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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뉴스룸-뉴스공장-그것이알고싶다 ‘공정방송 삼각편대’ 날다…방송혁명이 시민혁명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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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5-516호(신년) 최영태⁄ 2016.12.22 17:33:03

▲최영태 편집국장

요즘 방송이 흥미진진하다. 이 정도면 거의 혁명적 수준이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끄는 주역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지난 9월 26일에는 tbs교통방송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가세했다. 9월 26일이라면 한겨레신문이 미르-K스포츠재단 비리를 첫 보도한 9월 22일로부터 겨우 4일이 지났을 때였다.

이후 저녁에는 jtbc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단독-특종 기사를 펑펑 터뜨리고, 아침에는 김어준 진행자가 ‘뉴스의 뒷면’을 여러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해석해주면서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결정타 격으로 지상파 3사 중 하나인 SBS가 가세했다. 12월 2일 SBS의 새 사장으로 선임된 박정훈은 취임하며 “SBS를 가장 공정한 언론사로 우뚝 세우겠다”고 선언했고, 달라진 모습은 12월 10일 방영 ‘그것이알고싶다 - 세월호 화물칸과 연안부두 205호', 17일 방영 ‘그것이알고싶다 -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대통령 5촌간 살인사건 미스터리’로 드러났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57회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 VIP 5촌 간 살인사건의 진실' 화면.(SBS 화면 캡처)


SBS의 변신에 KBS-MBC는 지붕 쳐다만 보는 개 될까  

▲“공정보도” SBS의 파장: SBS를 그저 오락방송으로 알아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그것이알고싶다’가 다루는 주제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간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아니, 한국에 지금 궁금한 사항이 얼마나 많은데 허구헌날 자디잔 살인-치정 사건이 그리 궁금해?”라며 비난해 왔던 필자로서는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현상이다. 

SBS의 가담으로 ‘공정방송 3각편대’가 이뤄진 의미는 실로 크다. 세월호든, 5촌살인사건이든, 우리 사회의 숱한 비밀과 비리에 대한 얘기들은 그간 인터넷-팟캐스트 등 ‘지하 언론’에서는 풍성하게 유통됐다. 하지만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어두운 골방에서 심각하게 이들 사안들을 논해도, ‘K팝스타’ 류의 오락 프로그램만을 시청하는 사람들에겐 전달될 수 없었다.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전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정보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정보의 강이 있어, 강 저편에는 천안함 폭발, 세월호 침몰, 5촌살인사건 등에 대한 정보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강의 이쪽에는 딴나라 얘기가 되고 마는 형국이었다. SBS의 가담은 강의 이쪽과 저쪽에 교량이 생긴 격이다. 

책-인터넷-팟캐스트 속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집 밖으로 걸어 나가 과자를 사먹는 과정에 비교할 수 있다. 책장을 들추고, 마우스를 클릭하고, 다운로드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SBS 같은 공중파의 방송은 소파에 ‘디비져 있어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과 같다. 리모컨만 까딱하면 편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을 움직이는 건 종이(신문-책-잡지) 또는 인터넷(팟캐스트 포함)이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것은 지상파 TV의 화면과 스피커라는 점은 그간 여러 사회적 사건에서 드러났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만 해도 최초 보도는 TV조선이 7월 26일자 시작했지만 곧 사그라들었고, 이어 한겨레신문 등이 9월말부터 보도를 시작했지만 일반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분석 보도가 나오면서 초고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간 스스로를 보수로 분류하는 사람들은(과연 이런 스스로의 분류가 맞는지는 의문이지만), 공정보도를 표방하는 jtbc나 tbs라디오를 그냥 ‘없는 방송’으로 무시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SBS까지 무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나머지 지상파 2사, 즉 KBS-MBC가 SBS의 변심을 그냥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만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대단히 궁금하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홈페이지 화면.


