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투가 ‘현존/부재(Presence/Absence)’전을 8월 26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연다.
아나익, 김기영, 이지연, 장민승, 정해련 작가가 참여한다. 챕터투 측은 “수전 손택은 현대무용인 유효한 빛(Available Light, 1983)의 리뷰에서 안무가의 사고체계를 빌어, 예술 표현 형식에서의 부재와 현존과의 상호관계, 미(美)라는 다원적 개념과의 밀접성에 대해 설명한다”며 “특히, 부재가 작품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단순한 무(Emptyness)가 아닌 미의 숨겨진 본질일 수 있다는 논거를 비중 있게 다룬다. 이번 전시에서도 시간, 분위기, 공간, 느낌 등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는 부재를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아나익 작가는 글로벌 시스템 아래 만연한 사회적 현상, 좁게는 국제미술계의 내부에 은거하고 있는 미묘한 양상에 관심을 보인다. 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작가가 탄생시킨 신조어를 주제로 한 네온사인 작업을 선보인다.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은 CMYK 컬러 포맷과 광고 매체의 통상적인 외형을 빌어 표현된 단어들은, 마치 실재 존재했던 단어인 양 두 의미를 함축성 있게 내포한다. 그리고 매스미디어 또는 불특정적인 사회 현상에서 우리가 경험했음직한 감상과 느낌을 대변한다.
김기영 작가의 ‘베이칸시’는 평범한 의자를 대상으로 깎아내는 행위를 통해 의자의 형상은 지니되 의자 본연의 기능성이 상실된 비가역적 상황을 내포하는 조각 작품이다. 작가의 반복된 깎아내기를 통해 최소한의 형태만 유지하는 상황에 내몰린 의자. 효용 가치와 존재 가치 간의 등가 법칙이 적용되는 공산품에서의 기능성의 부재는 곧 존재 가치의 부정으로 이어짐을 의미하는지, 의자의 원형으로 관념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이데아(Idea)의 표상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이지연 작가에게 공간은 사전적 의미의 충족 조건인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 또는 활동 유무에 의해 좌우되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 자체가 작품의 토대를 이루는 핵심 주제다. ‘그림 속에 그리다’ 연작은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간들에 대한 주관적인 기억의 현시이자 일종의 오마주다. 원색의 대비로 강조된 문과 계단의 형태가 내면으로 소실되며 중첩적으로 이어지는 화면엔, 사람이나 사물의 흔적이 일체 배제돼 있다. 그리고 한 공간의 형태와 크기가 창조하는 인접한 다른 공간의 보임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장민승 작가의 ‘블랙선셋’은 낙조의 순간을 흑백의 계조로만 담담하게 포착해낸 사진 작품이다. 장소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배제하는 구성을 통해, 대상은 ‘무명의 장소’ ‘무명의 바다’로 일반화되고, 이는 관람자를 그 근원과 원형질에 대해 보다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환기시킨다. 흑백의 그라데이션으로만 섬세하게 표현된, 극도로 절제된 채 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작가가 의도한 서사성이 더해지면서 오로지 시각 기관에만 호소하는 주체적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정해련 작가의 ‘WEB003(2014)’는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정착하면서 느낀 작가의 내밀한 경험이 투영된 설치 작품이다. 특수한 목적 아래 설치된 산업용 설비의 외형을 지닌 작업은 제목에서 유추되듯, 일정한 규칙을 갖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형상이다.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서로 연결된 구성원 간에는 다양한 형태의 의무와 예식이 상호 요구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작 관계 자체가 순수하게 지향하는 목적이 결핍되는 상황에 대한 작가의 심상은, 존재 이유가 불투명한 채 기이하게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의 외형에 의해 시각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