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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당신은 몰랐던 아시아 이야기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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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3호 김금영⁄ 2018.04.13 10:01:21

염지혜, '미래열병'. 2채널 프로젝션. 2018. 작가 소장.(사진=국립현대미술관)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우리는 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질문을 던졌다. 2018 아시아 기획전으로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전을 7월 8일까지 서울관에서 연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중요한 질문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얼마나 세계적이 될 수 있는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게 주어진 질문이자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이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국제적이어야 하며, 국제적이기 위해서는 한국 주변 지역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전 세계에서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의 중심지인 한국에서 아시아 미술에 집중하는 전시를 선보이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요게쉬 바브는 아시아 국가들의 국기를 실로 풀어낸 작업을 선보인다.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기가 여러 색의 실로 풀어지면서 어느 나라의 국기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된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를 꾸린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아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시아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시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확실하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처음엔 지도를 펼쳐 놓고 아시아를 탐구하다가 아시아를 하나의 의미로서, 단어로서 규정지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규정하기 어렵고 한계가 있는 일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를 지리적 구분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문제 인식과 방법론을 마주하기 위한 비평적 관점 차원에서 접근한다. 박 학예연구사는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래를 바라보는 스토리텔러로서 예술가가 전시에 참여한다. 이들은 여러 개인적 경험을 가진 동시에 세계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지녔다”며 “전시는 아시아라는 이름 아래 잊힌 개인과 지역의 가치, 그리고 목소리를 소개한다”고 말했다. 즉 ‘아시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첫 질문은 ‘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로 이어졌다.

 

장 쉬잔의 '시소미' 작업이 설치된 전시장. 작가는 대만의 전통적인 장례 문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정의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에는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8개국 작가 15명(팀)이 참여해 작품 21점(신작 10점)을 선보인다. 이들의 각양각색 목소리를 전시장에 모으기 위해 네 가지 키워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교차적 공간’ ‘관계’ ‘플랫폼’이 정해졌다.

 

전시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마크 살바투스, 요게쉬 바브, 티모테우스 A. 쿠스노, 염지혜, 후지이 히카루 작가가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전통적 정체성에 영향을 준 ‘보이지 않는 힘’을 파고들어간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국가, 국경, 민족, 인종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다. 하지만 이런 개념들이 ‘국가주의’와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용어들과 결합됐을 때 승자와 패자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작가들은 이 과정에서 형성된 차별과 구분, 긴장과 대립 등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들이 어떻게 반복돼 왔는지 꼬집는다.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살며
미래를 바라보는 스토리텔러가 된 작가들

 

마르타 아티엔자의 비디오 설치작품 '우리의 섬, 북위 11° 16′ 58.4″, 동경 123° 45′ 07.0″'. 필리핀 비사야 제도의 전통 장례식 행렬을 수면 아래에서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마크 살바투스의 ‘대문’은 수많은 대문들의 사진을 찍고, 이 대문이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도록 연출된 작품이다. 대문은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경계를 세우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작가는 특히 성곽, 교회, 요새 등 힘과 권력을 드러내는 대상으로서 세워진 건축물의 대문을 찍으며 사회적 계급을 보여주는 대상으로서 대문을 활용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며 ‘환영받음’과 ‘환영받지 못함’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상황이 발생한다.

 