물밑에서 전략기획본부 역할하던 나꼼수가 뭍으로 상륙

▲ 지상파 마이크 잡은 ‘나꼼수’의 파워: 언론 환경이 엄혹하던 2013년 9월 16일 jtbc의 손석희 앵커 채용은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 이전의 1등 방송사 MBC의 앵커를 모셔간 격이었다. 김어준의 tbs라디오 진행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는 ‘지상파로 올라온 나꼼수’ 격이기 때문이다. 과거 골방에 숨어 쌍욕을 섞어가며 은밀한 얘기를 하던 정보통들이 지상파를 점령한 격이다.  

나꼼수(‘나는 꼼수다’)가 어떤 방송이었던가. 정치학자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나꼼수는 (2011년) 박원순 당선의 1등 공신이었다” “나꼼수는 보수진영의 조선일보처럼 진보진영의 전략기획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서 ‘문재인이 이긴다’(2012년)에서 진단했다. 나꼼수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진보 진영의 ‘지하’ 전략기획자 역할을 했던 김어준이 공중파를 탄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처럼 진보 진영의 ‘브레인’이 공중파 방송을 장악했던 적이 있었던가를 돌이켜본다면, 우리가 참으로 놀라운 혁명적 언론환경을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어준의 정치판 해석이 현 정국에서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는, 대통령 탄핵에 이르는 주요 변곡점에서 속속 드러났다. 이들 변곡점 내지 트릭은 대부분 청와대가 야권에 들이민 것들로,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야권이 새 총리를 천거할 것인가 말 건가 △개헌을 먼저 할 것인가, 아니면 대선 이후 개헌인가 △대통령의 4월 2선후퇴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등 다양했다. 이들 변곡점에서 야권이 자칫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 셋으로 나뉜 야권이 서로 경쟁하면서 “야당끼리 또 쌈질만 한다”는 비난이 쏠리면서 정작 잘못한 사람만 웃게 되는, 우리가 익히 봐온 야권의 지리멸렬함이 또 불거질 뻔했다. 

특히 ‘선 개헌 후 대선’으로 기울 뻔한 변곡점에서 김어준 진행자가 “이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등으로 발언함으로써 국민의당이 대량 비난을 받고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등의 사태로 발전한 진행 양상 등은 눈여겨볼만 하다. 이런 변곡점들에서 김어준 진행자가 제시한 “이건 이런 트릭이고, 여기 빠지면 어떻게 된다”는 방향 제시가 없었다면 사태가 어디로 흘러갔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으니 그의 기여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4월말까지 개헌을 마친다는 구상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각 단계별로 필요한 날짜를 팩트 체크해 보여주는 jtbc 뉴스룸의 팩트 체크 코너.(jtbc 화면 캡처)


받아쓰기만 할 줄 알았던 언론이 팩트 체크에 나서니

▲ 검찰의 미끼를 잘도 받아먹기만 한 한국 언론들: 이런 방향타 역할은, 그간 한국 언론이 검찰이 던지는 먹이를 덥석덥석 물어대면서 사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과거 사례를 돌이켜보면 분명해진다. 좋은 예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른바 ‘1억짜리 피아제 시계 스토리’다. 당시 검찰이 흘린 ‘노무현, 1억짜리 피아제 시계를 논두렁에 버려’ 기사는 조선일보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아썼다. 1억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다는 게 지금 돌이켜보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증거인멸을 하려면 호수나 강 속으로 던져 넣지 보란 듯이 논두렁에 버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공작이다. 이런 수준의 얘기인데도 진보언론까지 이걸 받아쓰며 노무현을 공격했고, 이런 공격이 그를 자살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관계자들은 술회한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수사 과정에서) 용서가 안 되는 부분은 우리 지식인 사회, 심지어 진보적인 언론매체까지도 포함하는 그 분들의 대통령 수사 당시 태도였습니다. 용서도 안 되고, 우리의 지적인 풍토가 참으로 실망스러웠고요. 진보적인 언론매체의 무책임한 비난들,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고 말했다고 책 ‘노무현의 사람들, 이명박의 사람들’(양정철 저)은 전한다. 

