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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비와 묘지명 통해 읽는 죽음 이야기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 기증 고려 금석문전 ‘죽음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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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0호 김금영⁄ 2017.04.07 09:36:47

▲'죽음을 노래하다'전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층 상설전시실 일부. 한국 서예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고·중세(古·中世) 비와 묘지명을 바탕으로 죽음을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전시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세상은 짧지만 만 년은 길다 했으니 부인을 두고 말한 것인가. 이 그윽한 곳으로 옮겨 좋은 땅에 모셨으니 몸은 비록 죽었어도 명성은 끝없이 전해지리라.”
- 남원군부인 양씨 묘지


고려시대 김공칭 처 양씨의 묘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혔다. 세상 살 땐 성별과 나이부터 삶의 방식 등 여러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죽음은 모두의 앞에 평등하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이 ‘죽음을 노래하다’전을 열며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특히 한국 서예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고·중세(古 ·中世) 비와 묘지명(墓誌銘: 묘지에 기록한 글)을 통해 죽음과 더불어 서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살핀다.


▲사신도가 새겨진 채색사신도석관이 전시된 모습. 토지주택박물관 소장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를 위해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이 도움을 줬다. 이 회장은 2011년 예술의전당에 금석문 탁본(拓本: 나무나 금석 등에 새긴 문자와 부조를 원형 그대로 종이에 뜬 것) 유물 30건 74점, 조선시대 묵적 44건 54점 등 총 74건 128점을 예술의전당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특히 이 유물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고고학자로, 임나일본부설 등 한국 역사 왜곡에 앞장섰던 오가와 게이기치(1882~1950) 주도로 채탁(採拓: 탁본을 뜸)돼 일본으로 반출됐던 것들이다. 이 회장은 이 유물들을 조선총독부 후손들로부터 환수해 오기 위해 사재를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유물들은 1994년 문화재연구소에서 편찬한 ‘오가와 게이기치 조사 문화재 자료집’에 수록되기도 했다.


▲성덕대왕신종 탁본. 비천상 문양이 눈에 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회장은 기증 이유에 대해 당시 “현대미술이 서예에 큰 빚을 지고 있는데, 이번 기증을 통해 그 빚을 조금이라고 갚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증사를 통해 그는 “현대미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서예야말로 모든 예술의 토대라고 늘 생각해 왔다. 1986년 고암 이응노 선생을 뵀을 때 본인의 추상 작품은 모든 것이 서예에서 나온 것이라며 작품을 직접 시연해 주기도 했다. 그 이후 서예 작품을 틈틈이 모으게 됐다”며 서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이 회장은 “고암 선생의 단적인 예에서 보듯 한국 미술의 정체성이나 세계화 문제도 서예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현실은 중국, 일본과 달리 서예를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짚으며 “2011년 서예박물관에 기증한 유물도 마찬가지 경우다. 우리가 금석문 탁본 자료와 고서화의 중요성을 미처 주목하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 서예 역사를 살피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본으로 반출된 금석문 일괄을 그 후손에게 환수해올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감회를 밝히며 “좀 더 적극적으로 기증품을 연구, 전시해 미술인과 일반 대중에게 우리 서예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예술의전당도 힘써 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를 건넸다.


사후의 안녕을 빌며 삶을 되돌아보다


▲신도석관(四神圖石棺) 탁본 비천상.(사진=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이 회장이 기증한 유물을 비롯해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소장품, 국립경주박물관 소재, 개성 현화사 소재 물품 등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석관과 문양이다. 고려시대 석관과 탁본뿐 아니라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성덕대왕신종명 탁본이 전시된다. 유골을 안치하는 데 사용된 석관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무덤이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건 사신도(四神圖: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신령화 된 동물을 담은 그림), 비천문(飛天紋: 하늘에 떠 있다는 선인을 나타낸 장식무늬)을 통해 읽히는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채색 사신도 석관의 경우 석관의 바깥 동서남북 방향에 각각 사신도가 새겨졌고,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 죽은 후에도 사신의 수호를 받고자 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비천문은 화려한 가운데 기품이 있다. 하늘에서 노니는 선인들의 모습을 통해 사후의 안녕을 빌며, 극락세계를 꿈꿨던 사람들의 염원을 알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에서도 “하늘에 천문이 걸리고 대지에 방위가 열렸으며, 산과 물이 나란히 자리 잡고 천하가 나뉘어 뻗쳤다”는 글이 새겨졌다.


▲사신도석관(四神圖石棺) 탁본. 사신 중 백호가 새겨져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첫 번째 섹션이 석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두 번째 섹션은 고려시대 선사들의 탑비(塔碑: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와 고려인의 묘지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사대부뿐 아니라 여성과 승려들의 묘지명까지 다양하게 남겨졌다. 요즘엔 장례 절차가 간소화되는 것이 추세라, 묘비를 세우는 행위도 많이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예박물관에서 되살아난 묘지명이 눈길을 끈다.


김학명 학예사는 “선사탑비는 장중한 서체와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 엄격한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 묘지명은 보다 자유로운 서체와 내용을 통해 고려인들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학예사는 “이 유물들을 통해 고려인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묘지명을 남기는 행위는 유교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지만, 죽음에 있어서는 불교와 도교, 유교 세 종교를 넘나들면서 떠난 사람을 기리고 그 사람의 업적을 되돌아보며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은 것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현화사비 탁본.(사진=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여기에서는 특히 죽은 이의 삶을 되돌아보는 글이 많아 눈길을 끈다. 생전에 어떤 업적을 세웠고,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마치 문학처럼 시적인 문구도 곁들여 적혀 있다. 김학명 학예사는 “죽음 앞에서 도리어 삶의 모습을 확인하는 태도가 발견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3층 상설전시실에서 6월 18일까지 열린다.


한편 전시 기간 중 특별 강연이 함께 펼쳐지며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4월 15일 김용선 한림대 명예교수가 ‘고려시대의 묘지명 문화’를 주제로 강의의 문을 연다. 이어 책 ‘존엄한 죽음’을 펴낸 최철주 작가가 ‘웰빙 속에서 헤매는 웰다잉’을 주제로 존엄사에 관한 이야기를 4월 29일 펼친다. 영화 ‘목숨’(2014)을 연출한 영화감독 이창재 중앙대 교수는 ‘현대인의 죽음 맞이’를 통해 현대인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5월 13일 담화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27년 동안 ‘한국서예사특별전’을 30여 차례 기획해 온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가 이호재 회장의 기증품 중 선사탑비와 부도를 가지고 글씨에 새겨진 스님들의 죽음 이후 세계를 다루는 ‘죽음 이후 - 선사(禪師) 탑비를 중심으로’ 강의를 6월 10일 연다. 강의는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화려한 문양이 인상적인 성덕대왕신종명 탁본.(사진=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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