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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 성지순례 ②] 40년 전 출발 은하철도 999, 아직도 어둠 헤치고 달리는 중

마츠모토 레이지 "시간은 꿈 배신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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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9호 김금영⁄ 2017.04.03 11:01:17

전시부터 카페, 페어 등 다양한 키덜트(kidult, 아이를 뜻하는 kid와 성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 성지들을 찾아가 그곳의 특징을 짚어보는 ‘키덜트 성지순례’ 두 번째 장소는 ‘은하철도 999’ 의 전시 현장이다.


▲'레이지 가족' 작품. 마츠모토 레이지의 대표 캐릭터들이 모두 모였다.(사진=실버트레인)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08년 만화 ‘심슨’의 한 장면.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아이팟 열풍이 불 때였다. 만화에 아이팟이 이어폰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모습이 나왔다. 기계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한 장면에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8년 뒤 이 풍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됐다. 2016년 3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 실력자 이세돌이 바둑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4대 1로 알파고의 승리.


발달된 기계 문명은 삶을 윤택하게 해줬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엔 늘 불안감이 자리한다.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반대로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최첨단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고,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와중에 기계와 같은 완전무결한 삶도 동시에 꿈꾼다. 모순적이다. 이런 불안감과 혼란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졌다. 영화 ‘매트릭스’를 비롯해 ‘터미네이터’ ‘트랜스포머’ 그리고 최근 스칼렛 요한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공각기동대’까지 인간과 기계문명 사이의 대결과 갈등, 그리고 둘 사이의 모호해진 경계를 그려왔다.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 999'전의 입구. 마츠모토 레이지의 라이브 페인팅 영상이 전시장에 흐른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런데 무려 40년 전에 이 이야기를 꺼낸 작품이 있다. SF만화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은하철도 999’의 배경은 서기 2221년이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항상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슬픈 눈빛, 그리고 허리를 훨씬 내려오는 찰랑찰랑 윤기 나는 금발, 가녀린 몸매의 메텔, 그리고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망토를 둘렀으며 눈빛에 신념이 가득한 철이가 은하철도 999에 탔다.


기계 백작에게 죽음을 당한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소년 철이는 기계인간이 돼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여기에 메텔이 조력자로 동참한다. 종점 역인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은하철도 999는 중간 중간 여러 행성에 정착한다. 그리고 각 행성에서 메텔과 철이는 다양한 존재들과 마주한다. 거대한 자연이 숨 쉬는 행성도 있었고, 황폐화가 된 행성도 있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낀 철이는 완전무결한 영생 그리고 유한하고 깨질 듯 연약하지만 인간다운 삶 사이에서 점차 고민하게 된다. 가볍지만은 않은 철이의 고민은 은하철도 999가 단순 만화를 넘어서 철학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됐고, 현 시대의 사태를 일찌감치 앞서서 예상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마츠모토 레이지 작업의 기초를 이룬 '사나이 오이동'. 가난한 청년의 열정과 소탈한 삶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로, 이 작품은 특히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만화는 아홉 살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마츠모토 레이지의 손에서 탄생됐다. 그는 1977년 '소년 킹(King)' 잡지에 은하철도 999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1978년엔 TV 애니메이션이 방영됐고, 애니메이션 또한 히트를 쳤다. 국내에도 1982년 첫 방영을 시작으로, 1996년, 2003년, 2008년 총 네 차례 방영됐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아이들은 TV 앞에 몰려들었다.


