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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유타] 나바호와 몰몬의 땅, 적갈색 대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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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7.17 10:05:4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5일차 (캐나브 → 모뉴먼트 밸리 → 브라이스 캐니언 → 캐니언랜즈)

나바호 영토에 들어오다

유타 주 캐나브(Kanab)에서 애리조나 주 페이지(Page)로 향한다. 하얀 사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버밀리온 클리프(Vermillion Cliff), 파월 호수(Lake Powell)와 글렌 캐니언 댐(Glen Canyon Dam)을 연이어 지난다. 파월 호수의 파란 물이 아침 해를 받아 더욱 파랗게 빛난다. 유타 주 구석에서 애리조나 주 구석까지 미국에서도 가장 오지를 지난다. 페이지는 완전히 나바호(Navajo) 인디언 지역이다. 우리와 똑같은 얼굴인 그들은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생김새야 같지만 공유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나에게 도대체 관심이나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자동차는 캐나브 출발 세 시간 반 만에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초입에 닿는다. 애리조나 주와 유타 주 경계, 나바호 영토(Navajo nation)안에 들어온 것이다. 원래는 아나사지(Anasazi)인이 살았으나 14세기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바호가 들어왔다. 

신령한 분위기에 휩싸여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서있는 거대한 바위산 하나하나가 이미 예사롭지 않다. 신령한 분위기에 휩싸여 골짜기 중심으로 계속 전진한다. 모뉴먼트 밸리는 미국 서부의 상징 같은 곳이다. 1939년 존 포드(John Ford) 감독 존 웨인(John Wayne) 주연의 역마차(Stagecoach)를 시작으로 1993년 포레스트 검프(Forest Gump), 2000년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2002년 윈드 토커(Wind Talker) 등 수 없이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곳이다. 

나바호 젊은이들과 대화

모뉴먼트 밸리 웰컴 센터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나바호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눈다. 고교생들이다. 매튜는 곧 텍사스 주 소재 대학에 진학하여 석유공학을 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쑤시는 사진을 찍자고 하자 수줍어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옛날 우리나라 시골 처녀를 꼭 닮았다. 너무나 비슷한, 언제 어디선가 마주친 것 같은 얼굴 덕에 금세 많은 솔직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칠 때 줄곧 나바호와 나바호 언어를 예로 들곤 했는데 오늘 그들을 직접 만나 얘기까지 나누니 가슴이 짠해진다.

▲캐피톨 리프. 사진 = 김현주

▲Lake Powell. 사진 = 김현주

유타 오아시스 마을의 달콤한 휴식

밸리를 떠나 북쪽으로 향하는 길, 포레스트 검프가 달리기를 멈췄던 곳쯤에서 차를 세우고 무한정 셔터를 눌러댄다. 뜨거운 태양, 사막 길을 벌써 서너 시간째 달린다. 그늘조차 없으니 졸음이 와도 차를 멈출 수 없다. 작은 내 차도 헐떡이는 것 같아 에어컨도 마음 놓고 켜지 못한다. 마침 블랜딩(Blanding, Utah)이라는 마을을 지난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무가 잘 가꾸어진 전형적인 남부 유타의 도시에 나 같은 길손을 위하여 아담하게 꾸며놓은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그늘에서 한참을 쉰다. 사막 열풍만 맞아 오다가 어디서 오는지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한없이 좋다.

이 작은 마을에도 한국과 인연의 고리는 얼마든지 있어서 놀란다. 방문자 센터에 근무하는 해롤드(Harold)는 한국전 참전 용사이고, 이 마을 출신 몰몬 청년 중에는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이들도 많다고 한다. 지구촌은 참 묘하고 복잡하고도 정겹게 얽혀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늘 아래 달콤한 휴식 후 또다시 뜨거운 사막 길에 오른다.

유타 주 모압

모압(Moab) 마을을 지나 아치스(Arches) 국립공원으로 들어선다. 2천 개가 넘는 아치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 모압이라는 마을 이름에도 관심이 간다. 유타 주 지명 중에는 성경과 관련된 곳이 많은데 모압도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굳이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고 우상을 숭배했다는 모압에서 이름을 땄을 리 없다. 토착민 언어로 모아파(Moapa), 즉 모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델리키트 아치

아치스 국립공원 초입의 거대한 수직 노란 암벽이 먼저 반기고 뉴욕의 거대한 빌딩 군을 연상하게 하는 파크 애브뉴(Park Avenue), Courthouse, Towers 같은 명소들이 연이어 나타나더니 델리키트 아치(Delicate Arch)에서 절정을 이룬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의 상징이기도 하고 유타 주 자동차 번호판에 새겨져 있는 만큼 낯익은 모습이다. 스핑크스, 사자 등 다양한 이름만큼 기기묘묘한 모습을 연출한 자연의 힘 앞에 숨죽인다. 사막 오후 햇살에 살갗이 벌겋게 익어가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천상의 섬(Island in the Sky). 사진 = 김현주

▲브라이스 캐니언. 사진 = 김현주

천상의 섬

내친 김에 인근 캐니언랜즈(Canyonlands) 국립공원까지 차를 달린다. 협곡과 고원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엄청난 풍경을 어찌하란 말인가? 발아래 아득히 깊은 곳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실개천처럼 보인다. 이름도 ‘천상의 섬’(Island in the Sky)이다. 캐니언랜즈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더러는 도로조차 없어서 그나마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한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사방 수십 킬로미터 안에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태고의 비경이 펼쳐진다. 콜로라도 고원 중에서도 가장 사람 손을 덜 탄 곳이어서 지구가 태어났을 때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천상의 땅이 바로 이곳이다. 캐니언랜즈 방문을 위하여 내가 할애한 시간이 절대 부족함을 탓하며 발길을 돌린다. 

