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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1930년대부터 2016년까지 이어지는 ‘콩칠팔 새삼륙’

남들 이러쿵저러쿵 소리에 흔들리는 현 시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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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6.12.21 18:07:29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이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4년만에 돌아왔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2년. 눈과 귀를 사로잡은 공연이 있었다.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모던이 화두지만 도무지 모던이란 게 뭔지 갈팡질팡하는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두 여학생의 동성애를 그렸다. 1931년 4월 영등포역 기차선로로 뛰어든 홍옥임과 김영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소재 자체도 파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감미롭게 귀에 꽂히는 멜로디가 좋았다. 초연 이후 재연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라 아쉬웠다.


그런데 어언 4년이 지나 2016년 ‘콩칠팔 새삼륙’이 돌아왔다. 이번엔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2008년 극작과 작사를 맡았던 이나오 작곡가가 이번엔 연출까지 맡았다. 무대 세트도 더 화려해졌다. 무대 전면에 크게 펼쳐지는 영상이 일단 눈길을 끈다. 극 중간에 용주가 쓴 글도 영상에 전면으로 펼쳐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용주와 옥임의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가운데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는 그대로다.


초연 때 용주와 옥임으로 분했던 신의정과 최미소가 다시 원캐스트로 출연한다. 초연 때 남다른 여-여 케미를 보였던 그들이다. 초연 이후 만약 재연이 오르면 이들의 호흡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반가울 따름이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이번엔 더욱 농익은 감정선을 보여준다.


지금에야 여-여 케미가 돋보이는 시대다. 특히 드라마에서 그렇다. 전도연과 나나가 열연한 ‘굿와이프’는 두 여배우가 보여주는 호흡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나나는 양성애자 역할이었다. 최근엔 ‘불야성’에서 이요원과 유이의 호흡이 주목받고 있다. 기가 센 여자끼리의 신경전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묘한 케미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모던이 화두지만 도무지 모던이란 게 뭔지 갈팡질팡하는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홍옥임(왼쪽, 최미소 분)과 김용주(신의정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배우는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함께 출연한다.(사진=컴퍼니엠)

그런데 공연계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쓰릴미’ ‘풍월주’ ‘마마 돈 크라이’ 등 남-남 케미가 돋보이는 공연은 많았지만 여-여 케미가 돋보이는 공연은 흔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나타난 ‘콩칠팔 새삼륙’은 무대 위에서 보란 듯이 여자 배우들끼리의 키스신을 펼쳐 놓으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초연과 비교해 이 키스신은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공연이 두 여성의 동성애에 포커스를 맞춘 건 아니다. 성별을 넘어선 두 인간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자유를 갈망했던 이들의 바람이 주요 테마다. 결혼 상대, 심지어는 연애 상대조차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학교도 다닐 수 없었던 시대에 던져진 용주와 옥임. 단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고, 자유연애를 하고 싶었던 이들의 갈망이 무대 위에 간절하게 펼쳐진다.


용주와 옥임을 지켜보는 당시대의 배경도 눈길을 끈다. ‘콩칠팔 새삼륙’은 옛 우리말로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로 이러니 저러니 지껄이는 모습을 뜻한다. 1930년대 모던시대가 펼쳐졌다고 하지만, 이 정의가 확실하지 않아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에 바빴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주관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저 흥미가 가는 대로 우르르 따라가 지껄인다.


이 모습은 현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남 일에 관심이 많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뜻하는 ‘오지라퍼’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시대다. 예컨대 기사 하나가 올라오면 거기에 이런저런 댓글이 달라붙고, 사람들은 이 댓글에 따라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건전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는 측면도 있지만, 단순 흥미 거리로 전락하는 것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공연은 1931년 4월 영등포역 기차선로로 뛰어든 홍옥임과 김영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사진=컴퍼니엠)

극중의 용주와 옥임은 이런 사람들의 콩칠팔 새삼륙에 힘들어 한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옥임에게 청혼하는 류씨, 옥임의 아버지, 옥임의 아버지와 스캔들에 휘말리는 화동, 용주의 시모 등 다양한 인물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수군수군 대는 소리가 더 신경 쓰인다.


용주와 옥임이 마음껏 원하는 것을 펼칠 수 없는 것도 이런 콩칠팔 새삼륙에서 기인한다.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아버지로 인해 이들의 진정한 바람은 고개를 들어보지도 못한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용주는 옥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글 ‘흰 손수건’을 쓰지만, 억지 결혼으로 학업도 채마치지 못하고, 글의 결말도 짓지 못한다. 옥임은 본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여기엔 결혼이라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어찌 보면 이건 단순히 용주와 옥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현 시대에서도 고스란히 펼쳐지는, 즉 현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펼치지 못해 ‘헬조선’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차갑다.


이 가운데 울려 퍼지는 노래 ‘너와 나의 둥지 찾아’는 인상적이다. 이번에도 라이브 연주가 무대에 펼쳐진다. 용주와 옥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곡이다. 용주와 옥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에 좌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님을, 일말의 희망의 가능성도 품고 있었음을 들려준다. 공연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2017년 1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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