소설가 김갑수는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김인성-이병창 외 저)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노무현이 수사 받을 때 유시민이 어떤 제스처를 취했는지 제 글에 그대로 다 있어요. 대학 강연하던 거 딱 그만두면서 자숙모드를 취하고 "사실 나는 노무현 잘 모릅니다"라고 말했잖아요.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경향신문에 저처럼 쓴 글이 단 한번만 톱에 올랐어도 노무현은 자살 안 했을지 몰라요. 제가 볼 때 노무현을 죽인 건 진보언론이에요. 문재인도 자기 책에서 진보언론의 비난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 아팠다고 했잖아요. 막말로 조중동이 지랄 떠는 건 별로 상심이 안 돼요. 그런데 한겨레, 오마이뉴스 이것들이 노무현이 수사를 받게 되자 검찰 발표 받아쓰면서 변화하는데 정말 나폴레옹 당시 프랑스 신문 표변한 것은 저리 가라 할 정도였지요. 그래 놓고 나서 죽으니까 갑자기 또 불세출의 영웅으로…. 저널리즘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때를 좀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돌이켜보면 바보짓에 불과한, ‘검찰이 던져주는 먹이를 덥석 무슨’ 현상은 도대체 왜 벌어지는 걸까? 바로 한국 언론의 ‘동향 전달’ 버릇 때문이다. 동향 전달이란 뭔가? 

손쉬운 ‘동향 전달’ vs 땀 삐질삐질 돋는 ‘팩트 체크’

▲ 동향 전달과 팩트 체크의 사이: 여야 간에 정치적 다툼이 벌어지면,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도대체 문제가 뭔가 하는 ‘주제 정리’다. 도대체 사안이 뭐기에 여야가 그렇게 설전을 벌이는지, 그래서 그 사안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사회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헌데,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모든 사안은 대개 아주 복잡한 내용을 가진다. 예컨대 노령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시키는 박근혜 정부의 추진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려면, 기자는 복잡한 연금 계산법, 온갖 숫자들, 전문가들의 각기 다른 의견 청취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이른바 ‘팩트 체크’ 기능이다. 

그런데 팩트 체크는 어렵다. 전문가적 안목이 기자에게 필요하고 그 지난한 작업을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또 기껏 그렇게 사안을 이해하고 기사를 쓰거나 방송을 해도, 내용이 워낙 어렵기에 일반 독자-시청자들은 잘 이해를 못하고 따라서 시청률이나 페이지뷰(온라인 기사를 사람들이 본 횟수)도 낮기 마련이다. 

이럴 때 기자가 쉽게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팩트 체킹을 피하고 그저 정부-여당의 주장과, 야당의 반박성명 등 ‘말싸움’을 옮기는 것이다. 팩트 체크처럼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여당과 야당이 치고받고 싸우는 걸 생중계하듯이 기사를 쓰면 일단 보는 사람도 “박터지게 싸우는구나. 뭔가 문제가 크긴 큰 것 같으네”라고 쳐다보기에 시청률-페이지뷰도 그런대로 나온다. 기자는 간단히 양쪽의 ‘말’만을 옮기는 것만으로 독자로부터, 또 취재원으로부터 나름 주목을 받으니 일했다는 보람까지 얻으니 꿩 먹고 알 먹고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싸움구경을 아무리 해봐야 도대체 사안의 정체가 뭔지는 도저히 모른다. 여기에다가 이른바 보수 언론은 특유의 잘하는 장난질까지 더한다. “경제가 안 좋은데 야당이 정치적 공세를 벌여 정치가 싸움판이 되고 경제가 더 안 좋아진다”는 협박성 보도다. 이런 보도가 나오면 야당은 “발목을 잡지 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또 찌그러진다. 

이렇게 ‘사안 보도’가 아니라 ‘말 옮기기’를 하는 데 이골이 난 국내 언론들은, 이른바 보수 언론이고, 진보 언론이고를 불문하고, ‘노무현 1억 시계’ 발언이 나오니 그냥 이를 덥석덥석 물어대면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논두렁에 버려진 노무현 시계'를 보도하는 TV 화면. 이런 터무니없는 트릭을,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덥석덥석 물어댔던 것이 한국 언론이었다.(SBS TV 화면 캡처)


