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과 맞물려 2018 전망 "맑음"
▲네이처리퍼블릭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호점 개장에 몰린 인파. (사진 = 네이처리퍼블릭)
K-뷰티가 한국의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라는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2022년까지 ‘화장품 수출 세계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는 ‘화장품 산업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생활소비재인 화장품이 한국 최초로 14대 수출 주력품목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에서 비롯된 안이다. 1월 9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세계시장 진출전략 설명회’에서는 코트라(KOTRA)의 세계 10대 지역 본부장 중 절반이 넘는 6명이 2018년 유망 수출 품목으로 화장품을 꼽았다.
K-뷰티는 분명 또 다른 한류의 주역이다. 하지만 지난해만 두고 봤을 때, 한국 화장품 산업은 생각지도 못한 악재를 만나면 크게 흔들리는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품은 정부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대표적인 산업이며, 그 영향력은 실적 하락뿐 아니라 업계 리더십을 바꿔놓을 정도였다.
▲LG생활건강 '후'의 중국 매장. (사진 = LG생활건강 제공)
I. 중국에 울고 웃은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한국 화장품 생산실적은 중국 특수 덕분에 2012년 7.1조 원에서 2016년 13조 원으로 5년간 83%나 성장했다. 한국 화장품 업계는 전체 수출의 70%를 중국, 홍콩 등 중화권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20%나 급감했다.
업계에선 대중국 관계가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2018년 다시 35%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언제 또 다른 중국 관련 리스크가 터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중화권 의존이 심한 현재의 한국 화장품 산업 형태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반성과 그에 따른 대안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화장품 선도 기업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LG생활건강은 중국 현지의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해 사상 최대의 연간 실적으로 1위에 올랐다. 1월 23일 발표된 LG생활건강의 2017년 전체 매출액은 6조 2705억 원, 영업이익 9303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9%, 5.6% 성장했다. 럭셔리 브랜드인 '후'가 1조 4천억 원 매출을 올리며 아시아 탑10 브랜드로 올라섰고 '숨'도 38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화장품 부문에서 전년 대비 4.9% 성장한 것이 컸다.
'후'와 '숨'은 특히 중국 현지에서 최고급 백화점 매장을 확대하며 꾸준히 수요가 증가해 34%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뒤따라 '오휘', 'VDL', '빌리프', 'CNP' 등의 브랜드가 모두 두 자릿수 전후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면세 채널에서의 타격이 적고, 화장품 이외의 생활용품 및 음료 등에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하는 등 LG생활건강의 2017년 성과의 핵심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에는 후와 숨 2개 브랜드에서 2조 원 매출을 목표로 삼는 등, 기존 브랜드의 꾸준한 성장을 바탕으로 3년 연속 뛰어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드 보복으로 유커의 발길이 뚝 끊긴 지난 여름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 앞. (사진 = 연합뉴스)
반면, 2014년부터 업계 1위를 지키며 승승장구하던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과 디지털 채널에서 큰 폭의 매출 하락을 겪으며 고전했다. 증권사들은 아모레퍼시픽의 2017년 매출액을 최대 6조 1620억 원 정도로 예상했는데, 이는 당초 전망치인 7조 3673억 원에 비해 19.6%나 낮은 실적이다. 2016년 매출액 6조 6975억 원보다도 8.7% 낮아진다.
중국 관광객이 사라지면서 면세점 매출이 급락한 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2017년 4분기 면세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나 감소했다. 더불어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던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 브랜드도 각각 15.1%, 16.1%나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업계에선 올해 중국 시장의 실적만 회복된다면 아모레퍼시픽의 오랜 저력이 빛을 발휘해 1위 탈환도 가능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 브랜드 다양화 및 혁신, 수출 채널 다변화 등의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2018년 아모레퍼시픽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아모레퍼시픽)
II. 2018 화장품 업계 화두는 '포스트 차이나'
새해 두 기업의 각오는 상반된다. 순위가 내려간 기업은 신년사에서 혁신을 언급하며 “즉각 결행(Act Now)”을 촉구했고, 올라간 기업은 자만하지 말자며 “반구십리(半九十里)”를 주문했다. *행백리자반구십리(行百里者半九十里):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겨야 한다는 뜻.
한국 화장품 업계 전체를 보면 둘 다 적용되는 말이다. 혁신도 필요하고, 조심성도 필요하다. 2017년, 중국이 화장품 업계에 준 교훈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동시에, 사업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방안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 및 R&D 역량을 키워야 하며, 또한 ‘포스트 차이나’ 시장을 개척해 글로벌 확장에 나서는 것이 필수다.
문제는 당장 중국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지역이 없다는 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래전부터 수출 다변화 정책을 펴왔지만, 중화권과 아세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현지화에 성공한 예가 많지 않다. 2010년부터 북미 시장과 유럽 등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으나, 아직 중국의 대안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업계에서는 북미 및 유럽에서의 성장이 더딘 것은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더라도 현지 공략의 역사가 짧고, 그래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것을 원인으로 본다. 로레알, 에스티로더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홈그라운드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무역에 관해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뚜렷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
▲KOICA 드림봉사단 신예주 양(오른쪽)이 태국 치앙마이에서 현지 수강생들에게 네일아트 기초교육을 전수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동남아시아 시장은 한국 친화적
때문에 미래 성장 가능성이 보장되면서도 당장 가시적인 성과까지 기대할만한 곳은 동남아시아 시장이라는 의견이 뒤따른다. 동남아시아는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가깝고 문화적 배경도 비슷하다. 세계에서 가장 경제 성장률이 높고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그만큼 화장품 시장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
유로모니터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아세안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73억 달러로 전년 대비 8.8% 증가했다. 그해 한국의 대 동남아시아 화장품 수출액은 3억 9507만 달러로, 중화권 총액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시장 성장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대 아세안 화장품 수출은 매년 두 자릿수로 증가해 왔으며, 2016년에는 31.6%나 증가했다. 이후로도 동남아 지역 화장품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해 2020년에는 시장 규모가 107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화장품 업계는 특히 더 유리한 입장이다. 이 지역에서는 K-팝, 드라마, 방송 등 한류의 인기가 유독 높아 이미지 마케팅 효과가 크고, 이미 한국식 메이크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또한, 동남아 지역은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특히 젊은 세대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한류를 앞세운 K뷰티 업계에는 더욱 유리한 점으로 여겨진다.
