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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면이 만들어내는 선에 주목하는 이교준의 화면

더페이지갤러리서 30여 년 탐구한 미니멀리즘 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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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8호 김금영⁄ 2017.06.02 09:47:51

▲이교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 일부.(사진=더페이지 갤러리)

굉장히 심플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웅장한 깊이감이 느껴진다. 이교준 작가의 작품에서 받은 느낌이다.


더페이지갤러리가 2016~17년 최근까지 진행된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작가가 탐구해 온 미니멀리즘 회화의 성찰 과정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작가는 1970년대와 80년대 실험적 설치를 시작으로 엄격한 기학학을 바탕으로 한 평면 작업을 해 왔다. 그리고 2000년대엔 캔버스로 옮겨와 최소한의 형태로 구성과 색채만으로 본질을 표현하는 작업을 추구하고 있다.


▲이교준, ‘무제(Untitled) - 1672’. 코튼 덕에 아크릴릭, 227 x 182cm. 2016.(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선, 점, 면이다. 이는 그림의 기본 요소인데, 작가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자신에겐 ‘미술의 재료’라고 설명한다. 재료로써 활용하는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는 것.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보니 오히려 아무 것도 되지 않더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가장 단순한 ‘나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왔는가’부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작가는 짚었다.


“학창시절 개념미술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맨 적이 있었죠. 그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바깥이 아니라 제가 걸어 온 여정, 그곳에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니 저는 면을 분할하고 나누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걸 발견했죠. 또 면을 분할하기 위해서는 선과 점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이 세 가지를 갖고 그림을 그려 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이교준, ‘윈도우(Window)’.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 x 180cm. 2012.(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작가의 화면은 단순하지만, 이 단순한 화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수행의 결과물이다. 10년 전에는 색을 다루는 작업을 주로 했다. 그런데 화면에 많은 것을 담기보다는 조금씩 비워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림의 본성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 그래서 다양한 색을 담았던 화면은 근작에서는 회색조로 바뀌었다. 회색에 모든 것을 압축한, 무념무상의 상태로 돌아갔다.


화면엔 여러 개의 선이 그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화면을 보면 ‘이 선을 가장 먼저 그렸겠거니’ 추측한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다. 면을 분할하는 게 먼저다. 즉 면을 먼저 칠하기 시작하고 이 면들이 여러 개 생기면서 그 사이에 선이 생긴다. 또 이 선은 또 캔버스 틀과도 관계성을 지닌다.


가장 단순한 것이 모든걸 담을 수 있다


▲이교준, ‘무제(Untitled)’. 알루미늄판에 컬러 인레이드, 90 x 60cm. 2002.(사진=더페이지 갤러리)

“사람들은 캔버스를 그냥 평면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 말도 맞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캔버스 틀은 또 하나의 선이기도 해요. 캔버스의 옆면과 앞면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선이 되죠. 저는 이게 처음엔 캔버스의 선 안에 갇힌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캔버스 가장자리를 남겨놓고 안쪽에 먼저 들어가서 면을 분할하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선을 보며 흥미를 느꼈죠. 이 선과 캔버스의 선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작가는 화면을 완성시킬 때 혼자서 침묵 속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한다. 그림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화면을 채운다기보다는 비워간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마음도 정리하면서 점, 선, 면을 그린다. 특히 그의 화면은 반복적인 수행의 축적과 단순한 구조로 단색화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작가는 선을 그었다.


▲색채감이 돋보이는 이교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사진=더페이지 갤러리)

“단색화는 과거 미국에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나왔을 때 대두되기 시작한 장르예요. 그리고 1960~70년대 근대 미술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단색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뤄지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단색화 열풍이 불고 있죠. 평면 안에서 걷어내고 버리는 제 작업이 단색화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 제 작업을 단색화라고 설명하지는 않아요. 제 그림은 색 이야기만이 중심이 아니라 점, 선, 면이 지닌 기하학적인 구조가 중심이거든요. 단색화라는 장르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언뜻 그냥 보면 점, 선, 면의 조화가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작가의 생각과 혼이 들어간 결과물이기에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고, 또 이 점을 주목해 주길 바란다는 말이다. 대구를 기반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는 2016홍콩 아트바젤에도 참여하며 해외에서도 그만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교준, ‘보이드(Void)-c’. 합판, 아크릴릭, 60 x 42.5 x 17cm. 2009.(사진=더페이지 갤러리)

더페이지 갤러리 측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정제된 표현만으로 극소의 차이를 드러낸다. 감춰져 있던 본질의 세계에 이르는 현상학적 경험의 길을 보여주고 있으며, 입체적인 사고의 개념을 평면화로 전환하는 다른 가능성도 보여준다”며 “또한 회화적 표현에서 흥미로운 영역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점, 물성의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전시가 다른 차원의 질료의 감각과 표면으로 전이되는 평면에 대한 다양한 변주로 지각을 자극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6월 25일까지.


▲이교준 작가.(사진=더페이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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