그때 그 시점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든, 손석희의 뉴스룸이든, 또는 공정을 내건 ‘그것이알고싶다'가 존재했다면, 과연 1억 피아제 시계 시비가 그런 식의 비극으로 흘러들어갔을까를 한번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과연 우리가 얼마나 달라진 언론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한국의 뉴스 수준이 이렇게 저급했기에, jtbc 뉴스룸이 진행하고 있는 ‘팩트 체크’의 중요성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같은 정론지들이 잘하는 게 바로 팩트 체크 기능이다. 선거철이 되면 미국 신문들은 각 후보에 대한 자체검증(팩트 체크)을 거쳐 “우리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며 인도싱(endorsing: 공개지지)을 한다. 일반 독자가 후보에 대한 팩트 체크를 할 실력과 여유가 없기에, 유권자들은 일간지들의 이런 공개지지에 많이 의존해 투표를 한다. 

“까놓고 공개 지지” 미국 언론 vs “공정 표방 뒤 호박씨” 한국 언론 

반면 한국 선거철에는 이런 언론의 공개지지가 없다. 속으로는 다 미는 후보가 있으면서도 모든 한국 언론들은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다 ‘은밀한 지원’에 나선다. 그러면서 “말”들을 보도하기에 바쁘다. 말만 무성하기에 도대체 정책의 차이가 무엇인지, 어느 후보가 향후 5년간 내 삶에 더 도움을 줄지는 깜깜하게 모른 채로 유권자들은 그저 흥분한 말과 말에 휩쓸리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나한테 도움이 될 거야”라는 헛된 기대를 품고 투표를 하고, 당선된 대통령이 ‘이상한 짓’을 하면 잘못 투표한 자신의 손가락을 탓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탄생한 한국의 민선 대통령 중 과연 유권자들이 “정말 잘 뽑았다”고 한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헛된 기대와 환멸의 반복이라고 하는 게다.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은 저서 ‘뉴스가 지겨운 기자’에서 이렇게 썼다. 

진실이 무엇인지 확증할 자신이 없으므로 언론은 진실의 자리를 주장, 의혹, 공방으로 대체한다. 진실을 확보하지 못한 언론은 정치적 프레임으로 뉴스를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진실 추적의 수고를 더는 관성에 길들여진다. 
한국 언론은 정치가 다뤄야 할 '이슈'를 보도하기보다 이슈에 대한 정치적 '싸움'을 보도한다. 사회의 저변에 천착해 여러 문제를 발굴하여 정치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정치가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를 정파 간 쟁투의 영역으로 좁혀버린다. 
한국 언론의 주류적 방법론은 오직 새로운 사건이다.  

손석희의 팩트 체크와 김어준의 ‘정치적 속셈 풀이’가 존재하는, 그리고 정말로 국민이 알아야 할 사안을 깊숙이 알려주는 ‘그것이알고싶다’가 존재하는 2016년의 한국을 사는 국민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이 삼각편대가 계속 비행하면서 다른 언론들에도 건강한 자극을 줄 가능성을 생각하면 더 행복해진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불행했다면, 그 원인은 이른바 친노의 정치적 미숙, 플랜 없음에도 있지만, 던져지는 먹이를 덥석덥석 무는 데만 익숙하고 팩트 체크 또는 제대로 된 정치 평론에는 거의 완전하게 무지에 가까웠던 언론의 미숙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고 본다. 

언론이 ‘왜곡시키는 산업’이라고?

