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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아트선재센터가 주목한 음악과 공간

인도네시아·한국 작가들 동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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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9호 김금영⁄ 2018.03.20 10:49:41

아트선재센터에 인도네시아와 한국 작가들이 모였다. 전시장 1층부터 3층까지 공간을 활용하는 각각의 방식이 눈길을 끈다.

 

정치와 음악 사이 긴밀한 관계에 주목
‘시민을 위한 노래: 인도네시아, 음악, 정치’전

 

‘시민을 위한 노래: 인도네시아, 음악, 정치’전이 열리는 아트선재센터 1층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1층 공간은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업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한국의 전시장에 풀어놓은 건 ‘음악’이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음악과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주목했다. 사회·정치적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예술가와 음악가의 작업을 보여주면서, 얼핏 보면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음악과 정치라는 두 키워드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파고든다.

 

1960년대 수카르노 대통령은 당시 인기를 구가하던 밴드 코에스 플러스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유인즉슨 이들 음악이 인도네시아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자들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코에스 플러스 같은 밴드들은 수카르노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야 활동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고, 이들의 복귀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음악 산업의 바탕이 됐다.

 

1965년의 국가 전복 사태와 정치 혼란기 때 수감 생활을 했던 생존자들은 가족과 함께 디알리타라는 합창단을 구성해 활동했다. 카르티타 자자가 이들의 공연 기록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을 설치 작품으로 선보인다.(사진=아트선재센터)

이 역사적 사실에 루앙루파가 영감을 받았다. 루앙루파는 자카르타 예술인 그룹이 2000년도에 결성한 비영리 조직이다. 광주 비엔날레, 아시아퍼시픽 트리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다양한 작업들을 펼쳐 온 루앙루파는 이번 전시에 ‘더 쿠다: 70년대 인도네시아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더 쿠다는 루앙루파가 만든 가상의 밴드다. 더 쿠다가 1970년대 인도네시아 학생 운동 1세대에 속하는 이들과 연대해 대도시 자카르타의 도시 풍경과 노동자, 학생,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을 대변하는 곡들을 발표하는 콘셉트다. 더 쿠다의 음악을 통해 수카르노 대통령 축출과 수하르토 대통령 취임까지의 권력 이동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더 쿠다가 가상의 밴드라면 디알리타는 1965~1966년 인도네시아 공산당 숙청 당시 붙잡혀 고문당하거나 추방된 부모, 친척, 친구들을 가진 실제 여성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다. 수감 기간 동안 이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신체제 아래 활동이 금지됐던 여성 운동이 이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카르티타 자자가 이 합창단의 공연 기록과 더불어 인터뷰를 기록으로 남긴 설치 작품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루앙루파는 ‘더 쿠다’라는 상상의 밴드를 통해 수카르노 대통령 치하의 구질서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사진=아트선재센터)

라라스와 멜랑콜릭 비치의 작업도 주목된다. 인도네시아의 대중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음악 현장에서 사회·정치적 요소가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필 수 있다. 라라스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정치적 싸움에 동참한 대중음악계 록스타 이완 팔스, 그리도 포크 음악 스타 로마 이라마에 주목한다. ‘민중을 위한 노래’로 알려진 이완 팔스와 그를 중심으로 구성된 칸타타 타콰와 등 팔스 주변의 음악 현장은 매우 강렬하다. 이슬람 웨이브의 영향을 받은 로마 이라마가 자신의 음악 활동을 통해 이슬람 사상을 사회에 전파하려 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대중음악과 성격을 달리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계 현장은 멜랑콜릭 비치를 통해 볼 수 있다. 멜랑콜릭 비치는 1998년 개혁 시대 속 여러 투쟁을 겪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학생 운동을 하며 성장한 멤버들로 구성됐다.

 

멜랑콜릭 비치는 최근 앨범에서 한 시대의 정권이 인도네시아 가족들의 삶에 미친 영향력에 주목한다.(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최근 앨범 ‘NKKBS 바기안 퍼타마(Bagian Pertama)’에서 한 시대를 돌아보며 신질서 정권과 당대의 사상에 기반한 정책들이 인도네시아 가족들의 삶에 미친 실질적이고 강력한 영향들을 짚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영상 속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밥을 먹고,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알리아 스와스티카 큐레이터는 “인도네시아는 크게 세 번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1960년대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 시기가 있었고, 이후 수카르노 대통령 축출과 수하르토 대통령 취임, 마지막으로 1998년 이후의 개혁 시대가 있었다”며 “인도네시아 음악 현장은 항상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 음악들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따라가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 공간 자체가 작품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전

 

전시장 2층에 오종의 ‘방 드로잉’(앞), 이수성의 ‘무제(Quarter Pipe)’가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1층이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음악’이 가득 찬 공간이라면 2~3층 전시 공간은 ‘공간’ 자체가 포인트다. 한국의 30대 젊은 작가 5명(김동희, 김민애, 오종, 이수성, 최고은)이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전에 모여 새로운 조각과 설치를 선보인다.

