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5호 김금영⁄ 2017.05.12 09:19:43
아트토이. 아트(art)와 토이(toy)가 결합된 아트토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로 떠올랐다. 관련해 아트토이에 주목하는 대형 페어 ‘아트토이컬처’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아트토이컬처를 선보여 온 가나아트센터와 아트벤처스로부터 주목 작가를 추천 받아 소개하는 ‘아트토이 덕후’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초코사이다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석촌호수에 러버덕이 있었다면 아트토이컬처엔 ‘더쿠(DUCKOO)’가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서로 닿지 않는 짧은 팔다리에 조금만 건드려도 굴러갈 듯 통통한 몸매, 그리고 시크한 표정의 소유자인 더쿠는 오리 캐릭터다. 이름에도 오리를 뜻하는 ‘덕(duck)’이 담겼다. 어감 상 덕후라는 단어를 떠올리게도 한다. 덕후는 일본의 오타쿠에서 유래돼 한국식으로 재해석된 단어다. 과거엔 폐쇄적이고 중심에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이라는 의미가 컸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좋아하는 분야에 열정을 가진 사람’ ‘한 분야에 제대로 몰두하는 전문인’ 등 긍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게 됐다. 오리에 덕후까지, 더쿠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진 존재다.
일단 더쿠의 기본 캐릭터 설명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더쿠는 깔깔이만 입은 채 방바닥에서 뒹굴기를 좋아하는 오리다. ‘잉여’(할 일 없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도 쓰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문득 꽂히는 일이 있으면 기어코 해보고 마는 성격으로, '덕질'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덕질을 제대로 ‘잘’ 하진 못한다. 예컨대 멋있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안경을 쓰고 폼까지 잡았는데, 일을 제대로 못해 복사만 한다. 또는 자전거를 타려고 폼을 잡았는데 다리가 너무 짧아서 페달을 돌리지 못한다. 그런데 결코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표정은 더욱 시크해지고 도도한 매력까지 내뿜는다. 이 모습에서 허당미가 발산된다. 남다른 배짱에 사람들은 더욱 관심을 갖는다.
이 캐릭터는 본격적으로 제2회 아트토이컬처를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현장을 찾은 업계 관계자 및 키덜트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고, 기업들의 컬래버레이션 제안도 쏟아졌다. 올해 5월 3~7일 열린 제4회 아트토이컬처에도 참여해 이 관심을 입증했다. 부스는 더쿠를 보러 온 사람들로 연일 북적북적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더쿠를 탄생시킨 초코사이다 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초코사이다는 아트 디렉터 고동희, 콘텐츠 디렉터 조경식이 이끌어 간다. 대학생 때 만나 오랜 기간 동안 커플이었던 이들은 올해 초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람들이 이들을 만났을 때 가장 궁금해 하는 게 그룹명 초코사이다다. “각자 초콜릿과 사이다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지만, 실은 둘 다 안 좋아한단다. 초코사이다는 다른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아트 디렉터, 콘텐츠 디렉터 이렇게 각자 역할이 구분 지어져 있어요. 그런데 딱 경계를 지어버리는 게 아니라 콘텐츠 기획과 디자인, 이 사이의 경계에서 함께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그래서 조경식과 고동희 각자의 성을 따서 영어 스펠링으로 ‘초(Cho)’와 ‘코(Ko)’ 그리고 경계를 의미하는 어미인 ‘사이다’를 합쳐서 초코사이다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매번 설명하느라 애를 먹어요. 하하.”
초코사이다와 똑 닮은 더쿠의 탄생 과정
“해보고 싶은 일은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초코사이다가 만든 더쿠는 이들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더쿠 캐릭터 성격의 출발이 바로 이들에서 비롯됐다. 고동희 디렉터는 애니메이션 관련 회사, 조경식 디렉터는 광고 회사와 출판사를 다니다가 비슷한 시기 일을 관두게 됐다. 다시 회사원이 되는 선택지도 있었으나, 그보다 이들이 먼저 생각한 건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다. 그래서 무작정 2012년 9월 초코사이다 사업자를 등록했다. 당시 더쿠 캐릭터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들은 “너무 대책 없이 시작했다”고 초코사이다의 시작을 회상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아하는 일에 꽂히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더쿠의 성격이 바로 이들에게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콤플렉스를 지닌 동물 캐릭터 등 다양한 걸 생각하다가, 우리가 어떻게 재미를 느끼면서 작업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둘 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면 푹 빠지는 덕후 기질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리고 어감 상 ‘덕’이 들어가 있으니까 ‘오리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서로 깔깔 대며 이야기했죠. 서로 놀리는 걸 좋아하는데, 우스꽝스러워서 비웃을 수 있는, 하지만 정감 가는 캐릭터를 만들자고 했고 쓱쓱 그림을 그렸는데, 그게 바로 더쿠였어요. 초기 스케치와 지금 더쿠가 거의 비슷해요.”
