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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도시 자체가 박물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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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3.27 09:31:28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9일차 (무르만스크 → 상트페테르부르크)

느지막이 일어나 휴식을 취한다. 오늘은 저녁에 상트페테르부르크행 항공 이동 말고 특별히 할 일은 없다. 러시아 여행을 시작한 지 9일째 되는 날, 급격하게 바뀐 날씨와 시간 탓에 자꾸만 무거워지는 몸을 쉬게 한다. 마가단(그리니치 표준시 +11)부터 칼리닌그라드(그리니치 표준시 +2)까지 9개의 시간대를 건너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깨기를 반복하더니 지난밤은 그나마 나아졌다.

레닌 광장의 망중한 

점심때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나와 레닌 광장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인근 아지머스(Azimuth) 호텔의 와이파이 신호가 강해서 공원까지 너끈히 도달한다. 공원을 오가는 시민들을 구경거리 삼아 망중한을 즐긴다. 서울 도시 생활에서는 감히 맛볼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세 시간이 훌쩍 흐른다. 항공기는 1시간 40분 걸려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Pulkovo) 공항에 도착한다. 러시아 변방과 극지를 돌다가 인구 500만 명 대도시 익명의 공간에 묻혀 버리니 차라리 마음 편해진다.

▲그리스도 부활 교회, 일명 피의 사원이다. 너무나 화려한 모습 때문에 교회가 이 자리에 건립된 아픈 사연을 잠시 잊게 한다. 사진 = 김현주

▲피터폴 대성당. 피터폴 대성당의 122m 높이 첨탑은 도시 전역에서 보이는 명소다. 사진 = 김현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 발트 해와 네바(Neva, 핀란드어로 ‘늪’이라는 뜻) 강 변에 건설된 수변도시, 북방의 베니스, 네오클래식 거리와 멋진 건축물, 사통팔달 운하와 그 위에 걸린 바로크 장식의 다리 등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다. 이 도시는 내가 세계 여행을 시작한 초기인 2011년 여름에 처음 방문한 후 5년 만에 다시 찾는 것이니 감개무량하다. 세계 여행을 하며 감각이 쌓였고, 여행지를 감상하는 안목도 높아졌을 테니 두 번째 방문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긴다. 

페트로그라드 vs 레닌그라드 vs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표트르 대제가 건설을 시작해 9년 대역사 끝에 1712년 완공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왔다. 푸시킨이 ‘유럽을 향한 창’이라고 표현했듯이 유럽의 문화와 예술, 과학기술, 그리고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온 곳이다. 이 도시를 빼놓고는 러시아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곳 아닌가? 소비에트 시절에는 페트로그라드(Petrograd)에서 레닌그라드(Leningrad)로 이름이 깎이고 모스크바의 그늘에 놓였다가 소비에트 해체 이후 지금 이름으로 바뀌고 도시는 성장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예약해 놓은 시내 숙소로 이동을 시작한다. 메트로 역의 멋진 장식물 덕분에 지하 공간 이동이 상쾌하다.


10일차 (상트페테르부르크)

피터폴 요새 

새벽부터 도시 탐방을 시작해 긴 하루를 확보한다. 애드미럴티(Admiralty, 해군성) 메트로 역에서 내려 강을 건너는 사이 메트로 역 장식물 하나, 다리 하나, 가로등 하나, 건물 기둥 하나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며 피터폴(페트로파블로프스크, Petropavalovsk) 요새를 찾아간다. 표트르 대제가 네바 강 하구 델타(삼각주)에 서쪽의 숙적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 1703년 구축했다. 표트르 대제 이후 모든 러시아 황제(차르, Czar)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중반부터는 감옥까지 함께 수용했으니 가히 철옹성임이 틀림없다. 피터폴 대성당의 122m 높이 첨탑은 도시 전역에서 보이는 명소다. 네바 강 건너 겨울 궁전이 일렬로 수백 미터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퍼부으니 겨울 궁전은 차라리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예르미타시 미술관 입장을 위한 줄. 왁자지껄한 중국 관광객들에게 떠밀려 다니느라 이 멋진 예르미타시의 기억이 반감되고 말았다. 사진 = 김현주

▲운하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니스라고도 불린다. 사진 = 김현주

세계 3대 박물관 예르미타시 

강을 건너 겨울 궁전을 향해 걷는다. 강변을 따라 230m가량 뻗어있는 로코코 양식의 건물들은 지붕에 170개의 조각상까지 얹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겨울 궁전 안에 입주해 있는 예르미타시(Hermitage) 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 영국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힌다. 6개의 건물에 걸쳐 300만 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유럽 예술품들이 대부분이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심지어 이집트 전시실까지 있으니 그 방대함을 짐작할 만하다. 예카테리나 2세 때 유럽에서 사 들여온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이 이제는 이 나라의 보물이 되었다. 

역사의 현장, 궁전 광장 

겨울 궁전 앞 궁전 광장(Palace Square)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적 공간이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비롯해 소비에트 시절에는 각종 정치 집회가 수시로 열렸던 곳이다. 광장 북쪽은 겨울 궁전, 남쪽은 나르바(Narva) 개선 아치를 얹은 구 참모본부가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알렉산더 1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니콜라스 1세의 명령으로 1834년 건립한 47.5m 높이의 알렉산더 칼럼(기둥)이 있다. 이 도시가 ‘open museum’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실감한다. 우리에게는 닥터 지바고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를 통해서도 보았던 바로 그 광장에 다시 서니 감개무량하다.

