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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세상을 담는 미술] 예술은 고상하다고? 현실에서 두발 뗀 미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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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5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03.06 09:41:07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사회적 혼란기나 경제적 침체기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 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향유이다. 당장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는 것은 사치라는 말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예술은 우리의 진짜 삶과 일정 부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미(美)의 추구나 개념의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비실용적인 예술’이라는 순수 미술(fine art)의 뜻풀이만 봐도 현실의 팍팍함과는 무관하게 예술은 항상 자기만의 우아하고 고상한 영역을 지키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예술가상, 즉 현실에는 무관심하며 병적으로 창조에 집착하는 괴짜나 사회부적응자의 모습도 이러한 생각에 일정 부분 기여해왔다. 

삶과 예술의 분리 강조한 것은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예술과 삶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는 생각은 형식론을 바탕으로 하는 모더니즘(modernism) 미술에서 강조되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예술은 일상의 삶과는 다른 무엇이어야 했다. 시각 예술로서의 독립성을 갖기 위해 미술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적 사건의 묘사 같은 이야기가 있는 미술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미술은 오직 눈을 통해 경험되어야 했기에 점, 선, 면, 색채 등이 만들어내는 형식적 실험만 남게 되었다. 순수한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장르의 엄격한 구별로 이어져 회화는 가장 회화답게 평면성을, 조각은 가장 조각답게 입체감을 보여주는 데에 전념했다. 이런 이유로 추상 미술은 모더니즘 미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미술가들은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와 긴밀하게 반응하며 작업해왔다. 그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구성원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예술가란 있을 수 없다.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에 들어 회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것은 유화의 발명 덕분이었다. 야외용 이젤이나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빛의 변화에 따른 형태와 색의 변화를 담아내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미술이 가능했을까? 팝 아트(Pop Art)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중문화가 익숙한 것이 된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The Oath of the Horatii)’(1784)나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Les Sabines)’(1799) 같은 작품들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국가를 향한 애국심과 윤리 의식을 고양시키고, 사람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다비드의 웅변과도 같은 것이었다. 독일 표현주의(Expressionism) 미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20세기 초반 독일이 안고 있었던 사회 문제들을 비판하고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보여주고자 했다. 삶과 예술의 끈끈한 관계는 관객에게도 적용된다. 심지어 그것이 추상 미술이라 할지라도 관객들은 자신의 일상과 완전히 분리된 채 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   

▲이정윤, ‘김씨의 자가용(Mr.Kim’s Private Vehicle)’, 공기조형물, 250 x 250 x 160cm, 2017. 사진제공 = 이정윤 작가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미술, 사회와 분리된 예술은 불가능하다. 삶과 분리된 예술을 강조했던 추상 미술도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전문화, 분업화, 세분화가 필요해진 시대적 상황에 영향 받은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실재하는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우리가 무시하거나 잊고 싶어 하는 불편한 현실에 주목하여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거나 문제의 해결책을 고민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작점에 위치한 신표현주의 미술에서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삶 속으로 들어가 몸으로 부닥치는 현대미술

삶의 모든 형태들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환경 보호, 반전(反戰), 인권 옹호, 비폭력을 지향하는 독일 녹색당(Die Gruene)에서 활동했다. 7000그루의 나무를 심고, 야생 코요테와 3일간 함께 했던 퍼포먼스들은 자연과 문명, 인간과 동물,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는 작가 자신과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페미니즘(feminism)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한 명인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여성의 현실을 비판하고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작업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비롯한 인종문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재현했다. 캐리 메이 윔스(Carrie Mae Weems)의 ‘거울아, 거울아(Mirror, Mirror)’(1987), 라일 애쉬톤 해리스(Lyle Ashton Harris)의 ‘호텐토트 비너스 2000(Venus Hottentot 2000)’(1994)은 인종차별의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정윤, ‘Recollection’, 환우들이 그린 이미지 재조합, 천 위에 실사출력, 공간 내 가변설치, 4×6m, 2017. 사진제공 = 이정윤 작가

한편 미술가들은 아예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주변부의 모습을 찾아내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의 부분들이 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현재 벗이 미술관(www.versi.co.kr)에서 진행 중인 전시 ‘드리밍 벗이(DREAMING VERSI)’는 용인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환자들에게 단순히 그림 그리는 기술을 알려주기 위한 것도, 치료의 일환도 아니었다. 그것은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였다. 사회와 분리된 채 존재하는 환자들에게도 상상력과 열정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것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가 이정윤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자신이 UFO를 타고 왔다고 말하는 환자의 이야기, 환자가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의 자가용과 같은 UFO를 제작했다. 아무도 관심 없어하던 ‘김씨의 자가용’은 현실이 되었고 우리의 세상과 환자들의 세상에는 교집합이 생기게 되었다. 환자들의 드로잉이 전시장을 채우면서 작가와 환자들, - 그들의 협업으로 완성된 작품을 마주한 - 관객들은 작은 우주를 공유하는 동료가 되었다.

예술은 그저 아름다운 꽃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미술가들도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현실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려는 우리에게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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