이들은 자신들의 캐릭터 탄생 과정에 거창한 철학이 없다며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더쿠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담겼다. 바로 ‘공감’이다. 무엇 하나 잘하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은 너무 많은 더쿠는 현대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살펴보면 더쿠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네 가지 시리즈가 있다. 가장 먼저 빙(being) 더쿠가 탄생했다. 주로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깔깔이를 입고 뒹굴뒹굴하는 더쿠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유유자적하게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스위밍(swimming) 더쿠는 해양 다큐멘터리를 보고 물질에 꽂혀 해녀 할머니에게 물질을 배웠다는 콘셉트다. TV 드라마에서 한창 실장님, 워커홀릭 콘텐츠가 유행일 때는 워킹(working) 더쿠가 탄생했다. ‘미생’의 유명 대사인 “우리라고 했다”도 더쿠가 따라한다. 캠핑이 이슈였을 땐 추운 겨울 침낭 하나 들고 홀로 훌쩍 캠핑을 떠나는 캠핑(camping) 더쿠가 등장했다. 잘 살펴보면 더쿠 이름 앞에는 항상 ‘ing’가 붙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다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는 중이라서 그렇다.
“더쿠는 남들이 비웃더라도 자신의 행동 자체를 즐기는 데서 행복을 찾아요. 그래서 또 다른 것에 도전하죠. 한국은 주변의 시선이 자신의 마음보다 더 앞서는 사회예요. 그런데 그렇게 의식만 하고 움츠러들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남들에게는 소소하고 쓸데없어 보일지라도 스스로 즐거워서 뭔가를 하는 더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트토이와 대중 사이의 경계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
더쿠가 개발되고 나서 ‘과연 사람들이 좋아할까’ 고민도 됐지만 제2회 아트토이컬처에 참여했을 때 가능성을 느꼈다. 조촐한 부스 하나에 더쿠의 프로토 타입을 전시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구매 의사를 보였다. 카카오 메이커스 플랫폼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선보인 한정판 피규어 시리즈는 두 시간도 안 돼 매진돼 앙코르 판매까지 이어졌다. 올해 아트토이컬처에는 재미있는 전략도 취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인형 뽑기가 대세인지라 기계를 빌려 그 안에 더쿠 인형을 비롯해 스티커 등 관련 상품들을 넣어뒀다. 더쿠를 뽑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이뤘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너 이 오리 닮았다’고 서로 그러더라고요. ‘야, 넌 이 깔깔이 입은 거 닮았는데?’ ‘너는 이 안경 쓴 오리 같아’ 식으로요. 더쿠가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준 것 같아요. 더쿠는 마냥 맑고 순수한 캐릭터가 아니에요. 오히려 시크한 면도 있고, 해맑은 미소보다 썩소를 날리죠. 물론 진짜 맑은 사람도 있지만 24시간 마냥 맑기는 힘들어요. 각박한 세상 속 다들 더쿠 같은 성향이 조금씩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 좋아해준다고 느꼈어요.”
특히 갈수록 관심이 높아지는 게 체감된단다. 아트토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도 힘입은 바가 있다. 더쿠 개발 초기엔 아트토이 마니아, 업계 관계자들이 주요 관람객이었지만 올해는 특히 다양한 관람객이 방문해 대중화를 실감했다고. 그래서 딜레마도 느낀다는 고백이다.
“‘더쿠는 아트토이’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진 않아요. 개념이야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디자인 토이라고 불리기도, 디자인 아트라고 불리기도 하죠. 아직 경계가 애매한 것 같아요. ‘아트’라는 단어가 붙었을 때 얻는 이미지나 위치가 있겠지만, 이에 다소 괴리감을 느끼는 대중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애매한 경계가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곳이에요. 초코사이다라는 의미도 그걸 뜻하고요. ‘우리가 하는 건 예술이에요’가 아니라 그 사이의 경계에서 대중적인 피드백도 받고, 아트토이를 알고 싶고 관심 많은 분들에게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엔트리(entry)였으면 해요. 거창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경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국내를 넘어 해외 전시에도 참여하는 등 조금씩 초코사이다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대만 타이페이 국제 토이 페스티벌, 크리에이티브엑스포 타이완, 상하이 코믹콘, 홍콩 토이소울 등을 찾았다. 해외 관람객에게는 특히 뒤태가 도드라지는 스위밍 더쿠가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아트토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똑같았다. 더쿠 전시를 선보일 때마다 ‘날아라 슈퍼보드’ 패러디 등 이벤트성 더쿠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또 새로운 더쿠의 탄생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더쿠 시리즈 개발 및 책 작업을 준비 중이에요. 더쿠를 통해서 가장 지향하는 건 취향의 선순환이에요. 더쿠가 하는 다양한 활동에 흥미를 갖고 새로운 취미로 연계되고, 이게 또 행동으로 연계된다면 취향의 선순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팍팍한 세상이에요.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바라요. 남들 신경쓰지 않고 즐기는 더쿠처럼요.”