 

작가 5명이 공통으로 삼은 목표는 공간을 단지 작업의 배경이 아니라, 작업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하는 것. 그래서 아트선재센터에 본래 세워져 있는 기둥 자체가 마치 조각처럼 작가들 작업 사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2층 전시장에는 공간을 작업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요소로 끌어들인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전이 마련됐다.(사진=김금영 기자)

김동희의 ‘볼륨: 타입 1,2’는 전시장 2층 입구와 3층 곡면에 설치됐다. 2층은 전면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풍경과 빛을 활용했고, 3층은 건물의 곡면을 따라 빛이 들어오는 전시장 천장 창문을 내부로 가져온 형태다. 두 작업 모두 창을 활용해 외부의 풍경과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작품에 용도와 기능을 부여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서도 2층은 실내 장식을, 3층은 건축의 외장을 참조하며 서로 대응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김민애는 ‘소실선’과 ‘검은, 분홍 공’으로 전시장 공간을 활용한다. ‘소실선’은 작가가 전시장에 꾸려놓은 임시 울타리 같은 느낌이다. 전시장 내부에 다시 공간을 구성하는 미로 구조로 활용되기도 하고, 동시에 조각의 기능도 한다. 검은 포켓볼 공 15개로 이뤄진 ‘검은, 분홍 공’은 전시 공간이 마치 당구대 위인 듯 자연스럽게 공간에 어우러진다.

 

오종, ‘방 드로잉(모노크롬) #4’. 아크릴판, 쇠막대, 실, 체인, 추, 낚시줄, 연필선, 페인트. 가변크기. 2018.(사진=아트선재센터, 김연제)

오종의 ‘방 드로잉(모노크롬) #4’는 처음엔 바로 발견하기 힘들다. 하얀 벽과 바닥 사이 연결된 쇠막대, 실, 가느다란 쇠사슬을 발견하려면 오랜 시간 그 공간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더욱 공간이 그의 작업에 중요하다. 오종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공간도 하나의 작품으로 눈에 들어오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이수성은 미술관을 육면체로 만들기 위한 조각 설계 작업 ‘무제(Quarter Pipe)’를 선보인다. 그는 전시 공간의 형태를 따라 접합했을 때 퍼즐이 맞춰지는 형태의 조각을 선택하고, 공간의 규모에 이를 맞게 조정한다. 전시장 2층과 3층 각각의 공간에 설치된 모형 또한 아트선재센터 전시 공간 특성을 반영해 조정된 형태다. 작가의 설계에 따르면 사분원 형태인 미술관 건물에 이 조각을 덧붙였을 때 건물은 육면체의 도형 또는 하나의 새로운 조각이 된다.

 

전시장 3층에 거울을 이용한 김동희 작가의 ‘볼륨: 타입 1, 2’(오른쪽), 그리고 이수성의 ‘무제’(왼쪽), 김민애의 ‘검은, 분홍 공’(전시장 바닥 가운데)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최고은은 냉장고, 에어컨과 같은 가전제품의 외피를 절단해 조각의 재료로 삼아 눈길을 끈다. ‘화이트 홈 월’은 에어컨의 절단된 면을 특정한 규칙에 따라 도열해 전시 공간을 다시 선과 면으로 나눈 작품이다. 가정에서 사용됐다가 이제 용도 폐기된 이 사물들은 전시 공간에서 면의 형태와 고유의 색을 지닌 추상적 화면 구성의 재료로 재탄생한다.

 

아트선재센터는 “전시 제목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는 둘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함께 배치하는 작곡법을 뜻하는 대위법의 어원이 되는 구문으로, ‘점 대 점’, 즉 ‘음표 대 음표’를 뜻한다”며 “작업과 공간 사이, 작업과 작업 사이, 그리고 층과 층 사이에서 발생하는 참조, 반복, 전개의 과정들은 대위법이 작동할 때처럼 전시를 긴장과 리듬의 구조로 이끈다”고 밝혔다. 전시는 4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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