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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몰도바] 일본인 남자에게 말거는 몰도바 여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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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3-53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2017.05.01 09:47:2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18일차 (오데사 → 몰도바 키시너우)

흑해 해변을 밟다

오늘 점심 무렵 몰도바행 버스 승차까지는 오전 시간이 온전히 남는다. 좁고 답답한 숙소에서 그때까지 있을 수 없어서 이른 새벽 해변 산책에 나선다. 새벽 6시, 역 앞은 도착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이미 혼잡하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장거리 이동 수단인 열차는 24시간 쉼 없이 다닌다. 

트램과 트롤리도 많은 사람을 싣고 오간다. 역 광장에서 이탈리아 거리를 따라 해 뜨는 동쪽으로 15분쯤 걸으니 해변 입구다. 그 유명한 흑해 해변을 드디어 만난 것이다. 오데사 유명 해변 중 하나인 오트라다(Otrada) 해변이다.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북쪽에서 며칠씩 걸려 열차로 찾아왔던 따뜻한 남쪽 바다, 바로 그곳이다. 해변에는 고급 아파트와 호텔, 리조트가 즐비하게 서 있다. 물은 아주 맑고 모래는 아주 고와서 아예 밀가루라고 하는 게 맞겠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흑해 해변의 진수를 한참 맛보고 숙소로 돌아와 버스 터미널로 나간다. 낮 12시 조금 넘은 시각, 이 도시, 이 나라를 떠나려니 마음이 짠해진다. 이번 여행 중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그 유명한 오데사의 흑해 해변을 드디어 만났다. 물은 아주 맑고 모래는 아주 고와서 아예 밀가루라고 하는 게 맞겠다. 사진 = 김현주

전원 국가 몰도바

버스는 우크라이나 출경, 몰도바 입경 절차를 거쳐 세 시간 후 몰도바(Moldova) 땅을 밟는다. 끝없이 평지가 펼쳐지던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몰도바는 오르락내리락 구릉으로 이어진다. 구릉이라고 해봤자 300~400미터를 넘지 않는다. 몰도바는 예쁜 전원 국가임을 확인한다.

몰도바 와인을 산출하는 거대한 포도밭도 무수히 지난다. 수도 키시너우(Chisinau) 북부 터미널에 닿으니 오후 5시가 조금 지났다. 오데사에서 5시간 걸렸다. 원래는 가까운 길이지만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사이에 쐐기처럼 박힌 분쟁 지역 트란스니스트라(Transnistra)를 우회하느라고 먼 길을 돌아왔기 때문이다.

시련 많은 몰도바 역사

몰도바는 남쪽으로는 루마니아, 동쪽과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 사이에 낀 인구 291만 명, 남한 면적 1/3의 작은 내륙국이다. 지정학적으로 라틴, 슬라브, 그리고 오토만 등 여러 문화의 교차로에 있었던 만큼 역사의 시련 또한 많았던 나라다. 2세기 로마인이 건너와 정착했고 로망스어 계열인 루마니아어를 사용한다. 그런 연고로 20세기 초에는 잠시 루마니아와 한 나라를 이루기도 했으나 1940년 소비에트가 간섭하여 루마니아에서 분리해냈다.

1944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됐고 곧 많은 반체제 몰도바인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추방됐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루마니아와 철저히 분리하기 위해 라틴문자 대신 러시아 키릴문자로 표기하도록 강제했다. 1989년 가서 라틴문자를 회복했고 1991년 소비에트 해체에 따라 독립을 얻었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소비에트 시절 산업화를 이루기도 했으나 독립 이후에는 이렇다 할 산업도 없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면치 못한다. 그런 이유로 몰도바 인구의 25%(60만∼100만 추산)가 해외 근로자로 나가서 보내오는 송금액이 국가 GDP의 38%를 차지한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Tajikistan)의 45%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중앙 정부가 은행을 통제하는 부패한 나라이지만 몰도바 와인만큼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크리코바(Cricova)에는 세계 최대, 총 길이 120km의 와인 셀러(wine cellar)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즐거운 댄스파티

시내 숙소를 찾아 여장을 풀고 가벼운 저녁 산책에 나선다. 우크라이나가 바로 옆에 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나라에 왔음을 분명히 느낀다. 언어와 인종이 모두 달라졌기 때문이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루마니아어(몰도바어)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합성한 것처럼 들린다. 시내에는 여자들이 유독 많다. 인구의 25%가 해외 근로자로 나가있기 때문인 것 같다. 광장에는 중-노년 남녀들이 짝을 이루어 댄스파티를 즐긴다. 가무를 즐기는 라틴 문화권에 들어와 있음을 확인한다.

