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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작가가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겪은 할머니들에게 배운 것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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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8.02.09 14:56:02

임흥순 작가.(사진=연합뉴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열심히 달달 외워야겠다.” 처음엔 이 생각이었다. ‘MMCA 현대차시리즈 2017: 임흥순 –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전(이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전)을 방문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상 작업을 보면서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공부했듯 자막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데 이윽고 만난 임흥순 작가는 “암기하듯 어렵게 작품을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역사를 그냥 지식으로써 암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한국현대사 속 희생되고 소외된 인물에 주목하는 작업을 펼쳐 왔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비념’(2012),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 뒤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담은 ‘위로공단’(2015), 탈북 여성을 내세운 ‘려행’(2016)까지.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삶에서부터 비롯됐다.

 

“큰 역사보다는 개인사가 관심의 출발점이었어요. 제 아버지는 공사장 인부, 어머니는 봉제공장 시다(보조공)로 일했는데, 가족 이야기를 가장 먼저 시작했죠.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불행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노동자로서의 삶을 이해하는 경험을 쌓았죠.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로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아버지 세대는 70~80년대 중동 건설현장에 돈을 벌기 위해 가는 게 흔한 일이었는데, 여기에서 발생되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접했어요. 또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과도 연결이 됐죠. 이 모든 걸 살펴보니 개인사가 모여 이뤄지는 거대한 역사가 보였어요. 또 제 삶 자체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했었기에 특히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요.”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사진=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이번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전에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4명의 할머니의 삶에 주목했다. 정정화(1900~1991) 할머니는 1920년 상해로 망명해 26년 동안 독립운동가로 활동했고, 항일운동가의 자녀인 김동일(1932~2017) 할머니는 제주 4·3 사건을 겪었으며, 고계연(1932~) 할머니는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정숙(1944~ ) 할머니는 10대 때 한국전쟁, 20대 때 베트남 전쟁을 겪은 뒤 이후엔 테헤란에 정착해 살다가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겪었다. 작가는 할머니들의 삶에 접근하기 위해 할머니들이 사용한 물품, 기록, 유족의 증언까지 참고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런데 작가가 할머니들의 삶을 풀어내는 데 꺼낸 키워드는 ‘갈라진 우리’다.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갈라져 있다는 걸까? 그리고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 데 할머니들이 중요했을까? 이야기를 하던 도중 생각난 장면이 있었다. 영상 작업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은 세 개의 큰 화면으로 이뤄졌다. 할머니들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자막 등이 화면 위에 각각 펼쳐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쪽 화면에서는 2016년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촛불, 그리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태극기 집회 장면이 나오는 장면을 마주했다. 두 집회 사이 가운데 화면은 까만 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 장면에 대해 묻자 작가는 “갈라진 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라고 답했다.

 

“2016년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죠.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는 게 매우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너무 극단적인 형태로 치달을 때 문제가 됩니다. 전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 없이 귀를 닫아버리는 거요.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매우 극단적으로 행동해 문제가 된 사태들도 있었어요. 또 이건 집회에서만 이야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남과 여, 노동가와 자본가 등 우리의 일상생활 또한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어요. 이렇게 분열된 사회를 보고 ‘왜 우리는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지?’ 궁금해졌습니다.”

 

분노는 분노만을 낳지 않는다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사진=국립현대미술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한 작가는 그 근원에서 분단의 역사를 발견했다. ‘비념’ ‘위로공단’ ‘려행’까지 그간의 작업들을 돌아보니 역시 소외된 사람들을 발생시키는 문제에도 분단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 어쩌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당연한 이야기다. 과거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현재의 우리를 만든 것이니.

 

“과거를 잘 알지 못하고서는 현재의 우리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분단의 역사를 알기 위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형성한 이데올로기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떻게 긴 시간 동안 스며들어왔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고 갈라놓았는지 알기 위해서요.”

 

분단의 아픔을 직접 겪은 할머니들은 작가가 그간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풀어내는 작업을 펼쳐 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았던 분들이다. 작가는 할머니들의 삶 속에서 분단의 역사가 형성한 양극화의 이데올로기와 선입견을 발견했다.

 

임흥순, ‘과거라는 시를 써보자 II’. 신발, 뜨개물, 꽃병 등 가변설치, 2017.(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예컨대 김동일 할머니는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꺼내면 사상 이야기가 결부되면서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냥 빨간색이 예뻐서 좋아한 것뿐인데, 분단의 역사는 이 빨간색에 좌파, 종북, 공포 등의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씌우며 빨간색 본연의 순수한 색깔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작가는 이 빨간색을 이번 전시장 벽에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사람들의 무의식 중 스며들은 선입견과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빨간색 벽은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포토존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원인에 대해 되짚으면서 미래를 위한 발걸음도 시도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된 점이 있다”는 고백이다. 공부하듯 이번 전시를 보지 말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할머니들의 삶에 접근할 때 작가는 스스로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이 또한 편견, 선입견에 갇힌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아픈 역사를 몸소 겪은 할머니들이기에 슬픔과 고통, 분노가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해 첫 접근이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의 삶은 이 감정들로만 차 있는 게 아니었어요. 전쟁을 겪은 뒤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으며 신념을 가졌지만, 바뀌지 않은 현실은 배신감과 공포심을 안겨줬고, 결국엔 증오까지 느끼게 했죠.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들은 증오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앞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고 노력했어요.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을 후손들은 겪게 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죠. ‘힘들다’ ‘죽겠다’고 하면서 현실을 쉽게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과 달랐어요. 한국현대사 속 희생되고 소외받았다고 생각했던 할머니들의 삶은 오히려 숭고함과 교훈으로 가득했죠.”

 

임흥순, ‘할머니가 구한 나라’. 벽면 도색 및 유리창 선팅, 슬라이드 프로젝션, 2017.(사진=국립현대미술관)

고계연 할머니는 빨치산을 발견만 하면 바로 총을 쏘던 시절, 총알을 피해 추운 겨울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할머니는 살기 위해 헤엄쳤고, 다행히 총알을 피해 달아났지만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잘라야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좌절하지 않고 나중엔 결혼하고 자식도 낳았다. 자식들은 현재 의사, 복원 미술가가 돼 사회를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 모습을 보고 아이러니하면서도 ‘이것이 삶’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분노는 분노만을 낳지 않는다는 걸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느꼈어요. 좌절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밝혀주는 긍정과 희망의 힘을 배웠죠. 현재 우리 사회는 절망과 분노가 가득해요. 안 좋은 것에 대해 ‘안돼’ ‘나빠’ 비판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편을 갈라 비난하기에 바쁘죠. 이건 서로 대화가 단절돼서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히 다른데, 최소한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과 인정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갈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전 단절된 대화를 잇기 위해 작업을 합니다.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계속 대화를 해야 하고, 그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거죠. 점점 1인가구가 점점 위주가 되는 사회라 해도 결국 사회는 나 혼자가 아닌 다 같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공존과 배려의 삶을 알아야 하죠.”

 

그래서 작가는 “할머니들이 0000년도에 무슨 일을 겪었다”는 지식 열거 측면으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할머니들은 이 어려움을 이렇게 극복했다”는 교훈을 얻는 배움의 측면으로서 앞으로도 이야기를 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 시간이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4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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