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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고 미술 시장 뛰어들었던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의 성공과 실패

제26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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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7.10.05 08:45:09

▲9월 26일 서울옥션에서 제26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이 한국 수상자로 선정됐다.(사진=더스프링컴퍼니)

“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멋모르고 미술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이 제26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의 한국 수상자로서의 소감을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단지 미술이 좋아서 미술계에 발을 들이고 가나아트를 설립했을 때 그의 나이 만 29세였다.


당시 주변 화랑에서는 이 회장보다 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단다. 그건 작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젊은 작가가 상업화랑에 진출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고. 그리고 이 회장은 이 젊은 작가들에게 눈을 돌렸다. 이유가 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미술 일로 돈을 번다는 게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명함에 ‘대표’가 아닌 ‘상무’라 적고 현장을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약 2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조금이나마 쌓은 신뢰와 이윤을 젊은 작가를 위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능력 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작품을 선보일 기회조차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요. 그게 제가 미술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시상식이 열린 서울옥션 내부엔 ‘경주의 남산’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이 회장은 “저 작품은 백대성 작가의 작품으로, 1984년 처음 만나 월 30만 원에 계약했었다. 한 달에 세 점의 작품을 내게 보여주고, 그 중 한 점을 내가 선택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벽에는 박영남 작가의 대형 작업이 걸려 있었다. 이 회장은 “붓을 쓰지 않고 손으로 화면을 채우는 작가로, 1984년 뉴욕에서 만나서 계약했다. 이렇게 전속 작가가 한두 명씩 늘어났다”고 말했다.


미술계에 발을 들이고 시작된 젊은 작가들의 만남. 어느덧 이 회장도, 작가도 눈가에 세월의 주름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그리고 어언 30년이 넘는 현재까지 이들의 만남은 이어져 왔다. 이 회장은 만감이 교차한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 못했는데 이번에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받으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어느덧 이들과 30년이 넘는 인연을 맺어왔더군요. 작가들은 제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예요. 한글은 ‘가나’로 시작해요. 시작과 도전의 의미를 담아 화랑 이름을 가나아트라 지었고, 작가들이 그 시작을 같이 했습니다.”


이 회장을 통해 발굴된 작가들은 국내를 넘어 해외 미술 시장까지 활발하게 진출했다. 이 회장은 “한국 화단은 결코 작지 않지만 세계 시장과 비교하면 작다. 현재 국내 미술 시장은 연 4000~5000억 원으로 추산되는데, 중국은 20조 정도”라며 “단순 비교로 봤을 때 한국 미술 시장이 약 2조 5000억 정도 돼야 한다. 이게 바로 해외 진출의 이유였다”고 짚었다.


“좁은 국내 미술 시장을 벗어나 해외에 한국 작가를 더욱 알리면서 판을 키워야 했고, 이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단색화 장르가 해외 미술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 작가를 알릴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후 제2의 단색화, 또는 단색화 못지않은 한국 미술의 다양성과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 더욱 작가 발굴과 소개가 중요합니다.”


▲(왼쪽부터) 몽블랑 코리아 에릭에더 지사장, 몽블랑 문화예술 재단 이사장 틸 펠라스, 가나아트∙서울옥션 이호재 회장 , 몽블랑 문화예술 재단 이사장 샘 바더윌이 9월 26일 서울옥션에서 열린 제26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에 참석했다.(사진=더스프링컴퍼니)

가나아트를 설립한 이 회장은 이후 또 다른 도전으로 서울옥션을 설립했다. 새로운 미술 유통시장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고 한다. 최근엔 옥션을 통해 고미술품을 활발히 알리고 있다. 이 회장은 “가나아트 설립 전 고려화랑에 있으면서 고미술을 접했다. 미술 시장에서 현대미술이 주로 이야기 되는데 이에 못지않게 뛰어나고 이야기돼야 하는 게 고미술”이라고 짚었다. 이 회장의 고미술품에 대한 관심은 기증까지 이어졌다. 특히 예술의전당 서예관 기증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1986년 고암 이응노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응노 선생은 자신의 그림이 구상화로 보이냐, 추상화로 보이냐고 물으면서 자신의 그림은 글씨에서 왔다고 말했죠. 모든 예술의 근본에는 글씨가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한국 미술 시장은 글씨에 주목하지 않고 있었어요. 중국 글씨 작품은 해외 미술 시장에서도 인정받으며 고가에 팔리는데, 우리는 왜 우리의 훌륭한 글씨를 돌아보지 않는지 안타까웠어요. 이후 서예에도 많은 관심이 생겨 틈틈이 작품을 모았고 예술의전당 서예관과 좋은 인연으로 작품을 기증하게 됐어요.”


가나아트와 서울옥션 설립, 그리고 작품 기증까지 틈틈이 이어 온 이 회장은 은퇴한 뒤의 일도 생각했다. 소외된 미술시장을 위해 꾸준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가나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렇게만 보면 성공 가도를 달려온 것 같지만 뒤에는 실패도 많았단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성공만 한 줄 아는데 굉장히 많은 실패를 겪었어요. 판화 공방도 하다가 못하게 됐고, 아트숍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98년도에는 인터넷에 가나아트닷컴을 선보이며 온라인 시장에 진출했는데, 오히려 너무 일찍 해서 실패했어요. 하지만 애초에 처음에 아무 것도 없었던 채 시작했었기에 실패가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지금도 ‘내가 이렇게 잘됐다’기보다는 아직도 길을 걸어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회장은 “이번 후원자상 수상으로 초심을 되돌아보게 됐다”고도 강조했다. “멋모르고 미술 시장을 뛰어들었던 29세의 내가 어느덧 오늘을 맞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초심을 다지고 꾸준히 걸어갈 것”이라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호재 회장은 제26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의 한국 수상자로 선정됐다.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은 매년 세계 각국에서 각 나라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해 온 후원자들을 선정해 경의를 표하고 격려하기 위해 1992년 제정된 상이다. 몽블랑 문화재단 주관 하에 각 참여 국가별 3명의 심사위원과 3명의 수상후보자를 선정하고, 국가별로 구성된 국제 심사위원단의 투표를 통해 각국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올해는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중국, 콜롬비아, 독일, 스위스, 영국, 미국 등 17개 국에서 참여했다.


이 회장은 가나아트갤러리와 서울옥션, 가나문화재단 설립을 통해 한국 미술시장을 이끌고, 한국 미술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한 점과 작가 지원 및 미술품 기증을 통해 미술작품의 공익화와 대중화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 받아 이번 수상자로 발탁됐다. 역대 수상자로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를 비롯해 미국의 록펠러 재단,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 등이 있으며, 한국 수상자로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박상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유상덕 송은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수상자인 이 회장에게는 문화예술 후원금으로 사용될 상금과 수상자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 펜이 수여됐다. 몽블랑이 루치아노 파바로티, 페기 구겐하임 등 문화예술 후원자를 기리며 매년 선보이는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 에디션으로, 올해는 17세기 로마 바로크 예술의 후원자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시피오네 보르게세에게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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