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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전시 - 제니퍼 리] 작가와 흙이 함께 빚어내는 작품들

갤러리LVS서 국내 첫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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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9호 김금영⁄ 2017.10.23 14:12:21

▲제니퍼 리, '다크 올리브(Dark olive), 엄버 할로드 밴드(umber haloed band), 플래싱(flashing)'. 21.3 x 11.3cm. 핸드-빌트(hand-built), 컬러드 스톤웨어(coloured stoneware). 2017.(사진=갤러리LVS)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위의 넓은 타원부터 아래의 꼭짓점을 향할수록 좁아지는 형태.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 가운데 안정감을 갖고 도도하게 서 있다. 특히 표면에 우주의 별을 찍은 것 같은 점들과, 퇴적작용으로 만들어진 지층의 단면을 자른 듯한 무늬가 눈길을 끈다. 도자에 자연의 물결이 넘실대는 느낌. 영국 작가 제니퍼 리의 작품이다.


갤러리LVS가 도예작가 제니퍼 리의 국내 첫 개인전을 11월 11일까지 연다. 런던에서 제작한 신작 11점과 2014~2015년 일본 시가현 소재의 ‘시가라키 도예의 숲’에서 레지던시 기간 중 제작한 작품 10점, 그 외에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드로잉까지 작품 26여 점을 선보인다.


▲제니퍼 리, '스페클드 페일 셰일(Speckled pale shale), 할로드 그래니트 밴드(haloed granite bands), 러스트 플래시(rust flash)'. 16.9 x 11.1cm. 핸드-빌트(hand-built), 컬러드 스톤웨어(coloured stoneware). 2017.(사진=갤러리LVS)

전시 타이틀은 작가의 이름 ‘제니퍼 리’ 자체를 내걸었다. 아직까지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그의 작업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는 “제니퍼 리는 현대 도예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중요한 도예가”라며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인 제니퍼 리는 앞선 세대의 도예작가 루시 리 이후에 오브제로서의 도자를 연구하고 창작해 왔다. 그의 작업은 공예와 예술의 경계를 초월한 도자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 속 유명 장면에서 주인공들은 물레를 돌렸지만 제니퍼 리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두 손만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1년에 나오는 작업량이 약 8~10점 정도라고 한다. 기계를 사용해 도자를 대량 생산하는 시대에, 작가의 방식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현재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했다.


▲제니퍼 리, '그래파이트 스페클드 블루(Graphite specked blue), 올리브 림 앤 베이스(olive rim and base), 플래시드 할로드 트레이스(flashed haloed traces)'. 15.8 x 22.1cm. 핸드-빌트(hand-built), 컬러드 스톤웨어(coloured stoneware). 2017.(사진=갤러리LVS)

“대량 생산에 대한 제의를 솔직히 받아보지 못하기도 했고요(웃음).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현재 작품 개수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는 작업의 스펙트럼의 넓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단지 장식 용도가 아니라, 손길 하나하나에 담긴 제 생각과, 자연적인 요소들을 내포하는 데 집중하고 있죠. 물론 작업의 성격에 따라서 제작 방식 규모를 키워볼 수도 있어요. 타일 등 넓은 표면이 필요한 작품의 경우 공장에서 작업을 해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어요.”


또 작가의 작업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있다. 도자가 지닌 신비한 색의 탄생 과정이다. 올리브색부터 갈색, 푸른색, 그리고 반점까지 도자 표면을 덮고 있는데,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움이 눈길을 끈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재료 준비가 필수다. 그런데 작가의 재료 준비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작가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완성되는 도자의 곡선


▲제니퍼 리, '시가라키'. 컬러드 스톤웨어(coloured stonewares). 2014-2015.(사진=갤러리LVS)

작가는 고향인 에딘버러를 비롯해 뉴멕시코 타오스마을, 이집트 시나이 반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 재료들을 수집했다. 작가는 “각 나라마다 흙에도 특성이 있다. 흰색 흙은 영국 중부에서 주로 수집했고, 일본의 붉은 색 흙도 사용했다. 1년에 60kg 정도의 흙을 현지에서 운송 받아 사용하기도 했다”며 “어떤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데, 내게는 흙을 관찰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도자의 기본 재료인 흙을 포함해 풍화가 일어난 모래결정, 자연의 흐름 속 산화돼 가는 물질을 모았다. 그리고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흙들을 한데 섞고, 산화 물질을 섞어 흙이 자연스레 색을 머금어 가게 했다. 흙이 아름다운 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는 10여 년이 걸리기도 한다.


▲물레가 아닌 손으로 직접 흙을 쌓아 올려가면 만들어진 제니퍼 리의 작품.(사진=갤러리LVS)

“이전에도 산화 작업을 하기는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시간을 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됐어요. 한 15~20년 전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스코틀랜드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예전에 네가 흙을 모아서 섞어둔 게 있는데 어쩔래?’ 하고요. 그래서 그 흙들을 살펴봤더니 원래는 흰색이었던 흙이 시간이 흐르면서 굉장히 신비스러운 색을 띠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본연의 자연의 흐름에 따른 결과물이었죠. 자연미에 매혹됐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물감을 칠해 만드는 색이 아니기에 가마에 굽기 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작가조차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있다. 그래서 항상 샘플을 굽는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그의 작업실 탁자엔 작은 도자 조각들이 걸렸다. 지나온 세월의 시간만큼 조각들의 개수도 점점 늘어났다. 이원주 대표는 “흔히 구워진 도자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는 흙 자체로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모습과 시간의 흐름을 담은 것, 그것이 제니퍼 리 작가만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제니퍼 리, '드로잉'. 50.1 x 38.7cm. 2017.(사진=갤러리LVS)

도자뿐 아니라 글과 드로잉 작업도 작가 작업 과정의 일부다. 작업 전 생각을 정리해 작품에 대한 세세한 글을 적고 스케치를 거친 뒤 도자가 완성되면 드로잉 또한 완성 작업을 거친다. 이때 오랜 세월에 걸친 작가의 경험이 작업에 들어간다. 에딘버러의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 뉴멕시코 타오스마을의 벽돌 건축양식,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사막과 같은 자연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직접 느끼고 관찰한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감이 고스란히 작업에 담긴다.


“제가 방문하고 만진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제 작업을 이루게 돼요. 그래서 제게는 이 시간들이 결코 지루하다거나 너무 길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정직한 손의 노동을 통해 제 사유와 의지를 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미를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담는 것, 그 과정이 제게 매우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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