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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롯데뮤지엄은 왜 댄 플래빈을 개관전 작가로 택했을까

'위대한 빛'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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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7호 김금영⁄ 2018.03.02 09:35:31

롯데월드타워 7층에 위치한 롯데뮤지엄 입구.(사진=롯데뮤지엄)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자 큰 공간에 사선으로 세워진 형광등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허전할 것 같지만 이 형광등이 뿜어내는 노란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는 느낌이 따뜻하다. 이 작품의 이름은 ‘1963년 5월 25일 사선(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이 공간을 지나치면 이번엔 형광등 세 개가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유명론의 셋(윌리엄 오캄에게)’가 설치돼 있다. 이곳 또한 작품 자체가 공간을 채울 정도로 크진 않지만 충분히 공간을 압도하는 느낌이다.

 

롯데뮤지엄이 개관전으로 ‘댄 플래빈, 위대한 빛’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그룹 롯데문화재단은 1월 26일 롯데월드타워 7층에 롯데뮤지엄을 오픈했다. 롯데뮤지엄 개관에 미술계의 관심이 쏠렸다. 국내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삼성 미술관 리움이 지난해부터 휴업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재벌그룹 롯데가 뮤지엄을 개관하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이목이 집중된 것. 한광규 롯데뮤지엄 대표는 뮤지엄 개관 현장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국민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자는 그룹 미션의 취지에 맞춰 먼저 롯데콘서트 홀을 개관했다. 그리고 이번엔 롯데뮤지엄을 개관하며 롯데문화재단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롯데뮤지엄 내부에 마련된 디자인스토어 카페. 롯데뮤지엄은 조병수 건축가가 디자인했다.(사진=롯데뮤지엄)

기존 삼성 미술관 리움이 부자 동네로 꼽히는 이태원로에 위치해 럭셔리한 이미지를 내세웠다면 백화점에 위치한 롯데뮤지엄은 친근한 이미지로 관람객들의 부담감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뮤지엄 내부에는 아트숍과 카페도 설치돼 전시와 연관된 한정판 아트상품과 식음료를 함께 판매한다. 한광규 대표는 “롯데월드몰을 찾는 일반 고객이 편하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롯데뮤지엄의 목표다. 상업시설과 오락시설이 집중돼 있는 잠실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400평 규모의 전시 공간은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했다. 흔히 직사각형 입방체를 기본으로 하는 다른 미술관과 달리 롯데뮤지엄의 공간은 유선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공간에 줄지어 설치된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게 아니라, 산책을 하듯 미술관 길을 따라가면서 작품을 하나하나 만나게 되는 구조다. 조 건축가는 “타워 내부 공간을 최대한 기능적으로 해석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술 작품들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다”고 설계 주안점을 밝혔다.

 

댄 플래빈의 작품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가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이 공간을 지금 댄 플래빈의 작품들이 채우고 있다. 개관전이라 힘을 잔뜩 주고 공간을 꽉꽉 채우고 싶었을 것 같은데, 넓은 공간 속 형광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면 독특하다. 왜 댄 플래빈이었을까. 한광규 대표는 댄 플래빈의 작업이 롯데뮤지엄 설립 취지와도 닿는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댄 플래빈은 공장에서 제작된 규격화되고 단순화된 재료를 사용하는 미니멀리즘 예술을 펼쳤다. 수많은 재료 중 그가 택한 재료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형광등이었다”며 “역발상을 통해 일상 속 소재를 예술로 승화시킨 플래빈의 행보는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예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술이 특정 부류만 접하는, 멀고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서 호기심과 기대를 주는 과정이 중요하다. 댄 플래빈은 이 이야기를 작품으로 전한다”며 “롯데뮤지엄 또한 사람들이 친근하게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댄 플래빈의 작품이 이런 메시지를 잘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명론의 셋(윌리엄 오캄에게)'가 설치된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맥시멀리즘 시대에 꺼내놓은 미니멀리즘

 