작가의 숨결 담긴 ‘은하철도 999’ 직필 원고 최초 공개


▲'은하철도 999' 40주년 기념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츠모토 레이지가 그의 대표 캐릭터인 철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사진=실버트레인)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이 노래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5월 1일까지 열리는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 999’전 현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은하철도 999 40주년을 맞아 실버트레인이 기획했다. 은하철도 999를 기억하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사람들은 전시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전시를 위해 3월 26일 한국을 방문한 마츠모토 레이지는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었다”며 “한국인 친구도 많았고, 전쟁 시절 배고플 때 한국인 친구 한 명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기도 했다. 친절한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도 부모님에게 많이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뜻 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은하철도 999'전에는 일본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직필 원고가 전시된다.(사진=실버트레인)

전시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는 연대기와, 그의 라이브 페인팅 영상으로 시작된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성장 과정 중 만화 ‘우주소년 아톰’으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와의 인연도 발견된다. 폭발적인 작업량에 허덕이면서 마감이 하기 싫어 도망(?)갔던 데즈카 오사무의 마감을 돕기 위해 하룻밤 철야 어시스트 작업을 한 에피소드는 웃음과 함께 만화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끼게 한다. 또한 마츠모토의 또 다른 대표작인 ‘우주전함 야마토’의 주인공 스스무의 실제 모델이 그의 동생이었음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츠모토 작업의 기초를 이룬 ‘사나이 오이동’의 탄생 과정도 볼 수 있다. 마츠모토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도 밝힌 남자 주인공이 눈길을 끈다. 가난한 청년의 열정과 소탈한 삶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로, 이 작품은 특히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유럽에서 더 인기를 끈 ‘우주해적 캡틴 하록’ ‘에메랄다스’ ‘천년여왕’ 등 마츠모토의 대표작들이 전시장에 모두 모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건 은하철도 999의 직필 원고 및 대표작들의 TV와 영화 애니메이션용 셀화를 볼 수 있다는 것. 디지털 작업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만화는 펜을 잡은 작가의 손에서 직접 탄생됐다. 애니메이션 또한 단 1초를 위해서 평균 24장의 그림이 그려져야 했다. 작가의 숨결이 담긴 미세한 선 터치 하나하나가 오롯이 주는 감동을 이번 전시에서 느낄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과 관련된 피규어, 조형물이 함께 전시된다. '은하철도 999'의 모형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또한 마츠모토의 소장품인 원화도 함께 전시된다. 수채화를 비롯해 아크릴, 혼합 매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진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장을 채운다. 따라서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장면들도 탄생했다. 메텔과 그의 언니인 에메랄다스가 함께 서서 석양을 바라보는 작품은 특히 장관이다. 여신으로 불리는 메텔과 요즘 말로 하자면 '걸크러시' 매력을 내뿜는 에메랄다스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밖에 캐릭터 피규어, 마츠모토의 초판 출판물, 프랑스의 전자음악 듀오 다프크 펑크와의 컬래버레이션 뮤직비디오 영상도 전시된다.


실버트레인 측은 “이번 전시는 특히 은하철도 999의 직필 원고, 작가 소장품 원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단순 캐릭터 모형이나, 애니메이션의 복사본을 프린트해 보여주는 전시는 흔하다. 반면 이번 전시는 은하철도 999를 비롯해 우주전함 야마토, 천년여왕 등 대표작뿐 아니라 스토리보드 등 작품 탄생 과정의 현장을 직접 보여주면서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업 세계에 진중하게 집중하려 했다”고 밝혔다.


어렸을 때 그리고, 커서 다시 만난 메텔과 철이


▲'은하철도 999'의 작품 드로잉. 과거 만화는 펜을 잡은 작가의 손에서 직접 탄생됐다.(사진=실버트레인)

어렸을 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봤던 만화를 다시금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어른이 돼서 다시 마주한 은하철도 999는 뭔가 느낌이 색다르다. 실버트레인 측은 “은하철도 999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은 전시를 통해 다시금 기억을 되새기고, 작품을 지금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메텔이 왜 슬픈 눈빛을 가졌는지, 소년 철이의 성장과 고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된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작품과의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마츠모토의 작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 일찌감치 인간성의 회복을 이야기한 작업에 감탄한다”고 밝혔다.


마츠모토는 기계인간뿐 아니라 방사능 등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작품에서 드러낸 바 있다. 1970년대 선보인 우주전함 야마토에서는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구하고자 아스칸달의 유일한 생존자 스타샤를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졌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했고, 환경오염에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다. 이쯤 되면 시대를 앞서 가는 눈을 가졌다 할 수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초판 출판물이 전시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미래를 읽은 눈으로 마츠모토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동일하다. 환경오염과 기계인간 이야기 모두를 잘 살펴보면 중심엔 고민하는 인간이 있다. 결국 인간다운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성찰이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츠모토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원한 생명을 갖고 싶지 않습니까?”


