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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경제] ‘30년만의 한국올림픽’과 ‘조던 30년’을 절묘 결합

“낡은 브랜드” 비판받으면서도 밤샘 줄세우는 기획력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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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1호 윤지원⁄ 2018.03.30 16:42:28

한국 최초의 조던 브랜드 전문 콘셉트 매장 '조던 홍대' 매장 앞으로 행인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사진 = 윤지원 기자)

꽃샘추위로 쌀쌀하던 지난 3월 9일 아침, 홍대입구역 앞 대로변 한 건물 주변에 노숙을 하는 캠핑족들이 대거 등장했다. 박스로 바람을 막으며 자는 사람, 캠핑 의자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는 사람 등 노숙 스타일은 다양했다. 그러나 누구도 노숙자의 행색은 아니었다. 이들은 다음날 아침 한국에 출시되는 나이키의 ‘에어조던 III 서울’ 농구화(이하 조던3 서울) 한정판을 먼저 구매하기 위해 미리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던3 서울'은 나이키가 1988년 출시한 ‘에어조던 3’와 1988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태극기와 한글 등을 디자인에 반영한 농구화다. 조던3 서울의 오프라인 판매점 3곳 중 하나로 지정된 나이키 ‘조던홍대’ 매장 옆에는 발매 전날 오전 10시 기준 120명 정도의 마니아들이 줄 서 있었다. 마이클 조던은 이미 15년 전에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나이키 산하 브랜드 ‘조던’의 인기는 여전히 뜨거운 셈이다.

 

조던홍대 매장에 진열된 조던 스니커즈들. (사진 = 윤지원 기자)

조던, 아디다스와 대등한 신발 시장 강자

 

조던은 최고급 농구화 라인인 ‘에어조던’ 시리즈 등 마이클 조던을 위해 개발되었거나 마이클 조던이 보증하는 스포츠 신발 및 의류 제품을 취급하는 나이키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조던은 나이키에서 독립 브랜드로 떨어져 나온 뒤에도 북미 스니커즈 시장에서 매출 순위 2위 자리를 놓고 아디다스에 우위를 오랫동안 점해온 강한 브랜드다.

 

이런 뛰어난 실적은 주로 에어조던 라인업의 꾸준한 인기에서 비롯된다. 에어조던은 거의 매년 최신 기술을 담은 신모델이 출시되고 있지만, 20~30년 전 마이클 조던이 현역 선수일 때 신었던 모델들이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각종 농구화 순위에서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다.

 

이런 과거의 모델들은 여전히 레트로(Retro)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버전을 새로 출시하며 조던의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그리고 에어조던의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조던은 북미 스니커즈 시장에서 매년 10% 내외의 견실한 점유율을 차지하며 오랫동안 2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아디다스가 북미 시장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조던에 역전승을 거뒀다. 이런 순위 변화에서 주목할 점은 아디다스가 조던을 이긴 것이 스포츠웨어로서의 승부보다 패션으로서의 승부 결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온라인 매출의 비중이 높아 매장을 찾는 고객이 붐비는 편은 아니다. 조던홍대 매장의 경우 평일 기준 하루 500명 정도가 방문한다. (사진 = 윤지원 기자)

꾸준한 실적 있지만 “혁신 없다” 비판도

 

아디다스의 역전극은 정상급 뮤지션이자 패셔니스타인 칸예 웨스트가 나이키를 떠나 아디다스와 콜라보레이션(협업)을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나이키는 칸예와의 콜라보로 출시한 프리미엄 스니커즈 ‘에어 이지’로 쏠쏠한 재미를 봤지만, 그가 스포츠스타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분 계약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칸예는 지분을 약속하는 아디다스로 옮겨갔고, 2014년 아디다스와의 콜라보 스니커즈 ‘이지 부스트’를 만들었다.

 

칸예의 인기와 영향력에 힘입어 이지 부스트 역시 큰 성공을 거뒀고, ‘부스트 폼’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이용한 아디다스의 다른 스니커즈 모델들의 매출이 급격히 올라갔다. 2017년 1분기 북미에서의 매출 성장은 전년 동기 대비 30%에 달했고, 아디다스의 주가도 급등했다. 그리고 지난해 북미 스니커즈 시장 순위에서 아디다스가 처음으로 조던을 제치는 일이 일어났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아디다스의 역전이 조던 브랜드의 한계를 들춰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미국의 언론들은 “조던은 지금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일까?”, “조던은 어떻게 마이클 조던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인가” 같은 제목의 칼럼을 통해 현 시점 조던 브랜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매출 신장을 이끈 제품들이 소재와 기술, 디자인 면에서 모두 과거와 크게 구별되는 혁신을 보여준 데 비해 조던의 최근 신모델인 에어조던31과 에어조던32은 화제성과 기술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아디다스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점, 그러면서 조던의 매출은 여전히 옛날 추억의 모델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조던브랜드 매장은 에어조던의 희귀 모델을 전시해 마니아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조던홍대에는 마이클 조던이 6회 우승을 일구면서 신었던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1992-1993 시즌 NBA 우승 당시 신었던 '에어조던 8'의 경기용 모델(OG). (사진 = 윤지원 기자)

조던은 조던만의 길이 있다고?