자유로운 무역 여건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1월 9일 열린 '2018 세계시장 진출전략 설명회'에서 각 지역 본부장들은 한-아세안 FTA의 적극적인 활용의 여지가 크다는 것에도 주목했다. FTA 평균 활용률이 66.4%인데 비해 한-아세안 FTA 활용률은 아직 46.3% 그친다는 것이다.
▲1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이 각각 대화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III. 신남방정책: K-뷰티 지원 본격 시동
지난해 11월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표방하며 아세안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나선 것은 동남아시아를 염두에 둔 화장품 기업에는 두말할 것 없는 호재다. 그리고 정부는 화장품 업계의 동남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에 돌입했다.
식약처가 1월 24일 발표한 2018년 업무계획에 드러난 화장품 정책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높아진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과 함께 한국 화장품 산업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식약처는 연중 '한-아세안 화장품 규제협의체' 구성을 주도, 국가별 화장품 우수제조기준(GMP)과 수출입 통관 절차 등의 규제 조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또한, 11월에는 아세안 국가로의 수출 활성화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 원아시아 화장품·뷰티 포럼'을 태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 20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화장품산업 종합발전계획'에서도 아세안 수출에 대한 촉진 방안이 대거 포함됐다. 보건복지부는 화장품 수출액을 2016년 41억 달러에서 2019년 73억 달러, 2022년 119억 달러까지 확대하겠다며 31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는데, 여기엔 화장품 해외 사무소의 설치 및 운영 계획, 글로벌 전문 인력 양성 계획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수출 촉진 방안들이 포함됐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지원 사업을 통해 수출 관련 지원 및 정보 제공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었다. 또한, 전 산업 분야에서 수출지원기관이 운영하는 해외 현지 통합 사무소가 있었으나 화장품 산업에 특화된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공식 개장일인 1월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 터미널 내 면세구역에 많은 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중국과 태국, 베트남에 화장품 해외 사무소 설치
이번에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화장품 수출 지원에 특화된 해외 사무소를 설치한다. 이 화장품 해외 사무소는 수출 대상 국가의 규정(법) 모니터링 및 수출 이슈(리스크)를 대신 점검하며 기업을 지원하는데, 우선 설치할 1차 국가로 중국과 태국, 베트남이 선정됐다.
해외 시장 판로 개척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국가(도시)별, 유통 채널별 제품 개발 동향, 바이어 심층 인터뷰를 통한 시의성 높은 정보를 제공하고 현지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요 유통채널의 각 항목별 전수 조사를 실시 후 정량 기초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국가별 바이어와 유통 전문가를 대상으로 온라인 상시 비즈니스 수요 조사를 실시한다. 이를 위해 동남아 등 잠재 소비국의 뷰티 화장품 관계자 초청 연수 프로그램을 연 4회 운영하며 해외 화장품 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화장품 수출 가이드를 제공할 방침이다.
수출 대상국 해외 규격인증 지원 제도 구축을 통한 유망 수출 중소기업도 발굴한다. 코트라, 관광공사, 코이코 등 화장품 수출 관련 전문기관과 공동으로 화장품 프로모션을 지원해 잠재시장을 개척하고, 한류 영향이 높은 국가의 경우 핫플레이스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치해 뷰티 & 화장품 테스트 마케팅을 추진한다.
▲2017 대구국제뷰티엑스포. (사진 = 대구국제뷰티엑스포 사무국)
이처럼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이미지 확립과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통해 한국을 아시아 뷰티 화장품 산업의 중심 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가칭 '뷰티 코리아'(Beauty Korea)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뷰티 교류의 장을 마련해 비즈니스의 장, 국제 정보교류 및 기술 거래의 장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해외 뷰티 전문가의 국내 연수를 위한 교육 콘텐츠 개발 지원, 교육기관 선정 및 연수 지원 등을 추진하고, 컨퍼런스·비즈니스포럼·잡페어·전시회·수출상담회 등으로 구성한 '뷰티 코리아' 행사도 추진한다.
해외 박람회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신흥국 박람회와 연계해서는 한국 화장품 교육 콘텐츠를 해외에 홍보하고, 전문가 화장품 공동관 설치 운영으로 신시장 개척을 지원한다. 선진국 박람회에서는 해외 진출을 위한 포럼 개최를 통해 K-코스메틱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방침이다. K콘, MAMA 등 아시아 지역에서 이름 높은 문화 산업 관련 대형 행사와 화장품 홍보를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기반 한국 화장품 홍보 채널인 '한국 화장품 포털'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해외 홍보 및 온라인 해외 화장품 판매장을 운영한다. K-뷰티 BI를 제작해 한국 화장품 홍보 브랜드 일원화를 추진하고, 영어 홍보 영상 제작도 고려한다.
■ '新남방정책 & 기업' 지난 기사 보기:
윤지원 yune.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