▲ 언론과 시민의 괴리를 분명히 알아야: 지난 탄핵 정국에서 촛불시민들은 분명히 봤다. 정치인이 보는 세상과 촛불시민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장 하야” 또는 “즉각 퇴진”을 목 놓아 외쳤지만, 정권 쟁취를 목표로 하는 기성 정치인들은 온갖 수 싸움과 손익계산에 분주하고, 국민의 외침을 ‘2선으로 후퇴시키’는 작업에 아주 능숙하다는 사실들을. 기성 정치인들의 이러한 꼼수를, 국민들은 촛불로, 문자폭탄으로, 당사 앞 항의로 좌절시켰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말한 주요 변곡점에서 각 언론사들은 ‘박근혜 비판 보도’라는 공통분모를 지니면서도 각기 나름의 선호 방안을 교묘하게 노출시켰다. 특히 종편에 출연하는 일부 패널들은 “대통령이 내놓은 야권합의 총리, 4월 퇴진을 안 받아들인 야권은 결국 후회할 것. 큰 실수를 했다”거나 “탄핵을 가결시키면 오히려 박근혜 퇴진이 4월 이후로 더 늦어진다”면서 박 대통령이 내놓은 4월 하야 일정을 야권과 국민이 받아들여야 된다고 설득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물론 이 역시 촛불시민의 항의로 좌절되고 결국 박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의결됐다.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란 개념, 즉 우리가 알아온 것이 항상 진리가 아니고 백조는 항상 하얀 게 아니라 검은 백조가 홀연히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설파해, 세계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블랙 스완’의 저자 니콜라스 탈렙은 자신의 책에서 언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독특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언론은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해 주지 못하므로 신문과 방송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 정보는 어떻게 취득하는가? 파티에 가면 된다. 직접 만나 귀를 기울이고, 이렇게 수집된 '걸러진' 정보를 기초로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언론이란 왜곡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역구글 현상’이란 게 있다. 미래의 구글이 될 것들이 모여 있는 저수지도 있다. 즉 특정 분야의 전문 기술 소지자들이 작고 안정적인 사용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키워 준다. 이 작은 것 중에서 일부가 이따금 강자를 쓰러뜨리고 위로 올라가는 일이 생긴다. (이것은 '이중의 꼬리'다. 즉 작은 것들의 큰 꼬리, 또는 큰 것들의 작은 꼬리이다)
긴꼬리 효과는 기득권 정치 집단, 학문 체제, 언론 집단 등 경직되고 기만적이며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권위적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는가? 언론인이란, 언론사란, 탈렙의 말대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권위적 세력’임을? 그리고 어차피 언론은 왜곡을 생산하는 산업이므로 파티에서 생생한 인간의 목소리를 들어야 진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촛불 현장에 선 사람들은, 정치권이 해대는 이상한 말들, 믿었던 야권 인사의 이상한 몸조심 행동들, 그리고 방송 패널들의 교묘한 말장난(속셈을 숨긴)들을 이번 사태에서 겪었다. 언론의 왜곡 현상은 팩트 체크에 미숙한 한국 언론만 하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세계 최고의 정론지도 왜곡을 일삼는다. 미국엔 이런 분석이 있다. 뉴욕타임스에 ‘경제가 위기’란 기사가 연속적으로 실리면서 경제 위기감을 고조시키던 시기의 실제 경제 데이터를 나중에 보니, 뉴욕타임스가 위기감을 고조시키던 바로 그 시기에 미국 경제가 퐁퐁 살아나던 시기였다는 분석이었다. 세상이 심심하면 신문은 안 팔린다. 세상이 위기에 빠지고, 큰 사건이 펑펑 터져야 신문이 잘 팔린다. 위기가 없고 사건이 없으면 위기를 만들고 사건을 확대-왜곡시켜서라도 신문을 팔아야 하는 것이 언론의 생리다. 이런 속사정을 알면 ‘현대의 현인’이라고도 불리는 탈렙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다.  

▲'MBC News' 로고를 뗀 채 방송하는 MBC 뉴스 화면을 조롱하는 네티즌들이 올린 화면.


이런 언론을 전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과거의 ‘검찰의 먹이를 덥석덥석 받아 물던’ 못난 한국 언론들과 달리 이제 손석희의 팩트 체크 기능과, 김어준의 깊이 들어가는 정치평론, 그리고 진짜 알아야 할 사안을 알게 만들어주는 SBS가 있는 세상은, 어둡고 음습한 ‘유신시대의 긴 뒤꼬리 시대’보다는 그래도 훨씬 밝고 힘찰 것 같기는 하다.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언론 지평이 열리면, 진보매체들도 TV 기능을 갖게 될 것이며, 현재 진보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여러 독립 언론들에 대한 접근성도 더욱 좋아질 것이다. 또한 SNS를 활용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언론 형태도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정권의 종말로 한국인은 1972년 시작된 유신시대를 44년 만에 비로소 졸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신의 진정한 종말 이후 어떤 언론 지평이 한국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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