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17.08.09 11:50:23
화면에 사람은 없다. 다만 인간이 무분별로 파헤쳐 놓고 떠난 땅을 다시 일구는 동물들이 보인다. 그리고 동물들은 가면이나 모자를 쓰고 있다. 마치 집을 지키는 수호신 같다.
김한울 작가의 개인전 ‘일구어진 땅’이 열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 속 존재하는 땅 이야기를 끌어낸다.
작가는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에 있던 건물을 부수고 난 후 편평하게 일궈진 땅을 지켜본 일이 있다. 실제로 자신이 살았던 지역이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점점 사람들이 하나둘 씩 땅을 떠났다.
땅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과 함께 폐허로 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에 풀이 하나, 둘 돋기 시작했고, 폐허였던 땅은 꽃과 풀로 뒤덮였다. 또 그곳에 새가 날아들고, 고양이와 떠돌이 개가 맴돌기 시작했다.
작가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 작가노트를 통해 그는 “땅 위에 인간이 개입해 새로운 것을 짓는 대신 그대로 놓아둔다면 어떤 풍경으로 변하게 될지 상상해 본다”며 자신의 작업 배경을 밝혔다. 그래서 작가는 천 위에 흙을 얹고 식물을 한 포기씩 그리면서 자신의 화면에 땅을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풍경을 돌아보면서, 그 위에 상상으로 본래 그 풍경에 존재했을 법한 동물을 그려 넣는다.
작가는 “그리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사물들과 함께 식물이 어지럽게 뒤엉키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나의 작업은 하나의 과정으로 보면 자라나는 이야기와 같다”며 “사람이 떠난 터 안에 남아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고 그들에게 역할을 주고 이야기를 만든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즉 그의 화면 속 땅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많은 이야기들을 건넨다.
작가가 주목하는 건 주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개발 속 땅의 모습이 아니다. 동물들의 손으로 자연스럽게 일구어진 땅을 생각하고 그린다. 그리고 화면 속 동물들 또한 단지 귀여운 존재가 아니다. 작은 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동물들은 땅을 지키고 가꾸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들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어디쯤에서 서로를 비추어주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그린 땅과 그 땅을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일구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8월 11~24일 대안공간 눈에서 펼쳐진다.
한편 김한울 작가는 제3회 CNB저널 커버작가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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