 

그럼에도 업계는 조던의 미래를 그닥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2위 자리는 뺏겼지만 주요 고객층을 빼앗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던의 지난해 북미 시장 점유율은 그 전년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이는 조던의 많은 고객이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조던은 앞으로도 유행에 흔들림 없는 견실한 점유율을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아디다스를 비롯해 최근 여러 스니커즈 업체들이 유명 패셔니스타와의 콜라보로 기획하는 패션 아이템을 앞세워 시장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조던 브랜드는 패션 아이템보다는 퍼포먼스(기능)를 중시하는 실전 플레이용 제품, 트레이닝 제품 등 정통 스포츠 용품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서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조던홍대’의 김승영 부점장은 “조던 브랜드에서 레트로 발매 제품의 매출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본사가 최근 역량을 집중하는 제품군은 러닝, 우먼스 조던 같은 퍼포먼스 쪽이며, 실제 매장에서의 매출도 5:5 정도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혀 이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줬다.

 

조던의 브랜드 파워가 흔들림이 없을 거라는 전망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다. 그 중 가장 수긍이 갈 만한 근거는 바로 마니아 고객들의 높은 브랜드 충성도다. 최근 조던3서울 출시일 조던홍대를 비롯한 3개 오프라인 나이키 매장에서 펼쳐진 줄서기 풍경이 이를 증명한다.

 

에어조던 3과 1988 서울올림픽 등의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정판으로 기획된 '에어조던3서울'. (사진 = 나이키)

‘에어조던 3’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이유

 

조던3 서울은 올해까지 32개 모델이 나온 에어조던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로 꼽히는 에어조던3의 스페셜 레트로 제품이다. 30년 전 농구화가 지금 새로운 한정판으로 기획된 것은, 해당 모델에 얽힌 뛰어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7-1988 NBA 시즌 마이클 조던은 에어조던3를 신고 경기를 뛰면서 처음으로 정규 시즌 MVP에 선정되었고, 처음으로 올스타전 MVP에도 선정되었다. 또, 올스타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는 잘 알려진 자유투 라인 점프로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에어조던3는 그의 여러 가지 ‘전설’의 시작을 가능하게 해준 모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마이클 조던은 당시 시즌 전 나이키와의 스폰서 계약을 끝내고 아디다스로 갈아탈 것을 고려했었다. 자기 이름을 걸고 나오는 에어조던2가 인기가 없고 혹평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었고, 에어조던1과 2를 디자인한 당시 나이키 수석디자이너 피터 무어가 아디다스로 이적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피터 무어 대신 투입된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가 만든 에어조던3가 마이클 조던을 만족시켰고, 지금껏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충고도 있었기에 나이키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훗날 마이클 조던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에어조던 시리즈 중 하나로 에어조던3를 꼽기도 했는데, 실제로 2001년부터 ‘워싱턴 위저즈’에서 선수로 뛸 때에도 종종 신을 정도로 좋아했다.

 

에어조던3는 오랫동안 조던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로 수많은 에어조던 모델을 디자인한 팅커 햇필드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에어조던이기도 하다.

 

나이키의 기술력에 팅커 햇필드의 디자인, 그리고 기념할만한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에어조던3는 지금까지도 인기 모델로 꼽힌다. 2005년 ESPN이 진행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니커’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요즈음도 최고의 농구화를 뽑는 여러 설문에서 자주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에어조던3의 30주년 기념 에디션은 기획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최초의 에어조던 농구화를 신고 덩크를 시도하고 있는 마이클 조던. 나이키는 첨단 촬영기술을 이용해 실제보다 훨씬 더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한' 조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사진 = 나이키)

마니아들이 만들어내는 완판

 

디자인은 팅커 햇필드 본인에게 맡겨졌다. 여기에 평창동계올림픽이 큰 인기를 끌면서 1988년 하계올림픽을 열었던 나라가 30년 뒤 동계올림픽(평창)을 개최했다는 얘깃거리가 더해졌고, 한국이라는 디자인 콘셉트와 출시 장소(서울) 및 시기(평창동계올림픽 직후) 등이 정해졌다.

 

그렇게 나이키 최초로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정판 마케팅을 하게 되었고, 나이키 이노베이션 키친의 한국인 디자이너 댄 선우 씨가 팅커 햇필드와 함께 디자인에 참여하게 됐다. 댄 선우는 신발의 맨 아래 밑창(아웃솔)에 태극기를 새기려던 아이디어에 대해 “태극기를 밟고 다닐 순 없다”면서 반대했고, 덕분에 태극기는 본래 조던 브랜드의 로고인 ‘점프맨’이 새겨져있어야 할 텅(tognue: 발등 덮개 부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조던3 서울의 오프라인 판매처는 조던홍대와 강남 나이키 플래그십 매장, 그리고 건대 나이키 매장 등 세 곳이었다. 오프라인 판매량은 530족 정도였고, 조던 브랜드 콘셉트 매장인 조던홍대에는 그 절반 이상인 270족이 배정됐다.