염지혜의 ‘미래열병’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20세기 초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된 미래주의 문화운동을 돌아본다. 국가가 미래를 위한 진보는 첨단과학기술 선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반복하고 있는 현상을 ‘미래열병’으로 명명하며, 여기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기의식, 조급함, 열등감을 살펴본다. 요게쉬 바브의 작업 ‘설명은 때로 상상을 제한한다 Ⅱ’도 설치됐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기를 실로 풀어낸 형태다.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기가 여러 색의 실로 풀어지면서 어느 나라의 국기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황 포치의 '생산라인' 프로젝트를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대만에서 시작된 작업이 어떻게 한국의 봉제공장 노동자까지 이어지는지 그 관계를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두 번째 키워드는 ‘교차적 공간’이다. 앞선 키워드가 아시아 국가의 전통적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쳤다면, 이번엔 안유리, 타오 후이, 장 쉬잔, 카마타 유스케, 엘리아 누비스타 등의 작가가 개인 간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얽히면서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복잡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다양한 생각과 관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안유리는 19세기 말 한반도를 떠나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조선인들의 이주 역사를 살피는 조선족에 관한 영상 기록 ‘불온한 별들’을 선보인다. 조선족의 이동 경로를 따라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중심으로, 여전히 우리와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는 조선족의 모습이 담겼다. 하지만 이들이 고국과 모국 사이에 느끼는 괴리감, 그리고 동포와 외국인 사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한 과정에서 느끼는 혼돈을 통해 ‘결국 국가와 민족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카마타 유스케는 일본, 한국, 미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이유로 존재했던 이층 목조 건물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곳에 어떤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는지 탐구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또 눈에 띄는 작업은 장 쉬잔의 애니메이션 ‘시소미’다. 작가는 애니메이션에 대만의 전통적인 장례 문화를 담았는데 작가 개인의 기억 또한 반영됐다. 작가의 가족은 3대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장례용 종이공예 가업을 이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많은 제례품들이 공장에서 제작되면서 가업은 어려움에 처했다. 무거운 현실을 작가는 쥐 등 동물들의 죽음에 빗대 경쾌한 음악, 흥겨운 안무로 풀었다. 그리고 절대 불변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전통이 그럼에도 변화를 겪고 있는 과정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정의는 무엇인지, 그 가운데 존재하는 정체성은 어떤 혼돈을 겪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카마타 유스케는 일본, 한국, 미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이유로 존재했던 이층 목조건물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곳에 어떤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는지 ‘더 하우스’ 프로젝트로 탐구한다. 1910년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일본인을 위한 일본 가옥이 들어섰고, 일본과 전쟁 중이었던 미국은 폭발 실험을 위해 일본 가옥을 정교하게 모방한 건물을 지었다. 건축을 통해 역사에 접근하며 현재까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고찰하는 시도다.

 

맵 오피스의 연구 플랫폼 설치 이미지.(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세 번째 키워드인 ‘관계’는 ‘교차적 공간’ 키워드에서 제시한 다양한 관점의 교차에서 서로의 관계성에 특히 주목한다. 황 포치, 마르타 아티엔자의 작업이 마련됐다. 황 포치의 ‘생산라인’ 프로젝트는 대만에서 시작됐다. 작가가 어머니가 오랫동안 종사했던 봉제공장 이야기를 기록함과 동시에 지난 50년 동안 대만의 농업경제 변혁과 사회 변화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만에서 시작됐던 이 이야기는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으면서 한국의 봉제공장 노동자까지 이야기가 확대된다.

 

마르타 아티엔자의 비디오 설치작품 ‘우리의 섬, 북위 11° 16′ 58.4″, 동경 123° 45′ 07.0″’은 필리핀 바다 속이 배경이다. 필리핀 비사야 제도의 전통 장례식 행렬을 수면 아래에서 보여주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십자가를 진 예수, 여성의 옷을 입은 남자들과 정치 구호가 쓰인 팻말을 들고 지나가는 시위대 등 등장인물과 배경 연출을 통해 필리핀 사회의 현주소를 살핀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더 나아가 전 지구적인 해양 온난화에 따라 점점 더 크게 노출되고 있는 필리핀 내 기후변화의 위협까지 비판적으로 풀어내며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이번 전시는 전시 관람 후에도 공유와 토론을 통해 참여 작가(팀)와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이어갈 수 있는 소통창구 ‘플랫폼’을 마련했다. 마지막 키워드다. 전시실 공간 외 서울박스, 복도 등 미술관 공용공간에 5개 팀 작가들이 기획한 프로그램 6개를 운영한다. 아카이브, 도서관 등으로 조성된 ‘연구 플랫폼’, 그리고 이론적 지식 외 경험을 유도하는 ‘놀이 플랫폼’이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하는 교차적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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