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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태국·라오스] 남한 2.5배 라오스에 푸근하게 섞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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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7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5.29 09:47:5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홍콩 경유/환승 → 태국 치앙마이 도착)

항공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홍콩을 경유하는 먼 길에 오른다. 긴 시간을 기다려 탑승한 치앙마이(Chiang Mai) 행 홍콩익스프레스 항공기는 출발 예정 시각을 훨씬 넘기도록 게이트를 벗어나지 못한다. 홍콩국제공항(HKIA)은 갈수록 항공기 운항 편수가 늘어나서 하루 종일 체증이다. 멀리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길이 80km의 길디긴 해상 교량 건설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드는 중국의 막강한 힘을 느낀다. 밤늦은 시각 도착한 치앙마이 공항 입국장은 마침 한국, 중국, 홍콩에서 항공기들이 여러 편 동시에 들이닥친 데다 중국인의 새치기까지 보태져 대혼란이다. 


2일차 (치앙마이)

여행자의 낙원 치앙마이

치앙마이 올드 타운 관광객 거리에는 서양인이 아주 많다. 내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네덜란드인 빔(Bim)도 그중 하나다. 여행자로 방문했다가 치앙마이가 너무 좋아서 태국 여성과 결혼하여 아예 이곳에 정착해 버렸다. 

본국의 부모님이 섭섭해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본국에 살 때보다 더 자주 부모님을 만난다고 한다. 일 년에 두 번, 여름에는 자기 부부가 네덜란드로 가고, 겨울에는 부모님이 치앙마이로 오기 때문이라고 자랑한다. 단기 방문자 말고도 자기 같은 서양인 장기 체류자도 아주 많다고 하니 치앙마이의 삶의 조건과 물가, 기후가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라고 풀이해본다. 

▲외적의 침임을 막고자 성곽을 둘러싼 해자(垓字). 치앙마이는 진정 해자의 도시다. 사진 = 김현주

▲훼이사이 거리 풍경. 사진 = 김현주

옛것과 새것의 공존

태국어 북부 방언으로 ‘치앙’은 마을이라는 뜻이고 ‘마이’는 새롭다는 뜻이니 ‘치앙마이’의 뜻은 신도시, 뉴 타운쯤 된다. 태국 북부 지방에는 치앙마이, 치앙라이, 치앙센, 치앙콩 등 ‘치앙’으로 시작하는 지명이 아주 많다. 

치앙마이 올드 타운은 사방 1.6km의 성곽과 해자로 둘러싸인 도시로서 성곽은 일부 남아 있거나 부분 복원되어 고대 란나(Lanna) 왕국의 한 때를 그려보게 한다. 고즈넉한 태국 북부 시골 도시를 기대했으나 도시는 매우 번잡하다. 성곽 도시 안에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와 음식점, 카페 등이 있고, 도시 먼 외곽까지 아파트와 공공건물이 뻗어 나가 있다. 스쿠터를 빌려서 도시를 배회하며 지난 한 해 동안 쌓인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는다.

▲치앙라이 주에 위치한 백색 사원 왓롱쿤(Wat Rong Khun). 여행자에겐 화이트 템플(White Temple)이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사진 = 김현주


3일차 (치앙마이 → 치앙콩 → 라오스 훼이사이)

유럽인의 동남아시아 사랑

아침 10시, 미니버스로 메콩(Mekong) 강 중류에 위치한 도시 치앙콩(Chiang Kong)을 향하여 떠난다. 승객은 나만 빼고는 모두 유럽인이다. 그들의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차이나 사랑은 단순히 싼 여행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아시아 문화, 아시아 사람의 매력과 함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유럽에서는 찾기 어려운 여유와 순수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핀란드 청년 니콜라스는 아버지의 고국 호주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러 가는 길에 동유럽을 거쳐 태국을 여행 중이다. 벌써 두 달째 동남아시아 각 지역을 탐방 중이란다. 

버스로 6시간, 297km를 달려 오후 4시, 태국-라오스 국경 도시 치앙콩에 도착, 곧 라오스 국경으로 이동한다. 가난한 나라 라오스는 거의 모든 외국인에게 미화 30달러를 입국 비자료로 징수하지만, 한국인은 면제다. 한국의 위상이 EU 국가를 능가하는 기분 좋은 순간이다. 

라오스에서 중국을 보다

‘우정의 다리’를 건너 라오스 훼이사이(Huay Xai)에 닿았다. 라오스하고도 아득한 변방이지만 몇 해 전 방문했을 때보다 많이 분주해졌다. 도시 초입에는 거대한 중국 촌이 형성되어 있다. 라오스 문자는 보이지 않고 중국어 간판, 중국 음식점, 중국 호텔, 물류 창고 등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메콩 강을 따라 곳곳에 이처럼 작은 중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중국 윈난 성 쿤밍까지 버스가 다닐 정도이다. 

