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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현실이 너무 난장판이니 자극적이지 않은 연극 '베헤모스'

김태형 연출 "이게 드라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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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7.02.22 17:49:17

▲연극 '베헤모스'는 정의 구현을 외치는 오검과 그를 비웃는 이변의 대결을 그린다.(사진=(주)PMC프러덕션)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사회 고발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아마 현재 난장판인 현실을 반영해서 더욱 그럴 수도 있다. 연극 ‘베헤모스’도 그중 하나다.


연극 ‘베헤모스’에 앞서 2014년 3월 방영된 KBS 스페셜 ‘괴물’(대본 박필주, 연출 김종연)이 있었다. ‘베헤모스’의 원작이다. 재벌가의 아들에게 벌어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그를 변호하는 자와 응징하는 자의 세력 대결,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악의 순환을 담았다. 방영 당시 탄탄한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호평 받았고, 2015년 제49회 휴스턴국제영화제 TV영화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드라마가 ‘베헤모스’라는 작품으로 무대화를 결정했다. 연출은 김태형이 맡았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공연이기도 했다. 그가 과거 연출한 ‘모범생들’을 인상 깊게 봤었다. 사회로 나가기 이전, 이미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성적 경쟁을 펼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섬뜩했다. 그런데 ‘베헤모스’를 보니 꼭 ‘모범생들’ 속 학생들이 성인이 된 모습 같다.


‘모범생들’에서는 상위 0.3%의 민영이 학우들을 성적으로 농락했다. ‘베헤모스’에서는 학교에서 사회로 범위가 확대된 가운데 두 존재가 사회의 정의를 위협한다.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자란 명문대생 태석과, 힘든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젠 베헤모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변호사(이하 이변).


구약성서에 기록된 거대한 괴수의 이름인 베헤모스는 결코 잡을 수 없는 괴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변이 그렇다. 자신이 맡은 사건에서 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옳지 못한 방법일지라 하더라도.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길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베헤모스라 부른다. 그런 그가 살인을 저지른 태석의 변호를 맡았다. 최강의 악(惡)의 조합이다. 이변은 자신한다. “진실은 우리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극중의 인물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긍정적인줄 알았던 그 변화는 조금씩 파국으로 치닫는다.(사진=(주)PMC프러덕션)

이들과 대립하는 인물이 오검사(이하 오검)다. 오검은 ‘정의 구현’을 외치는 인물이다. 과거부터 암암리에 행해진 이변의 죄를 아는 오검은 그를 꼭 잡겠다는 신념에 불타오른다. 이 신념은 처음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한 태석의 마음까지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야기가 마치 동화처럼 해피엔딩처럼 흘러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건 동화가 아니다. 오검의 신념이 진정 정의를 위한 것인지 극이 진행될수록 의문이 생긴다. 알고 보니 과거 이변에 의해 오검의 동생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고, 이후 오검은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어떻게 보면 오검에게는 ‘복수=정의구현’이라는 공식이 뿌리 깊게 박혀버렸다. 그래서 그 또한 이변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씁쓸하다.


그런데 씁쓸하지만 파격적이지는 않다. 이건 워낙 요즘 현실이 난장판이기 때문. 김태형 연출은 “현 시국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작품은 2014년 드라마가 원작인데, 지금 현실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것은 결국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현실 비판, 특히 고위층을 비판하는 오락물 영화가 근래에 많이 나왔다. 정의 구현이 이뤄지는 부분도 있고, 반대로 암울하게 끝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검사, 변호사의 법률용어에도 익숙해졌다. 정말 많이 뉴스에 나오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현실 비판극은 사람들에게 자극적이지 않아졌다. 익숙해졌기에. 김 연출은 “극을 올리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극중의 캐릭터가 괴물 같아 보이지 않더라. 뉴스에 나오는 인물들이 훨씬 더 끔찍하다. 치열한 책임회피 속 결국 피해자만 남게 되는 대한민국의 이 현실이 참담하다. 그리고 지금 세상을 보는 내 아프고 쓸쓸한 세계관이 극에 녹아들어갔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뉴스에 나오는 범죄들을 보고 ‘이게 드라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막장 드라마가 한때 굉장히 유행한 적이 있는데, 지금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민다. 현실이 완전 기가 막힌다.


‘베헤모스’를 보고 ‘모범생들’과의 연결고리가 느껴진 건, 과거부터 지금까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많아져가는 사회 속 베헤모스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냥 해피엔딩을 꿈꿀 수 없는 상황 속 베헤모스들은 선한 사람들이 지치기를 숨죽이고 기다린다. 또 큰 베헤모스가 작은 베헤모스를 잡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헤모스 또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극은 두 눈 뜨고 베헤모스들을 지켜본다. 공연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4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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