빛바랜 예르미타시 관람 

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입장한다. 세계 각국 언어가 모두 들리는 것 같다. 전시물도 훌륭하지만, 전시실 또한 구석구석 빈틈없이 화려하니 그저 놀랄 뿐이다. 때로는 운하를 내려다보며, 때로는 네바 강과 그 건너 피터폴 요새를 바라보며 전시물들을 감상한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는 내 체력이 안타깝다. 미술, 조각, 공예, 의상… 그중에는 그리스·로마 조형물과 고대 이집트 유물까지 있다. 요즘 세계 어디를 가도 그렇지만 이곳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매우 많다. 관람객의 거의 절반은 중국인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닐 듯하다. 박물관을 관람한 게 아니라 중국인들을 구경했다고 하는 게 나을 지경이다. 왁자지껄한 그들에 떠밀려 다니느라 이 멋진 예르미타시의 기억이 반감되고 말았다. 

▲궁전 광장은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비롯해 소비에트 시절에는 각종 정치 집회가 수시로 열렸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눈길 사로잡는 성이삭 성당 

예르미타시에서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예술 아카데미 등 멋진 건물들을 보며 성이삭 성당(St. Isaac Cathedral)으로 향하는 길. 해군성(Admiralty) 건물이 압도한다. 이쯤에서 알렉산더 가든(Alexander Garden)을 지나면 곧 성이삭 성당이다. 1818년 짓기 시작해 완성까지 40년 동안 40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제정 러시아 시대 황제들의 위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성당은 그 규모가 매우 커서 자꾸만 뒷걸음쳐도 좀처럼 카메라 한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도시 전경이 들어온다. 밤에 보면 더 멋있을 것 같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높이 101m, 제정 러시아 시대 건축물 중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다. 성당 지붕 원형 돔 건설에 100kg의 금을 사용했다는 설명도 전설처럼 들린다. 성당 앞 광장에는 청동 기마 상과 국회 건물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지만 이미 성이삭 성당에 빼앗겨 버린 눈길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운하 따라 걷기와 넵스키 대로

이 도시의 여름을 즐기는 가장 멋진 방법 중 하나는 운하를 따라 걷는 것이다. 그물망으로 도시를 연결해 놓은 운하 덕분에 ‘북방의 베니스’라는 칭호가 손색이 없다. 도시의 수백, 수천 개의 건물이 모두 저마다 개성과 특색이 있어 보이다. 운하를 따라 걷다 보니 곧 넵스키 대로(Nevsky Prospekt)를 만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길은 넵스키에서 만난다. 북쪽 끝 해군성에서 남쪽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까지 4.5km 뻗은 넵스키 대로를 따라 수많은 호텔과 식당, 카페와 상점 등 모든 시설이 모여 있다. 길을 걷는 사이 여러 개의 운하를 건너는데 거리 자체가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일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하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카잔 성당

넵스키 대로변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멋진 것은 카잔 성당(Our Lady of Kazan Cathedral)이다. 1801년부터 10년 걸려 완성했다. 성당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석고 대리석 94개를 이어서 성당 주위를 둘러싼 코린트(네오클래식) 양식의 기둥들이다. 실내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카잔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1812-1813)에서 승리했는데 그때 프랑스로부터 빼앗은 군기(軍旗) 등이 걸려있다. 나폴레옹 전쟁 승리의 영웅 쿠투초프(Kutuzov) 장군의 장례식이 여기서 거행됐고 그의 무덤 또한 여기에 있다. 

▲성이삭 성당. 높이 101m, 제정 러시아 시대 건축물 중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다. 사진 = 김현주

▲넵스키 대로 변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멋진 것은 카잔 성당이다. 사진 = 김현주

아름다움의 극치, 피의 사원

카잔 성당에서 넵스키 대로 건너편 멀리 야릇하고도 아름다운 교회가 눈길을 사고 잡는다. 그리스도 부활 교회(일명 피의 사원, Church of the Savior on Spilled Blood)는 개혁주의 황제 알렉산더 2세가 폭탄 테러로 시해당한(1882) 자리에 세워졌는데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 모자이크 장식이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다. 너무나 화려한 모습 때문에 교회가 이 자리에 건립된 아픈 사연을 잠시 잊게 한다. 개혁주의 황제가 세상을 떠난 곳이어서 그런지 교회 주변은 낭만과 표현의 공간이다. 거리 악사, 거리 예술가들이 솜씨를 뽐내며 자신을 주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예르미타시 vs 러시아 박물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교회에서 가까운 러시아 박물관이다. 1825년 알렉산더 1세의 동생 미하일을 위해 건립된 미하일롭스키 궁전에 들어선 박물관이다.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곳은 예르미타시와 달리 고대부터 현대까지 순전히 러시아 예술가들의 작품만 30만 점이 소장됐다. 20세기 회화 섹션에 전시된 전쟁화, 혁명화가 눈길을 끌고, 류블료프(Andrey Rublyov)를 비롯한 러시아 작가들의 성화(聖畵)도 오랫동안 발길을 붙잡는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등 입체파, 구성주의, 미래주의 등 러시아 현대 화가들의 작품도 이 박물관의 볼거리다. 전 세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예르미타시의 혼란과는 달리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걸작 예술품들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관람을 마치고 운하를 따라 숙소까지 걷는다. 족히 4∼5km 거리는 될 듯싶지만 눈 깜짝할 새 숙소에 와버렸다. 오늘 새벽부터 저녁까지 거의 12시간, 이 도시를 섭렵했으나 감동과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찬 나의 가슴 덕분에 피곤한 줄 모르겠다. 

(윤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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