▲루앙프라방 행 중간 기착지 팍벵 선착장에 도착했다. 메콩 강 슬로우 보트 여행자는 대부분 유럽인이다. 사진 = 김현주

▲물살이 꽤 빠른 메콩 강 중류. 사진 = 김현주

빛바랜 프랑스의 흔적

숙소에 여장을 풀고 마을 산책에 나선다. 주 청사 건물 뒤 카노 요새(Fort Carnot)부터 찾는다. 프랑스 식민 통치 시절의 국경 요새이다. 망루 두 개와 병사의 숙소, 그리고 병영을 둘러싼 돌담이 온전히 남아 있다. 라오스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식민지 건축물이다. 

프랑스 인도차이나의 서쪽 최전선 국경 수비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프랑스인 장교 1명과 현지인 병사 몇 명이 외로운 변방을 지켰다고 한다. 100년 전 머나먼 변방, 외로운 강 언덕을 지키던 이국 병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강과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점점이 박혀있는 멋진 라오프렌치 양식 빌라…. 멋진 풍경이지만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니 왠지 비감해진다.  

▲라오스 변방 국경도시 훼이사이 전경. 사진 = 김현주

슬로우 여행의 즐거움

곧장 강가로 바쁘게 걸어나가니 마침 메콩 강 너머로 석양이 진다. 배들은 오늘 운항을 멈추고 모두 부두에 정박해 있다. 마을 뒤 언덕 위 왓촘(Wat Chom) 사원에서는 마음 사람들이 모여 정성스럽게 저녁 예불을 드린다. 곧 밤이 내리니 별들이 하늘을 촘촘히 수놓는다. 인적 끊긴 동네 중심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온다. 수십 년 전 내가 자랐던 서울 모래내 동네 앞 신작로 풍경을 빼닮았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사람들 모습이 한국인과 가장 흡사한 라오스에서는 어디를 가도 마음 편하게 섞여버린다. 이번 여행, 이미 슬로우(slow) 여행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다. 적막한 국경의 밤, 아시아 오지 깊숙한 곳에서 맞이한 밤이 이렇게 소담할 수 없다.


4일차 (라오스 훼이사이 → 팍벵)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 월요일 아침 등굣길로 바쁜 어린이들 틈에 끼어 선착장으로 향한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행 슬로우 보트(slow boat)가 출발하는 곳이다. 보트 표는 어제저녁 숙소에 부탁해 놓았다. 나는 뱃길 이틀 중 첫 구간인 훼이사이-팍벵(Pak Beng) 구간만 이동하기로 했다. 

땅덩어리 넓은 라오스

아무리 슬로우 보트라지만 뱃길로 이틀을 가도 라오스의 작은 한 부분만 스치고 지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만큼 라오스는 면적이 넓다는 뜻이다. 훼이사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 버스로 이동하면 12시간, 수도 비엔티안까지는 24시간…. 대략 이런 식이다. 남한의 2.5배 되는 넓은 국토이지만 대부분 산악이고 인구는 고작 660만 명이다. 

▲팍벵 선착장에 슬로우 보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진 = 김현주

▲라오스 메콩 강 슬로우 보트. 훼이사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이틀이 걸린다. 사진 = 김현주

‘국제 하천’ 메콩 강

드디어 그 유명한 메콩 강 슬로우 보트가 선착장을 벗어난다. 겨울철 건기라서 수량이 줄었고 게다가 여기는 중류이지만 장엄-장대한 메콩 강은 바다처럼 넓기만 하다. 총 길이 4350km로 세계 12위의 강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중국, 미얀마, 라오스, 타일랜드, 캄보디아의 경계를 이루며 베트남을 적신 후 남중국해로 흘러 들어간다. 오늘 하루 펼쳐질 메콩 강의 장관을 그려보니 가슴이 뛴다.

남행하는 보트를 기준으로 오른쪽(서쪽)은 태국, 왼쪽(동쪽)은 라오스이다. 보트는 두 나라의 국경을 이루는 ‘국제 하천’ 메콩 강을 따라 첩첩산중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간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강변 마을, 먼지 날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 강가에 소를 몰고 나와 풀을 먹이는 목동, 그리고 드리워진 그물을 걷으러 강을 오르내리는 어부만이 인간의 흔적이다.  

급류를 타다

메콩 강 중류의 물살은 매우 빠르다. 가끔 마주쳐 지나는 커다란 중국 화물선이 일으킨 큰 물살에 작은 보트는 심하게 출렁거린다. 선장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초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곡예 운행을 한다. 출발 5시간 30분 후 중간 기착지 팍벵(Pak Beng)에 도착하니 석양이 깔린다. 오늘 배로 이동한 거리는 140km쯤 된다. 

이름만 슬로우 보트일 뿐 결코 느린 배는 아니다. 다만, 루앙프라방까지 이틀 걸리는 이유는 험한 메콩 강 뱃길을 야간에 이동할 수 없으므로 어둠이 내리면 무조건 하룻밤 쉬었다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맞는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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