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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20년 논란 집단소송제, 문재인 정부 결단 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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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9호 이성호 기자⁄ 2017.06.12 10:17:29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 CNB가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보다 정의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연재하고 있는 <연중기획-정치와 기업>의 이번 주제는 ‘집단소송제’입니다. 이 제도는 오랜 세월 찬반 양론에 부딪혀 공전해 왔는데, 새 정부가 도입 의지를 밝히고 있어 주목됩니다.


억울한 사례들…3가지가 필요한 이유

집단소송제는 한 명의 피해자가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손해를 인정받으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나머지 피해자들은 별도의 소송 없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다수 소비자들의 피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집단소송제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증권 관련 분야에만 한해 적용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비자 분야에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소비자피해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약속했다.

경실련·금융소비자연대·서울YMCA·소비자시민모임·소비자와 함께·언론개혁시민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9개 단체가 보낸 질의서에서도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첫째, 소송 안해도 보상 받아  

왜 대통령은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이 제도가 왜 필요한 지는 몇 가지 경우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카드 3사(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의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건이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2월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등을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안 공동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연합뉴스

당시 사건은 무려 약 1억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성명·주민번호·휴대전화번호·주소·직장명 등 개인정보는 물론 결제계좌·연소득 등 신용정보가 새나갔다. 막대한 유출건수로 인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사태였다. 

이에 전국적으로 개인 또는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는 카드사들에게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이마저도 불복해 항소,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이하 금소연) 국장은 CNB에 “금소연에서는 1만2000여명의 피해자들과 함께 카드 3사를 대상으로 공동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며 “카드사들이 항소한 탓에 지금까지 배상받은 소비자는 전무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업의 잘못으로 인해 다수의 소비자에게 해를 끼친 경우 그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손배소를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 

둘째, 기업이 소비자 겁낸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변호사 비용 등 경제적 부담과 시간상 제약, 그리고 피해입증을 스스로 해야 하며 해당 기업에서 내세우는 거대 로펌과 법정공방에 시달려야 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 손배소를 건 소비자가 승소했더라도 그 사람에게만 피해를 보상해주면 되기 때문에 데미지가 크지 않다. 즉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나머지 동일 피해 소비자는 배상 등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규모 소비자 피해사고가 발생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에 별다른 조치나 보상대책 없이 사업을 계속하게 되고, 유사 사건이 재발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집단소송제가 존재했다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 몇 사람만 대표소송을 벌이면 될 일이다. 이들의 판결 결과에 따라 수백만명이 자동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막대한 보상금이 두려워서라도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데 노력하게 된다.   

셋째, 소멸시효 무시해도 ‘OK’ 

또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의 방어 논리 중 하나인 소멸시효도 무용지물이 된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나 이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 그 권리가 소멸되는 제도다. 

기업들이 소멸시효를 내세워 보상을 거부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건의 경우, 소멸시효를 의식한 카드사들이 재판을 최대한 길게 끌었다. 그러는 사이 올해 1월 8일자로 소멸시효 3년이 완성돼버렸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소멸시효 직전인 1월 7일 추가소송을 제기했지만 참여자가 2000여명에 불과했다. 앞서 재판을 제기해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를 전부 포함하더라고 최종적으로 보상을 받게 될 사람은 수십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몇 년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생보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면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 왔다. 금감원이 이들 보험사에 대한 징계에 나서자 징계를 코앞에 둔 시점에 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다.

2016년에서야 제대로 알려져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옥시 등 살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태 등에서도 소멸시효로 인해 제대로 보상받는 소비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이런 문제는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집단소송제 자체가 권리 행사이므로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제가 생기면 특정 기업에게 피해를 입은 다수의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일일이 소송을 하지 않아도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돼 권익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며 “문재인 정부가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줘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업들은 패소할 시 막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과 소송 남발로 인한 사회적 문제 등을 이유로 제도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기업들의 반발 등으로 법안이 상정되지 못했다. 


