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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갤러리 ①] 겉과 속의 '치유' 실천하는 안국약품 갤러리AG

이현주 큐레이터 "'그들만의 파티' 아닌 기업과 예술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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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7호 김금영

▲2008년 9월 안국약품 사옥 1층에 문을 연 갤러리AG 내부 전경. 전시를 감상함과 동시에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이 배치됐다.(사진=갤러리AG)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안국약품(대표 어진)의 한 공간에 들어섰을 때 받은 색다른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근엄하고 엄숙할 것만 같은 공간의 일부분에서 색다른 아트쇼가 펼쳐졌다. 가수 솔비가 작가 권지안으로 나서 퍼포먼스를 펼쳤고,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특별한 매력을 내뿜었다.


안국약품은 아픈 몸을 낫게 하는 약을 만든다. 그런데 마음까지 치료하겠다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방문했던 곳도 바로 이곳. 안국약품 사옥 1층에 비영리문화공간 갤러리AG가 2008년 9월 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예술의 힘으로 보듬겠다는 취지다. 개관 이래 어언 10주년을 향해 가고 있다.


▲안국약품 갤러리AG의 이현주 큐레이터. 개관 때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갤러리AG 공간을 지켜왔다.(사진=김금영 기자)

사실 기업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유명 대기업 여러 곳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개관 때부터 갤러리AG를 한결같이 지켜 온 이현주 큐레이터는 이 뻔하디 뻔할 수 있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는 이른바 '기업 갤러리' 큐레이터다.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야 다 똑같을 것 같지만, 기업 갤러리 큐레이터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상업 갤러리는 작품을 소개하고 파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그래서 작품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기에 공급자 중심으로 공간이 운영된다. 그런데 기업이 운영하는 비영리공간 갤러리AG에서는 판매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공간을 찾는 사람들, 즉 수요자 중심으로 공간이 운영된다. 수요자의 폭도 다양하다. 일반 갤러리가 예술과 대중, 컬렉터를 연결시킨다면, 기업 갤러리는 여기에 기업의 니즈(needs)도 포함시킨다. 속한 조직에서 원하는 전시의 방향이 분명히 있다. 그 와중에 전시의 퀄리티도 놓칠 수 없다.


“기업 갤러리 큐레이터는 일반 갤러리 큐레이터와 또 다른 특성을 가져요. 대중과 기업, 그리고 예술 사이 다리 역할을 해야 하죠. 특히 갤러리AG는 단지 안국약품의 부속 갤러리로서 그냥 형식상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아요. 저 또한 안국약품의 정식 직원으로서, 기업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죠. 기업의 정체성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예술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처음엔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가수 솔비(가운데 흰 옷)가 작가 권지안으로 변신해 갤러리AG에서 전시를 열었다. 학생들에게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는 AG아트스쿨도 열렸다.(사진=갤러리AG)

안국약품은 갤러리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직원들의 창의성 독려를 원했다. 그래서 갤러리AG의 공간엔 여기저기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됐다. 직원이 휴식을 취하러 오거나 안국약품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형태다. 실제로 이야기 도중 안국약품 직원들이 종종 내려와 커피를 마시며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돌아가곤 했다. 마을 주민이 공부할 거리를 가지고 와서 작품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가기도 했다.


“갤러리AG는 안국약품 사옥에 위치하지만, 별도 입구가 설치돼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어요.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산책하다가 많이들 방문해요. 직원들은 업무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거나 회의를 할 때 이 공간에 와서 리프레시하는 효과가 있죠.”


제약회사 성격 살린 갤러리AG의 시너지 효과


▲인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문화 예술을 체험하는 이벤트가 갤러리AG에서 열렸다. 지역 주민과 직장인의 지친 마음을 미술로 함께 치유하는 자리다.(사진=갤러리AG)

그리고 갤러리AG는 제약회사인 안국약품의 성격을 잘 녹여냈다. 갤러리AG는 매년 9월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를 책임진다. 52주년 때 회사를 소재로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마련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안국약품을 주제로 작가들이 창의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안민정 작가는 안국약품의 눈 영양제 토비콤을 통해 ‘콩깍지를 유지시켜주는 약’을 선보였다.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쓰인다고들 한다. 안 작가는 ‘미래에는 콩깍지를 쓰이게 하거나, 반대로 벗겨지게 하는 착시 약이 개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발한 상상을 담은 일러스트 작업을 선보였다. 알약 캡슐로 꽃다발을 만든 엄해조 작가의 작품도 있었고, 안국약품의 캐릭터를 재해석한 작품도 있었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안국약품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고, 회사의 정체성 또한 살린 전시였다.