▲오데사의 트램. 낡았지만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사진 = 김현주

▲오데사의 아름다운 항구. 사진 = 김현주

어수선한 도시

도시는 어수선하다. 인도는 모두 파헤쳐져서 걷기에 부담스럽고 주요 네거리 지하보도는 컴컴해 플래시라이트가 필요할 지경이다. 나뒹구는 술병, 거리의 취객, 동냥꾼들…. 구 소비에트 지역이 그랬듯이 흉측하게 방치된 대형 소비에트식 건물도 한두 개가 아니다. 거리 풍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여름 저녁 날씨만큼은 찬란하다. 어둠이 내린 거리를 조심조심 걸어 숙소로 돌아온다.


19일차 (키시너우)

작은 부쿠레시티, 키시너우

도시 탐방에 나선다. 인구 80만 명의 도시이지만 규모가 아담해서 걸어서 다니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숙소를 나와 스테판 셀 마레 거리(Stefan Cel Mare Boulevard)를 따라 서쪽으로 걷는다. 

주요 관공서들이 모여 있는 시원한 가로수길의 월요일 아침은 활기차다. 루마니아 부쿠레시티의 키셀레프 가로수 길과 닮았고, 어떤 의미로는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샹젤리제 거리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거리 끝 중앙 광장(또는 성당 광장, Parcul Catedralei)에 닿았다.

▲몰도바 거리에서 댄스파티가 펼쳐졌다. 가무를 즐기는 라틴 문화권에 들어와 있음을 확인한다. 사진 = 김현주

▲의사당 부근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세계대전과 소비에트의 확장, 시베리아 유형소, 독립 등의 주제를 다룬다. 사진 = 김현주

스테판 셀 마레

스테판 셀 마레 거리 끝에는 중앙 공원, 정부 청사, 그리고 개선문(Arc de Triumf)이 있고 정교회당이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퍼블릭 가든, 그리고 광장에는 스테판 셀 마레 기념비(동상)가 있다. 15세기 말 터키(오토만)를 비롯해 폴란드 등 외세의 침공을 막아내어 유럽의 칭송을 받은 이 나라의 영웅이다.

스테판 기념 동상 뒤로는 숲이 울창한 중앙 공원이 있다. 나라는 작아도 공원은 매우 넓고 또한 많다. 서울로 따지면 광화문이나 강남 삼성역 정도의 도심 한가운데 창덕궁만한 공원이 여럿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몰도바 여대생들을 만나다

의사당 부근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세계대전과 소비에트의 확장, 시베리아 유형소, 독립 등의 주제를 다룬다. 몰도바대학 근처에서 케이트 등 여대생 몇 명을 만나 반갑게 얘기를 나눈다. 그들이 먼저 인사해 오기에 알아보니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단다. 몰도바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여름 일본어 강좌에 가는 길이란다.

일본어 교육이 끝나면 대학과 연계해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비용으로 일본에 공부하러 갈 기회가 생긴다고 부풀어 있다. 일본에 오면 한국에도 들르라고 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소리 소문 안 나게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일본의 실리 외교 전략의 일면을 본다. 중국인 수천 명에게 한강 둔치 공원에서 치맥 파티를 열어주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법이다.

▲스테판 셀 마레 거리 끝에는 개선문(Arc de Triumf)이 있다. 사진 = 김현주

▲몰도바대학 근처에서 케이트 등 여대생 몇 명을 만났다. 몰도바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여름 일본어 강좌에 가는 길이란다. 사진 = 김현주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외국어를 할 줄 알아야 이 나라를 벗어날 기회가 생기고, 그래야 자신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학생들이다. 몰도바 여대생들이 자기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기에 아름답다고 했더니 의외로 멋쩍은 반응을 보인다. 몰도바는 너무 좁아서 답답하다고 한다. 맞는 얘기다. 대학가 주변에는 영어를 비롯한 주요 외국어 강좌 광고판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며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쉬엄쉬엄 다녔는데도 도시 탐방이 끝나 버린다.

몰도바까지 오게 된 사연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가 하염없이 모스크바행 항공기를 기다린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 원래는 몰도바까지 올 생각은 없었다. 키예프쯤에서 모스크바로 되돌아가 귀국길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그 흔하던 직항 노선이 모두 끊겨 버린 것이다. 다행히 옆 나라 몰도바와 모스크바 사이에는 항공기가 빈번하게 다니고 요금도 저렴하기에 몰도바로 우회하게 된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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