통나무 캐빈에서 하룻밤

오늘 밤은 좀 독특한 숙소에서 묵는다. 작은 통나무 캐빈 한 칸을 빌린 것이다. 숙소가 매우 비싼 여름 성수기라서 이곳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지만 가격 대비 결과는 훌륭했다. 화장실과 샤워실만 공용 시설일 뿐 방 내부는 훌륭하여 하룻밤 묵는 데 전혀 아쉬움이 없다. 문만 열고 나가면 곧 야외이니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무한정 많은 별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난생 처음 보는 별 잔치를 즐기며 여행 보름 차 밤을 사막에서 맞는다. 


16일차 (모압  → 캐피톨 리프 → 브라이스 캐니언)

상쾌한 사막의 아침

사막의 아침은 상쾌했다. 캐빈 빌리지를 나와 I-70 고속도로에 오른다. 오늘은 유타 주 내륙을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관통하여 캐피톨 리프(Capitol Reef) 국립공원과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물론 브라이스 캐니언은 라스베이거스에서 I-15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가는 곳이지만 벌써 며칠째 미국 서부의 비경, 오지 탐방을 위하여 먼 길을 돌아가는 중이다.

▲모뉴먼트 밸리.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사진 = 김현주

점입가경 캐니언랜즈

I-70 고속도로를 잠시 달리니 곧 오아시스 도시 그린리버(Green River)에 닿는다. 앞으로 106마일(170km) 동안 마을과 주유소 등 시설이 없다는 안내판이 덜컹 겁을 준다. I-70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유타 주 24번 주도(州道, SR-12)를 하염없이 달린다. 민가 하나 없는 완전한 사막이다. 캐피톨 리프가 가까워졌는지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바위가 모두 제멋대로 멋을 부려 때로는 엄청난 거대산을, 때로는 아치를 그리며 깊고 긴 계곡을 만들었다. 그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드라이브는 환상, 그 자체다. 점입가경 대자연 앞에서 또다시 말을 잊는다. 조물주가 아니고서는 이런 조화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약한 것이 인간인데 우리는 얼마나 오만하게 살고 있는가? 내 마음 속에는 반성의 눈물이 흐르는 것만 같다.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여기는 1870년대 유타 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몰몬교도에 대한 박해를 피해 찾아든 사람들이 정착하여 작은 마을을 이룬 곳이다. 원래는 우트(Ute) 부족과 파이우트(Paiute) 부족이 살았으나 1500년경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지역을 떠났다. 길가 작은 오두막이 역사 유적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차를 세운다. 초기 몰몬 정착자 베후닌(Behunin) 가족이 살았던 집이다. 단칸 오두막에 열두 식구가 살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건너편 커다란 바위산 아래에는 그들의 아이들이 다녔던 단칸 학교가 옛 모습 그대로 서있다. 칠판에는 1937년 5월 어느 날 교과를 재현해 놓았다. 인간에게 자유란 이렇게 간절한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소중하다. 초기 이주자들은 이 척박한 땅에 과실수를 키웠다. 마을 이름도 프루이타(Fruita, 스페인어로 과일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곳곳에 과수원이 남아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 지나가는 이들은 마음껏 따서 가져가라고 써 있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과일을 따는 모습이 정겹다. 

▲캐니언랜즈. 사진 = 김현주

캐니언 탐방의 절정

브라이스 캐니언 가는 유타 주 12번 도로는 매우 아름다워서 긴 운전이 지루할 틈이 없다. 사막과 바위산이 끝나고 딕시(Dixie) 국유림을 지난다. 브라이스 캐니언에 도착하니 오후 2시 반이다. 모압을 떠난 지 6시간 반 지났다. Sunrise Point, Sunset Point를 지나 멀리 Rainbow Point까지 갔다가 Inspiration Point에서 탐방을 마친다. 이름 그대로 무언가 영감이 번뜩 떠오를 것만 같은 분위기다. 해발 8천 피트(2400m)가 넘으니 햇살은 따갑지만 공기는 선선해서 좋다. Inspiration Point는 브라이스 캐니언 탐방의 절정이다. 도대체 이 깊이와 부피, 색감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다. 

종합 백화점 브라이스 캐니언

브라이스 캐니언은 종합 백화점이다. 나머지 유타 국립공원에 있는 절벽과 기암, 계곡 등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모든 언어가 다 들리니 이곳이야말로 전 세계인이 몰려드는 미국 서부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으뜸임에 틀림없다. 192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매년 1백만 명씩 방문하는 인기 방문지가 되었다. 대부분이 8∼9천 피트(2400∼2700m) 고원에 있어서 사막임에도 사막과 전혀 다른 기후와 섭생이 펼쳐지는 것도 브라이스 캐니언의 매력 중 하나이다. 

유타 캐니언 감상법

지금 시각 오후 6시, 브라이스 캐니언 탐방을 마치고 인근 팽귀치(Panguitch) 마을에 예약해 놓은 모텔에 투숙했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저녁을 맞는다. 자이언 협곡에서 위를 올려다 보고, 노스림에서는 광활한 캐니언을 내려다 보고, 모뉴먼트 밸리에서는 신비로움에 휩싸여 보았고, 아치스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캐니언랜즈에서는 깊은 계곡 아래를, 캐피톨 리프 협곡을 지날 때는 하늘까지 닿을 듯 솟은 바위산에 경외감을 느꼈고, 그리고 브라이스 캐니언에서는 수천수만 개 사암 기둥의 기기묘묘한 모습과 유타의 광활한 대지를 실컷 보았다. 더운 사막, 하염없이 높은 고갯길, 아득한 절벽 길을 누빈 지난 사흘이 저물어간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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