또 제약회사는 의료인과의 관계가 필수다. 의료인과의 전시도 꾸준히 열어 왔다. 의료인 중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안국약품과의 인연이 있었던 의료인뿐 아니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의료인과의 전시를 기획했다. 그래서 ‘해부학으로 알아보는 명화 전시’ 등 의학과 예술이 만난 재미있는 전시가 열렸다.


▲미술치료사가 전시 및 상담에 직접 참여한 처방전 전시가 2014년 열렸다. 단순히 '예술을 보고 힐링하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전시와 함께 미술치료 상담을 진행했다.(사진=갤러리AG)

▲2014년 안국약품 창립기념전 때 오세린 작가는 안국약품 생산본부를 촬영한 작업을 선보였다.(사진=갤러리AG)

그런데 여기서 ‘그들만의 파티’로 그치지 않기 위해 갤러리AG는 다양한 이벤트 및 공모전을 꾸려 왔다. 일반 대중과 예술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기획이다. 대표적으로 지역 주민과 직장인을 위한 미술힐링 프로그램, AG아트스쿨, 신진작가 공모전, 어린이 공모전이 있다. 미술힐링 프로그램에는 미술치료사가 나섰다.


“2014년 12월 현직에 있는 미술치료사 4명과 ‘처방전’ 전시를 선보였어요. 단순히 ‘예술을 보며 힐링하세요’라고 포괄적으로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춰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전시와 함께 미술치료 상담을 함께 진행했어요. 본인의 감정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그려보면서 상담하는 형태였죠. 본래 갤러리 성격상 전시를 해도 전시장에서 의사를 만나거나 미술치료사를 만나기 힘든데, 안국약품이 제약회사이다보니 그 딱딱하고 높은 벽을 낮출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어요.”


▲제약회사인 안국약품의 특성을 살린 전시도 꾸준히 열려 왔다. 2015년 창립기념전 때 김남이 디자이너가 선보인 작품.(사진=갤러리AG)

▲안국약품의 눈 영양제 토비콤을 소재로 소상민 감독이 2014년 창립기념전 때 선보인 작업.(사진=갤러리AG)

2013년부터 시작된 AG아트스쿨은 더 많은 사람들과 예술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장기적으로 아이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특히 문화 소외 계층을 위해 기획됐다. 갤러리AG 전시 작가의 강연 및 함께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 등으로 구성됐다. 또한 미래 예술인을 꿈꾸는 꿈나무들을 위해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임 디자이너, 조각가, 설치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조언을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처음에 고민했던 게 ‘왜 사람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고 그 작품 세계를 알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미술 전공자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도 예술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죠. 평소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갤러리 문턱은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편하게 강의를 듣고, 같이 그림도 그려보고, 예술 직업군에 대한 상담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다가 예술교육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 큐레이터는 직접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평일엔 전시를 진행하고 주말마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다. 이해가 바탕이 돼야 제대로 된 기획이 나올 수 있다는 의지에서였다.


갤러리AG의 중심을 구성하는 문화예술 후원과 치유


▲예술적 감각을 지닌 의료인의 전시 참여를 독려하는 자리가 갤러리AG에서 기획됐다. '해부학으로 알아보는 명화 전시' 등 재미있는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사진=갤러리AG)

예술인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신진작가 공모전과, 미래의 예술인을 발굴하기 위한 어린이 공모전도 꾸준히 열고 있다. 신진작가 공모전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공간 대여, 평론비, 운송비, 광고비, 오프닝 행사비 등 전시에 관련된 모든 제반 사항을 안국약품이 지원한다. 1년에 6명씩 작가를 선정해 지원해 왔다. 이 공모전의 독특한 점은 일반인 투표가 포함된다는 것. 편향적인 시선을 배제하기 위해서, 또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매년 전문 심사위원단을 새롭게 구성해 선정 작가 후보를 뽑아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일반인 투표 과정이 있죠. 전문가들이 뽑은 작가의 경우 예술성을 중점으로 봐요. 그런데 대중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죠. 특히 갤러리AG에는 지역 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찾아와요. 갤러리AG의 전시를 보고 안국약품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 수 있고요. 그래서 일반인 투표 과정을 거쳐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그들이 어떤 전시를 선호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미래의 예술인을 발굴하기 위한 신진작가 공모전(왼쪽)과 어린이 공모전은 꾸준히 열리고 있다.(사진=갤러리AG)