[더쿠가 컬래버레이션을 만났을 때]
초코사이다는 다양한 기업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이어 왔다. 올해에도 재미있는 컬래버레이션을 계획 중이다. 이에 앞서 먼저 주목받았던 대표 사례들을 소개한다.
① 롯데시네마 & 에너지관리공단 ‘팝콘을 사수하라’
지구를 지키기 위해 더쿠가 나섰다. 2015년 롯데시네마, 에너지관리공단과 함께 한 ‘에코백 나눔 프로젝트’에 더쿠가 등장했다. 영화관 매점에서 판매하는 팝콘이 남아서 버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남은 팝콘을 담아갈 수 있는 친환경 용지로 제작된 에코백에 더쿠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보고 있는 더쿠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② 신라면세점 ‘잘 다녀와’
2015년 여름 성수기 더쿠가 신라면세점에 등장했다.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여름을 좋아하는 더쿠가 면세점 혜택을 준다는 콘셉트였다. 신라면세점 기프트데스크에 여권과 항공권을 소지하고 방문하면, 더쿠가 담긴 ‘잘 다녀와’ 패키지를 제공했다. 여행 필수품인 칫솔-치약 세트, 비치볼, 여행용 파우치, 손수건 등에 여행의 설렘을 담은 더쿠의 모습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③ 왓슨스 ‘너 좀 맞자, 할인 폭탄으로’
2015년 9월 왓슨스에서는 핀업걸 콘셉트의 더쿠가 등장했다. 더쿠 멤버십카드를 9월 리미티드 한정 수량으로 출시했다. ‘너 좀 맞아야겠다 할인 폭탄으로’ 등 시크한 말투의 더쿠가 고객의 미소를 붙잡았다.
④ 디자인하우스 ‘레드 더쿠’
2015년 부산/서울 디자인페스티벌 참여 후 더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 디자인하우스로부터 컬래버레이션 제의를 받아 다음해 한정판 더쿠 토이를 출시했다. 기본형 더쿠에다가 도색을 한 뒤 메인 컬러를 레드로 의상을 입히고 귀여운 털모자를 씌웠다. 홍보 영상 및 일러스트 전시도 함께 진행했다.
⑤ 메이커스위드카카오 ‘귀마개 전쟁’
카카오의 주문제작 플랫폼인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가 2016년 더쿠와 손을 잡았다.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는 주문량만큼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모바일 주문생산 플랫폼으로, 홍보 차원에서 다양한 상품 라인업을 알렸다. 여기에 더쿠 피규어도 있었다. 더쿠 핑크 에디션 피규어는 오픈 첫날 200개 전량 매진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한정판에 새롭게 붙은 더쿠 귀마개를 구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초코사이다 스스로도 이 한정판 피규어는 하나밖에 간직하지 못하고 있단다.
⑥ 폼텍 웍스 ‘오감 노트북’
2016년 폼텍 웍스와 초코사이다가 만나 더쿠 리미티드 에디션 노트를 만들었다. 퀄리티 좋은 노트가 주요 콘셉트로 노트는 총 5종이 만들어졌다. 미각, 후각, 시각, 촉각, 청각을 대표하는 더쿠 캐릭터가 표지에 등장했다. 가령 촉각에 등장하는 더쿠는 꽃냄새를 맡고 있는데 이 노트의 이름은 ‘킁킁 노트북’이다. 이탈리아 가죽 원단과 두꺼운 내지 등 높은 퀄리티에 힘입어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⑦ SPC그룹 베어브릭 프로젝트 ‘곰을 입은 더쿠’
SPC그룹은 아트토이컬처에서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두자 작가의 마몬 등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게 이어 왔다. 2016년엔 SPC X 메디컴토이 베어브릭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8~9개 팀을 구성했다.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SPC그룹의 이미지에 매칭되는 작가들을 각각 선정해 작업을 진행했다. 초코사이다는 떡 브랜드 ‘빚은’과 매칭돼 베어브릭의 형태에 더쿠 얼굴이 들어간 작업을 탄생시켰다.
⑧ 코오롱 에피그램 ‘패셔니스타 더쿠’
2016년 겨울 더쿠가 패셔니스타가 됐다. 에피그램과 협업해 ‘옷을 좋아하는 더쿠’를 만들었다. 에피그램 디자인을 접목한 스트라이프 니트웨어를 입은 더쿠는 겨울이라는 계절과도 맞닿아 많은 인기를 끌었다. 더쿠 캐릭터 자수가 새겨진 야구모자도 판매됐는데, 약 90%의 판매율을 보이며 더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