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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드로잉으로 느끼는 존 버거의 예술 세계

열화당,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 온그라운드 갤러리서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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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7.03.29 08:53:08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110쪽. 클레마티스의 텍스트.

“제겐 아직도 어려운 글쓰기와 달리, 드로잉은 하면 할수록 조금씩 쉬워집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래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귀가 먹먹해지고 새로운 생각들이 잘 들리지 않으면,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드로잉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아주 귀한 방법입니다. 이야기를 쓰는 것(storytelling)과 다르지 않죠.” 
                                                                      - 2011년 ‘벤투의 스케치북’을 낸 존 버거의 당시 인터뷰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로 알려진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 그의 글뿐 아니라 드로잉을 통해 그를 추억하는 자리가 열리고 있다.


2004년부터 존 버거의 책을 꾸준히 출간해 온 열화당이 그의 오리지널 드로잉 60여 점을 중심으로 작은 전시를 마련했다. 원래 이 전시는 지난해 11월 그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열릴 계획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올 봄으로 미뤄졌었다.


▲벤투의 스케치북 26쪽. ‘시작은 이랬다.’

이 가운데 1월 2일 존 버거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며 추모의 의미를 전시에 함께 담게 됐다. 존 버거가 평생 동안 함께하고 탐구해 온 ‘드로잉’에 대한 생각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제다. 전시에 맞춰 존 버거의 마지막 에세이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Confabulations)’와 그의 평생의 동지였던 사진가 장 모르(Jean Mohr)가 50년 동안 찍은 존 버거의 초상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John by Jean)’이 함께 출간됐다.


존 버거는 1950년대 초, 화가이기를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시 핵전쟁의 위기에 대응하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인쇄매체와 글이 더 빠르고 적합하다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이후에도 결코 드로잉만은 멈추지 않았다.


드로잉에 대한 애정은 존 버거가 1953년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에 기고한 ‘드로잉은 발견이다(Drawing is Discovery)’라는 글에서도 드러난다. 존 버거는 “드로잉은 어떤 사건을 발견해 가는 자전적인 기록이다. 직접 보는 것이든, 기억에 의존한 것이든, 상상한 것이든 말이다”라며, 드로잉이 다른 시각예술과 다른 점을 짚었다.


▲벤투의 스케치북 115쪽. ‘붓꽃.’

드로잉은 간략하고 즉각적인, 무엇보다 아주 사적인 작업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과 소통하기 위해서 한다. 드로잉 앞에서 우리는 그림 자체보다는 그것을 그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화가의 눈이 지나간 자리와 경험을 따라가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일반인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대표작보다 드로잉을 더 좋아하는 경향도 있다.


존 버거 또한 자신의 에세이와 소설 속에 직접 그린 드로잉을 자주 삽입하곤 했다. ‘A가 X에게’에서 아이다는 감옥에 갇힌 사비에르에게 자신의 손 그림을 편지에 그려 보내고, ‘벤투의 스케치북’에서는 스피노자의 눈을 빌려 그림을 그렸다. 베벌리를 위해 쓴 ‘아내의 빈 방’과 그의 마지막 에세이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글과 그림은 동등한 텍스트로서 함께 흐른다.


열화당 측은 “60여 년 전, 커다란 캔버스와 유화물감이 가득한 아틀리에를 떠나, 가벼운 스케치북과 목탄을 챙겨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간 존 버거에게 드로잉은 지도를 읽는 행위였고,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근원적인 언어였다”며 “드로잉은 우리의 빈약한 어휘의 한켠을 메워 주는 또 다른 언어”라고 밝혔다.


▲열화당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왼쪽)와 ‘존 버거의 초상’.

이번 전시 ‘존 버거의 스케치북’은 드로잉에 대한 그의 오랜 생각들을 그의 그림과 글을 통해 따라가 본다. 존 버거의 아들 이브 버거의 협조로, 존 버거의 다양한 드로잉이 한국 땅을 밟았다.


오리지널 드로잉 60여 점을 책 속 글귀들과 함께 펼쳐 보인다. ‘벤투의 스케치북’에 수록된 그림 38점,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중 ‘망각에 저항하는 법’에 실린 8점의 그림과 친필 원고, 그리고 그의 아내 베벌리에게 바쳤던 아름다운 드로잉 11점, 드로잉 노트 1권으로 구성된다. 10여 년 동안 열화당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보내온 드로잉과 선물들도 함께한다.


존 버거의 죽음을 맞아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국내외 여러 사람들의 글을 모아 추모의 자리를 한켠에 마련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유족이 보내온 장례식 사진과 기록들 일부도 전시장에 소개된다.


열화당 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말 걸기, 눈길을 따라 손끝에서 탄생한 외양의 텍스트,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된 그 언어에 각자의 상상력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4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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