특히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전시는 솔비, 그리고 현재 열리고 있는 이광기의 전시다. 연예인으로서의 인지도도 있지만, 이들이 진지한 태도로 작가에 새롭게 도전한다는 취지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갤러리AG 공모전은 특징이 있어요. 전공 무관하고, 나이 제한도 없죠. 아무런 제한이 없어요. 선정 작가를 뽑아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전시를 열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거나 공간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는 것 자체도 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양한 부류가 있을 수 있어요. 신진 작가뿐 아니라 소위 아트테이너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고, 비전공자가 있을 수도 있죠. 여기에 역차별식으로 선을 긋고 싶지 않았어요. 평등하게 무대를 펼쳐주고, 함께 즐길 전시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AG아트스쿨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모습. 특히 문화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문화 나눔을 실현하고 있다.(사진=갤러리AG)

어린이 공모전 또한 제한 없이 이뤄진다. 매년 ‘내가 만들고 싶은 약 이야기’ 등 회사와 관련된 주제를 주고 5월 한 달 동안 아이들의 작품으로 전시를 연다. 아이들의 작품은 액자나 엽서로 제작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작품은 정말 창의적인 것들이 많아요. 주제상, 아이디어상 등 총 6개 부문으로 특기상 시상을 하죠.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라 기념 마술쇼, 페이스 페인팅 등 축하 이벤트도 마련해 전시장을 파티의 장으로 만들어요. 아이와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부모의 관심도 높습니다.”


▲안국약품 직원들도 갤러리AG에서 창의성을 얻기 위한 작업에 참여한다.(사진=갤러리AG)

이토록 다양한 활동의 성과를 2016년 인정받았다. ‘2016 한국메세나대회’에서 안국약품이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에 선정됐다.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 인증 제도는 문화예술후원의 지속성, 문화예술후원에 필요한 조직의 역량, 적절한 운영체계의 구축 등을 평가해 모범적으로 문화예술을 후원해 온 단체 및 기업들을 발굴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제약기업 중 안국약품이 유일하게 선정됐다. 신한은행, 아시아나항공, GS칼텍스, KB국민은행, KT, KT&G, 포스코 등 총 14개 기업 및 단체가 선정됐다. 굵직굵직한 대기업 사이에서 알차게 공간을 꾸려 온 갤러리AG의 성과가 돋보인 순간이었다.


갤러리AG는 앞으로도 문화예술후원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이 큐레이터는 다양한 활동으로 바쁘다. 2016년 12월엔 SBS ‘영재 발굴단’ 관련 외부 기획전을 기획해 인사동 우림갤러리에서 선보였다. 평소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기회였다. 외부 활동을 통해 다시 내부에 전문성을 어필하는 계기였다. 또한 차별화된 업무를 하고 있는 기업 큐레이터들이 서로 정보 교류 및 큰 방향성을 나누기 위한 모임도 만들었다.


▲이현주 큐레이터는 2016년 12월 SBS '영재 발굴단' 관련 외부 기획전을 인사동 우림갤러리에서 선보였다. 외부 활동을 통해 안국약품 갤러리AG에 전문성을 어필하며 경험을 쌓았다.(사진=SBS '영재 발굴단' 방송 화면 캡처)

“기업 갤러리 큐레이터로서 다양한 의견 교류와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틀에 갇히지 않고, 여러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귀를 열어야죠. 또 무엇보다 기업의 관심과 독려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AG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지금까지를 돌아보자면 ‘치유’가 갤러리AG의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로서 마음을 치유한다는 취지에서 이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간의 전시를 돌아보면 바탕엔 치유가 있었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예술 활동으로 서로 마음을 나눴고, 주목받았던 솔비와 이광기 작가의 전시 주제도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발견한 치유였죠. 단순히 기업이 운영하는 갤러리가 아니라 진정한 치유를 전해줄 수 있는 갤러리AG로 꾸려가고 싶어요.”


▲안국약품을 주제로 한 2015년 창립기념전에서 오명준 포토그래퍼가 선보인 작품.(사진=갤러리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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