 

각 매장 앞에는 이틀 전부터 밤새서 줄을 서는 캠핑족들이 늘어섰다. 출시 당일에는 이벤트도 열렸다. 디자인에 참여한 댄 선우 씨가 내한해 출시 당일 조던홍대 매장에서 이번 한정판 기획 및 디자인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전하고, 구매 고객들과 사진촬영을 함께 하기도 했다. 출시 전날에는 강남 나이키와 건대 나이키 앞에 줄서고 있는 마니아들을 만나 격려하기도 했다. 또한, 조던홍대 매장에는 팅커 햇필드의 친필 사인이 되어 있는 조던3 서울 한 켤레가 특별히 전시되어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배정된 모든 제품이 이날 당일 완판됐다.

 

조던 브랜드는 마이클 조던의 스토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조던 브랜드 매장에도 곳곳에 마이클 조던의 사진 및 업적과 관련된 장식이 가득하다. (사진 = 나이키)

불멸의 스토리가 독보적인 경쟁력

 

30년 뒤에도 이런 열광적인 완판 신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역시 조던 브랜드만이 가진 막강한 배경 스토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주인공인 마이클 조던이라는 인물이 이룬 위대한 업적이 불멸의 것이기에 가능하다.

 

마이클 조던은 세계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됐다. 농구 말고도 힙합이라는 문화 속에 자리 잡았고, 스포츠 용품을 넘어 스트리트 문화의 한 아이콘이 됐다. 국내에도 GD같은 연예인, 아티스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로 조던을 활용하기도 하고, ‘컬렉션’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이런 점을 두고 김승영 조던홍대 부점장은 “조던(브랜드)은 조던(선수)으로 끝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1984년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을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에도 이미 새로운 마케팅은 아니었다.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 외에도 다른 후원 선수들이 있었고, 당시 농구화의 강자였던 컨버스도 래리 버드, 매직 존슨 같은 유명 선수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다만 마이클 조던이 특별한 것은, 아직 NBA에 데뷔하기 전의 대학 선수였다는 점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만큼 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도 나이키는 과감한 투자를 했다.

 

심지어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만을 위해 농구화를 만들고, 거기에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붙였다. 스포츠 업체가 특정 선수의 이름을 걸고 제품을 만드는 ‘시그니처’ 제품은 전에도 있었지만, 농구에서는 신인인 마이클 조던이 최초였다. 이런 파격 스폰서에 대해 마이클 조던은 첫해 NBA 신인왕에 등극하면서 보답했고, 이후 황제, 전설이 되면서 믿음에 화답했다.

 

훗날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우리는 마이클 조던이 대학 무대 밖에서도 날아다닐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라는 것을 보고, 그가 컨버스의 스타 플레이어 라인업을 조금은 흔들어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 이상을 해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나이키가 최초로 후원한 스포츠 스타였던 육상 선수 스티븐 폰테인과 그가 모델이 된 최초의 나이키 광고. (사진 = 나이키)
최초의 에어조던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한 NBA 신인 시절의 마이클 조던. (사진 = 나이키)

꿈을 재생산하는 마케팅 앞에

과거-미래 논란 무의미해

 

나이키는 영웅 마이클 조던의 이미지로 전 세계 스포츠 팬에게 ‘꿈’을 심어주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구구절절 설명은 필요 없었다. 신소재 쿠션의 성능을 실험 결과로 설명해주기보다 마이클 조던이 에어조던을 신고 하늘을 날아 덩크슛을 꽂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아 꿈을 꾸기 시작한 후배 선수들은 지금 수많은 경기에서 나이키를 신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이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꿈의 선순환이 끝없이 신규 고객을 창출해낸다.

 

꼭 스포츠 선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영광의 시절을 추억으로 간직한 팬들은 에어조던 레트로를 수집하고 자랑하며 그 옛날 영웅 신화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에어조던은 토르의 망치나 제다이의 광선검처럼 하나쯤 소장하고, 수집하고 싶어지는 상징적인 물건이 된다. 그렇다고 아주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것도 아니다. 마음먹고 이틀 밤만 새면 20만 원 정도에 한정판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굳이 한정판이 아니어도, 매장에는 수많은 에어조던 레트로 모델들이 진열되어 있다. ‘소확행’, 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트렌드에 더없이 잘 맞는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조던 브랜드의 강점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스토리에서 나온다. 마케팅에서 스토리의 힘은 강하다. 전파되는 힘도 강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으며, 영향력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번 조던3 서울의 완판 현장이 또 한 번 증명해보인 셈이다.

 

앞서 조던 브랜드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에 대해 김승영 조던홍대 부점장은 “조던을 은퇴한 선수로만 보면 조던이 향수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면서도 “하지만, 조던 때문에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조던 때문에 뭔가에 도전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후세에 미친 영향력이 이어져가고 있는 한 조던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계속 돌고 돌며, 그렇게 둥글게 오래 갈 것”이라고 여유 있게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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