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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68) 사우바도르] 화려한 광장의 이름이 ‘체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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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4.23 09:35:48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헤시피 → 사우바도르)  


예사롭지 않은 지형


이른 아침, 헤시피를 떠난 항공기는 1시간 20분 만에 사우바도르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시내 세 광장(Praça da Se) 광장으로 가는 버스는 이타푸아(Itapua), 플라멩고(Flamengo) 등 해변을 따라 남행한다. 드넓은 백사장이 족히 수십 km는 이어지는 것 같다. 세계 최고의 도시 해변 중 하나로 이름난 곳이다. 평화로운 남반구의 여름을 차창 너머로 만끽한다. 길을 따라 호텔, 콘도, 식당이 즐비하다. 브라질의 최초 수도, 3대 도시라는 위상은 여전하다.


바이아(Bahia) 주의 수도 사우바도르는 1549년 포르투갈인의 정착으로 건설된 도시로서 1763년까지 214년 동안 콜로니얼 브라질의 수도였던 곳이다. 당연히 미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콜로니얼 도시다. 


이 도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이미 도착하기 직전 항공기에서 확인했듯이 바닷가를 따라 좁게 이어지는 하부 도시(Cidade Baixo)와 그로부터 85m 높이로 솟은 언덕 위 상부 도시(Cidade Alta)로 구성된 지형적 특성으로 잘 드러난다. 포르투갈 시절의 건축물과 기념물이 많아 일찌감치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아프로-브라질 문화의 중심


숙소에 여장을 풀고 곧 시내 탐방에 나선다. 여기가 아메리카인지 아프리카인지 모를 정도로 흑인이 많다. 미 대륙 최초의 노예 무역항이 들어섰던 곳인 만큼 흑인 또는 흑백혼혈 비율이 80%(흑인 28%, 흑백혼혈 52%)로 매우 높다는 것 또한 이 지역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다. 

 

도시의 상하부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모습. 사진 = 김현주

아프로-브라질(Afro-Brazilian) 문화의 중심이자 아프리카 대륙 바깥 지역에서 흑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말이 맞다. 그뿐이 아니다. 인종을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사우바도르의 인종 지도는 매우 복잡하다. 흑인, 유럽인, 원주민들이 500년 동안 통혼(通婚)한 결과다.

 

사우바도르 세 광장에 있는 산프란시스쿠 교회. 웅장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도시의 높고 낮은 언덕을 종횡무진 오르내린다. 언덕 위는 어디든 교회가 있는 모습은 한국에서 가까운 마카오에서도 많이 보았던 포르투갈 콜로니얼 양식 도시 설계의 전형이다. 식민지 시절 수도로서 214년 동안 누렸던 부와 지위는 건축물과 교회의 장대함과 화려함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그중 더러는 이미 17, 18세기에 지은 것들이니 족히 300, 400년은 됐음에 더욱 놀란다.

 

펠루리뉴 역사 지구는 1992년 이후 도심 재건 과정을 거쳤다. 수백 동 건물의 전면을 새롭게 치장해 지금은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사진 = 김현주

‘체벌’ 광장? 펠루리뉴


도시 탐방의 시작과 끝은 상부 도시(Cidade Alta) 올드타운 역사 지구(Centro Historico)의 중심인 펠루리뉴(Pelourinho)다. 사실은 포르투갈어로 ‘형벌’ 또는 ‘형틀’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 지명은 식민지 시절 노예를 다스리기 위해 형틀에 매달아 벌주던 곳에서 유래된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체벌’ 광장인 셈이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색상, 아름다운 모습의 건물 전면과는 달리 아픈 역사의 사연들이 숨겨진 곳이라서 마음 한 구석 야릇함이 일렁인다.

 

펠루리뉴 지명은 식민지 시절 노예를 다스리기 위해 벌주던 곳에서 유래됐다. 아름다운 건물 전면과 달리 아픈 역사의 사연이 숨겨져 있다. 사진 = 김현주

펠루리뉴 역사 지구는 1992년 이후 도심 재건(restoration) 과정을 거치면서 수백 동의 건물들이 전면을 새롭게 치장해서 지금은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우중충하고 음험한 골목들은 깔끔히 정비되고 하루 24시간 경찰이 상주해 치안을 유지키는 곳으로 거듭난 것은 방문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는 중 이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아프리카계 브라질인들은 도시 외곽으로 이주하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상점과 식당이 장악하면서 펠루리뉴의 고즈넉한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카니발의 도시


한낮이 되자 견딜 수 없이 더워져서 탐방을 중단하고 숙소로 돌아와 쉰다. 저녁 무렵 바다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도시 전체를 식힐 즈음 거리로 다시 나가본다. 사우바도르는 리우에 이어 카니발로 유명한 곳이다.

 

사우바도르 시내 탐방에 나섰다. 여기가 아메리카인지 아프리카인지 모를 정도로 흑인이 많다. 사진 = 김현주

오늘 밤 거리에는 야릇한 복장과 위장을 한 광대와 놀이꾼, 고적대, 퍼레이드 등이 시시각각 소란을 피우며 거리와 골목을 지나간다. 이미 세계 최대의 카니발 중 일부는 경험한 셈이다. 지금 여행기를 정리하는 시각 밤 10시 30분, 파티의 도시답게 숙소 바깥 골목의 삼삼오오 술  자리는 끝날 줄 모른다.

 

 

6일차 (사우바도르 → 상파울루 도착)


사우바도르여, 안녕


브라질의 본향 쯤 되는 곳, 북동 해안 지방 여행이 끝나간다. 오늘도 사우바도르에는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남반구 한 여름인 2, 3월이 되면 이곳 한낮 기온은 섭씨 40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그래도 무던히 견뎌온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묻기도 전에 먼저 도와주러 달려오는 사람들 덕분에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지구 반대쪽 머나먼 길을 오가는 수고를 잊게 해주는 여행이었다.

 

사우바도르의 아름다운 도심 해변. 사진 = 김현주

언어가 무슨 문제랴. 미소와 함께 치켜 올리는 엄지손가락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만사형통의 땅이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멀어 나의 짧은 인생에서는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땅을 박차 오르는 항공기에서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전한다. 그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다. 사우바도르여, 안녕.


세 시간 가까이 날아 항공기는 상파울루 콩고냐스(CGH, Congonhas) 공항에 닿는다. 남쪽으로 한참을 날아 온 만큼 날씨는 서늘해졌다. 브라질 열대 지방에서 단숨에 온대 지방까지 날아왔다. 예약해 놓은 공항 부근 숙소를 찾아들어가 잠자리에 드니 지난 닷새 간의 브라질 북동부 일주 여행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 이후에 느끼는 이 작은 성취 때문에 아직은 여행을 계속하는가 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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