재벌개혁이 핵심 키워드…법 개정 속도낸다

지난 4월 말 기준 정부에 신고 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5566명이며 이중 사망자는 1181명이다. 

또 2008년 옥션 1000만명, 2011년 넥슨 1320만명·네이트 3500만명, 2014년 KT 1170만명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기업의 부당행위 등 잘못으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해자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다. 맹점은 소송을 한 당사자들만이 승소해야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에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라도 본인이 명시적으로 배제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동일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시민·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국회 등에 따르면 집단소송제도의 도입 논의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있어왔다. 이후  소송 대상을 증권거래법상의 일부 손해배상책임으로 한정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돼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5일 오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강찬호 대표와 회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이 법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행 이후 현재까지 제기된 소송이 9건에 불과하고, 이 중 소송허가결정이 확정된 사건은 4건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에는 증권관련 분야에서만 한정돼 있는 집단소송을 전 분야로 확대함을 골자로 한  여러 건의 법안들이 제출되고 있지만 통과는 요원하다. 

2004년 집단소송등에관한법률안(최재천 의원 대표발의), 2008년·2013년 집단소송법안(우윤근 의원 대표발의), 2014년 소비자집단소송법안(서영교 의원 대표발의) 등이 올라왔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채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된 바 있다.

현재 20대 국회에서도 지난해 6월 서영교 의원(무소속)이 대표발의한 ‘소비자집단소송법안’과 같은 해 7월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집단소송법안’ 등이 계류중이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참여연대와 함께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안’을 공동발의한 상태다.

가장 최근 발의된 박주민 의원안은 ‘법원은 피해자가 50인 이상이며 구성원의 각 청구가 법률상 또는 사실상 주요한 쟁점을 공통으로 하고 집단소송이 총원의 권리실현이나 이익보호에 적합하고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인정 시 집단소송으로 해결할 것을 허가토록 한다’고 명시했다.

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국회에서 집단소송제와 관련해 아직까지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진 않지만 언제 어떻게 현실이 될지 모를 관련 법안들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달가울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이 제도가 생기면 동일 피해를 입은 여러 소비자에게 배상을 해줘야 하기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남소(濫訴)의 우려다. 집단소송은 개별 당사자들의 비용이 매우 적게 들기 때문에 패소에 대한 부담은 적은 반면 변호사는 많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어 무의미한 소송들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기업들 입장에서는 집단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 대외신인도가 약화될 수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재판 증가 및 법원의 업무 과중, 재판업무의 지연, 남소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유발된다며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소송회피를 위한 사전적 예방비용이나 사후 보상을 위한 보험비용 등을 결국 소비자들에게 떠넘길 공산도 크다.

또한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도 집단소송제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나라 법체계와 다른 영미법상의 제도라는 점을 들어 도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소송 남발 우려와 관련해 박주민 의원실 측은 CNB에 “소비자들의 소송 대표자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두는 등 여러 가지 우려되는 부문에 대해 차단시키는 장치들을 법안에 담았다”며 “소송법인 만큼 향후 깊은 논의와 검증을 거쳐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자유한국당 찬성 여부 변수로 

문재인 정부 또한 강한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현재 소송법제로는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이 집단적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다수의 피해자들이 신속·효율적으로 구제를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우선적으로 ‘소비자피해 영역’에서 집단소송제를 확대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공약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경실련·금융소비자연대·서울YMCA·소비자시민모임·소비자와 함께·언론개혁시민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9개 단체가 보낸 질의서에서도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선 소비자 분야에 한해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는 ‘조건부 찬성’ 입장이지만 사실 이는 전 분야에 도입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다. 지금까지 발생한 대형 피해 사건들이 전부 유통·금융 등 소비자 영역이라는 점에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실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에서 “다수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를 위해 집단소송제를 확대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적용대상은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며 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 국회 통과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해서 반드시 낙관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며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하며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만큼 관련 쟁점도 많아 국회 법안심사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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