롯데뮤지엄은 직사각형 입방체가 아닌 유선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공간에 작품이 여러 개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걸어가면서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다. 댄 플래빈의 작업과 관련된 문구들을 적어놓은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 파트너로 뉴욕의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참여했다. 권윤경 롯데뮤지엄 아트 디렉터는 “댄 플래빈의 빛의 예술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아시아에 그의 작업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며 “이번 전시는 댄 플래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과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1963년부터 1974년까지의 댄 플래빈의 혁신적인 작품들을 대규모로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맡기도 했던 제시카 모건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 디렉터는 “한국과의 인연이 이번 전시로 꾸준히 이어지게 됐다.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해외에서 여는 첫 전시이자, 댄 플래빈의 첫 번째 대규모 전시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댄 플래빈의 작품을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댄 플래빈의 '무제' 시리즈들. 댄 플래빈은 형광등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펼쳤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형광등이라는 산업소재를 예술에 도입한 댄 플래빈의 예술적 궤적을 담은 초기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화려하고 현란한 이미지가 가득한 맥시멀리즘 시대에 마주하는 댄 플래빈의 작품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이 있다. 형광등이라는 재료 자체는 평범하지만 여기서 발산되는 빛을 이용해 공간을 채우고 확장시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이런 시도는 현대미술뿐 아니라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댄 플래빈의 삶에서 비롯된다.

 

댄 플래빈은 정기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엔 다양한 경험이 있었다. 1954년 한국 오산의 제5 공군본부에 주둔하면서 기상병으로 근무했고, 1956년 뉴욕으로 돌아가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경호원과 엘리베이터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을 꾸준하게 가졌고 이를 실행으로 옮겼다. 특히 자신의 작업에 영감을 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관계를 작품명에 드러내기도 했다.

 

댄 플래빈은 영감을 받은 예술가들에 대한 경외감을 작품명에 드러내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는 러시아 구축주의 조각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기념하는 작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는 댄 플래빈이 처음으로 형광등 하나만을 사용한 작품으로, 현대 추상 조각의 거장인 브랑쿠시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았다. 댄 플래빈은 작품의 사선 형태를 브랑쿠시의 대형 조각 ‘끝없는 기둥’과 연관시켰다. 꼭짓점 부분이 잘린 피라미드 형태가 무한히 뻗어 나가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주는 ‘끝없는 기둥’은 바닥부터 사선으로 빛을 발산하면서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댄 플래빈의 작품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네 가지 길이의 형광등을 조합해 대칭구조의 삼각형 및 사각형 형태의 구조물을 실험한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는 러시아 구축주의 조각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새로운 러시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제작해 달라는 레닌의 의뢰로 타틀린이 구상했던 나선형 무양의 탑 ‘제3 인터내셔널 기념비’(1920)의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오브제를 혼용하고 양감보다는 공간을 중시하는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전위적인 조각들이 댄 플래빈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가로 총 길이 40m에 달하는 대작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는 녹색 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얀 빛으로 보이면서 실제 공간과 시각적 경험의 간극을 만든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받는 작품은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다. 1.2m 형광등을 60cm 간격으로 재배열한 이 작품은 가로 전체 길이가 약 40m에 달한다. 처음 이 공간은 녹색 빛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40m 길이를 걸어갈수록 녹색 빛에 익숙해지면서 이 빛을 흰색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공간과 시각적 경험의 간극이 지속적으로 생성되며 이 공간에 빠져들게 된다. 형광등으로 시작해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나 철학자와의 내러티브를 생성하고, 빛의 환상까지 이어지는 댄 플래빈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댄 플래빈의 전시를 시작으로 롯데뮤지엄은 첫발을 내딛었다. 한광규 대표는 “롯데뮤지엄은 세계 아트 트렌드를 소개하는 장소가 되려 한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하고 공공미술 등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세계적 거장인 댄 플래빈 전시 이후엔 한국의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에 주목하는 전시도 마련하려 한다.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한 문화예술을 제공하기 위해 주력할 것”이라고 추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미술계에서 롯데뮤지엄이 어떤 위치를 확보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전시는 롯데뮤지엄에서 4월 8일까지.

 

댄 플래빈은 빛과 이 빛이 비치는 공간을 활용하는 작업으로 알려졌다. '무제' 시리즈 중 일부.(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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