. 태평양 함대 사령부 건물에는 한국과 관련된 물건이 여럿 있어서 놀란다. 1993년 이곳을 찾은 한국 해군 방문단의 기념식수가 있는가 하면 견물 현관 테라스 위에는 거북선이 얹혀 있다.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 현관 중앙에 전시된 거북선은 그 자체로 많은 얘기를 전하는 것 같다.

인근에 있는 1860년 도시 설립 기념비에 이어 2차 대전 전몰자 위령비, 그리고 주변 교회와 작은 공원을 차례로 들른다. 러시아는 독일 및 일본과 맺은 불가침 조약 때문에 1941년에 가서야 2차 대전에 가담하지만 군인 900만 명, 민간인 1500만 명 등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육상에 정박한 C-56 잠수함은 인기 관광 명소가 되어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2차 대전 전몰자 위령비. 러시아는 독일 및 일본과 맺은 불가침 조약 때문에 1941년에 가서야 2차 대전에 가담하지만 군인 900만 명, 민간인 1500만 명 등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사진 = 김현주

방금 도착한 북한 노동자들

기차역으로 돌아오니 북한 남성 십여 명이 역 건물 앞에 모여 있다. 공항철도를 타고 방금 시내로 들어온 외화벌이 노동자들이다. 각 지역의 공사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이다. 북한 국적기 조선민항(Air Koryo)이 평양-블라디보스토크 노선에 주 1회 정기 운항편을 띄울 만큼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는 현지 노동 인력이 귀해 외화 벌이에 그만이다.

미국의 대소련 무상 공여

열차역 구내 플랫폼에 전시해 놓은 증기기관차는 알고 보니 사연을 담고 있다. 러시아 궤도 표준에 맞춰 1942년 미국에서 제작해 소련에 기증한 것이다. 2차 대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미국은 항공기, 탱크, 무기, 식량, 군복 등 온갖 군수 물자 800만 톤을 소련에 제공했다. 모두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서 들어와 러시아 각 지역으로 공급됐다. 유럽 대서양 연안을 모두 독일군이 장악, 봉쇄했기 때문에 태평양의 항구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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