만화 속 기계인간이 되고 싶다는 철이의 꿈은 당시대엔 마치 꿈 같이 느껴지는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발달된 과학 기술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다양한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이 질문은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됐다. 이 가운데 마츠모토 레이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한하기에 더욱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이다. 실수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꿈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만화 속에서 결국 기계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철이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우리는 한정된 삶 덕분에 가치 있게 살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감정이 없는 기계는 할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어려워진 환경에 살기 힘들어 '노력해도 꿈은 절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시간은 꿈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저는 말하고 싶어요. 대신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꼭 해야 하죠. 그래서 꿈도 시간을 배신해선 안 되고요.”


▲전시장 시작과 끝엔 '뜻 지(志)'와 '꿈 몽(夢)' 서예가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직접 쓴 글씨로, "뜻을 가지고 살면서 꿈을 지켜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마츠모토의 본래 꿈은 기계 공학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찢어질 듯한 가난에 꿈을 위한 공부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꿈을 향해 나아갔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만화에서 그는 은하계를 자유롭게 떠도는 은하철도 999를 만들었고, 우주전함 야마토, 우주해적 캡틴하록 등을 통해 작품 속에서 우주선을 타고 비행했다. 결국 꿈을 이룬 셈이다.


직필 원고를 공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버트레인 측은 “일본에서도 공개된 적이 없는 작가의 직필 원고가 이번 전시에서 100여 점 공개된다. 직필 원고는 작가의 작품 과정과 스타일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자료”라며 “마츠모토는 미래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만화가가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직필 원고 공개를 결정했다. 결국 꿈을 심어주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의 처음과 끝에 눈길을 끄는 서예 작품이 있다. 뜻 지(志)와 꿈 몽(夢).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직접 쓴 글씨다. “뜻을 가지고 살면서 꿈을 지켜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마츠모토 레이지 또한 “계속 꿈을 따라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은하철도 999는 아직 종결되지 않고 일본에서 출간되고 있다. 마츠모토는 “꿈을 찾아 여행하는 메텔과 철이처럼 나도 영원한 여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가면 더 좋은 키덜트 성지순례 키워드]


① 라이팅 보드로 만화 그려보는 체험 공간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전시장 한켠에 마련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한켠에 마츠모토 레이지의 대표 작품들을 직접 따라 그릴 수 있는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라이팅 보드 위에 종이를 올려놓으면 메텔, 에메랄다스 등의 그림이 보인다. 보이는 그림의 선을 따라 그리면 어느덧 그림이 완성된다.


② 신비스런 메텔의 실제 모델


▲'은하철도 999'의 신비로운 여주인공 메텔의 실제 모델에 관한 이야기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사진=실버트레인)

마치 이 세상사람 같지 않은 신비스러운 메텔의 존재. 호기심을 자극한 메텔의 실제 모델이 있었음을 이번 전시에서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두 명의 여성이 언급되고, 실제 사진도 함께 붙어 있어 메텔과 비교해볼 수 있다. 한 명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조상이고, 다른 한 명은 유명 배우다. 또 마츠모토 레이지의 이상형으로 그려진 작품 속 인물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③ 마츠모토의 가장 근작인 라이브 페인팅


▲마츠모토 레이지가 3월 26일 전시장을 방문해 라이브 페인팅을 펼쳤다.(사진=실버트레인)

마츠모토 레이지는 3월 26일 전시장을 방문해 직접 라이브 페인팅을 펼쳤다. 메텔과 우주해적 캡틴하록을 그렸는데, 두 작품 모두 전시장에 걸려 생동감을 더한다. 이밖에 이번 전시를 위해 2017년 새롭게 그린 원화도 있다. 이 원화엔 “시간은 꿈을 배신하지 않는다. 꿈도 시간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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