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멀리서 봤을 땐 화려한 꽃의 향연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림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자못 놀랐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생명력을 분출하는 듯 보였던 꽃잎들은 인간의 내장이 뒤틀린 듯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뿜어냈다. 멀리서 봤을 땐 단순해 보이지만 실상 가까이 다가가서야 알게 되는 그림.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유선 작가의 개인전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3월 28일~4월 3일 열린다. 작가의 화면에는 꽃과 기호가 등장한다. 꽃이라는 소재를 좋아해서 화면에 등장시켰을 것 같지만 실상은 꽃을 싫어했단다.
“과거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꽃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시드는 시기가 빨리 찾아 오죠. 저는 시든 꽃이 쓸모없어 보였어요. 이미 할 일을 다 해버린 것 같아서요. 그래서 꽃 선물 받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꽃은 작가에게 동질감을 주며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려한 만개 뒤 죽음이 찾아오지만, 꽃은 다시금 피어날 새 생명을 위해 꽃씨를 뿌린다. 끝이 아닌, 새롭게 다시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작가는 현실을 바쁘게 사느라 시들어버렸던 자신의 욕망에 눈을 돌리게 됐다. 바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
“저는 나름 치열하게 살았어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충실하게 살았죠. 그런데 그 와중에 ‘아내’와 ‘어머니’가 아닌 바로 제가 원하는 것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저는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해서 사방 벽지에 그림을 그렸는데, 어머니는 아무 소리 안 하고 제 그림을 지켜봐줬죠.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어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명목 하에 나이가 들수록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원숙해지는 것이라고 여겼죠. 그런데 시들었다가 다시금 활짝 피어나는 꽃을 보고 어른 또한 원하는 것을 꿈꾸는 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죠.”
작가는 과거 미대에 진학했지만 졸업 후 두 딸을 키우는 데 집중했고, 그렇게 그림을 잊은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뒤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4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2015년엔 석사학위 청구 전시도 치렀다.
작가는 자신을 ‘늦깎이 신인 작가’라며 웃었다. 남들이 보기엔 늦었을지라도 작가의 그림에 대한 욕망은 한껏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딸 뻘 되는 학생들 사이 자리를 지키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강의실과 학교 작업실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준 꽃을 화면으로 가져온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여러 꽃의 이미지 중 가장 화려하게 핀 꽃들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재조합해 그림을 그렸다.
멀리서 봤을 땐 아름답지만
가까이에서 봤을 땐 그로테스크한 꽃이 품은 욕망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꽃이 마냥 아름답고 화려하지만은 않다. 앞서 언급됐듯 멀리서 보는 꽃과 가까이에서 보는 꽃의 느낌이 다르다. 이것은 사람의 욕망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제각각 원하는 것이 있어요. 원하는 것에 따라 그 형태도, 욕망을 분출하는 방식도 다 다르죠. 욕망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희망을 품게 해주지만, 무조건적인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아요. 욕망을 다 이룬 사람들이 과연 모두 행복할까요? 만족감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허망함도 있을 거예요. 이렇듯 욕망이 가진 얼굴은 다양해요. 제 꽃이 단순하지 않고 어지러운 것도 그 이유예요.”
특히 꽃과 함께 등장하는 기호가 눈길을 끈다. 새의 날개 같기도, 음표 같기도 한 이 기호는 작가가 만들었다. 작가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사용된 글자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눈 모양의 기호가 있었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지킨다’는 뜻이었다. 뜻이 그림 이미지로 만들어져 글자로 사용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이미지와 글자 사이 어떤 경계가 있는지도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화면 속에서 꽃이라는 이미지와 글자를 상징하는 기호가 충돌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 그림에서 꽃과 기호는 한데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투쟁하는 느낌이에요. 꽃과 기호 둘 다 정중앙에 위치했는데,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정면충돌한 모습이죠. 이건 욕망 사이의 충돌을 상징해요. 화려하고 울긋불긋한 꽃의 이미지와 물성이 없는 단순한 기호는 다른 성질을 지녔어요. 사람의 단순하지 않은, 가지각색의 욕망들이 서로 얽히면서 힘을 겨루는 거죠.”
욕망의 충돌은 작가의 넓어진 시야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작가는 그림을 다시 시작할 때 오롯이 자신의 욕망에 집중했다. 초창기 작업 때는 나비와 기호를 그렸는데 이때는 나비와 기호가 정면충돌하지 않고 서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점차 시야를 넓혀 다른 사람들의 염원과 욕망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림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욕망이 하나로 단순하게 설명되고 이미지화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지점이었다.
이건 작가에게도 색다른 변화였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기 전 작가는 집밖에 잘 나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크게 없었다는 것. 집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창을 하나하나 열고 작가가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절에 갔다가 촛불을 키고, 이 촛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면서 며칠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왜 사람들이 저렇게 빌까?’ 궁금했다가 그 모습 또한 욕망의 한 형태라고 느꼈어요. 그 사람들도 저처럼 뭔가를 소망하고 염원하고 있었던 거죠. 그간 제 욕망밖에 생각을 못 했는데 점차 타인의 욕망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렇게 타인의 욕망에 관심을 갖고 지켜본 작가는 마치 그들의 모습이 태양이 되고 싶은 불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아직은 작은 빛을 내뿜는 불꽃이지만, 언젠가는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을 내뿜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이 읽혔다. 하지만 거기엔 두려움도 있다. 태양 빛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제로 태양을 정면 응시하면 눈이 멀어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이 작가의 화면에 아름다움과 그로테스크함을 동시에 지닌 꽃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복잡한 욕망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로도 적었다. “잘 피어나게 해주세요. 빨리 피어버리지 않게 해주세요. 피다가 말고 시퍼런 몸뚱이만 남기고 꺼져버리지 않게 지켜주세요. 다음날 다시 지필 수 있게 벽을 쳐주세요. 철조망을 감아주세요.”
갈팡질팡하는 마음속에서도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 욕망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도 이런 욕망을 과거처럼 무조건 자제하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금 거치고 있다. 작업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지금 받아들이고 있다. 그간 추상 작업에 몰두했다면, 이번엔 서사를 지닌 작업을 시도하고 싶다고 한다. 목판화 작업에 매력을 느껴 올해 목판대학에 들어갔는데,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작업을 10월 쯤 전시해 선보일 예정이다. 시놉시스를 현재 작업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작가는 또 하나의 창을 열어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다.
“욕망에 솔직해지는 과정이 아직 낯설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할 때도 많아요. 하지만 이 복잡한 마음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열심히 작업하고 싶어요. 욕망에 족쇄를 채우지 않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